첫 인선부터 제동 걸리자 ‘선거 캠페인과 현실 달라’ 후퇴

▲ 임종석 비서실장이 26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원칙 위배 논란과 관련해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송구한 마음과 함께 이해를 구한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했던 공직 배제 5대 원칙이 첫 인사부터 흔들리면서 정치권 내 잡음이 일고 있다.
 
이른바 공직 배제 5대 원칙은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는 인사 방침인데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문 대통령 스스로 청렴성을 강조하고자 공언한 바 있다 보니 이제 와서 돌연 철회하기에도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만큼 어떻게 대응하든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진퇴양난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당선 이후부터 줄곧 순항해 온 문재인 정부는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나타난 첫 난관에 자못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이지만 그럼에도 현재의 높은 정권 지지율을 배경삼아 일단 현실적 한계를 호소하며 인선을 강행하려는 모양새다.
 
이에 발맞춰 여당도 첫 인선인 이낙연 총리후보자에 대한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고 인준 처리에도 협조해달라며 야권에 호소하고 있지만 이미 발표된 공직후보자 중에도 공직 배제 5대 원칙에 저촉되는 인사들이 일부 있어 과연 야권에서 인사 문제와 관련해 장차 어떻게 나올 것인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이낙연 등 위장전입 논란 휩싸여…청문보고서 채택 ‘진통’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소개하기까지 한 첫 인선인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지난 24일 인사청문회 도중 과거 미술 교사였던 부인이 ‘서울 강남권 학교배정’ 목적차 위장 전입했던 사실을 시인함에 따라 엄정한 인사기준을 내세웠던 문재인정부의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이 후보자가 아들의 병역 면제 관련 의혹부터 당비 대납 연루 의혹, 부인 그림 강매 의혹과 전두환 찬양 기사 작성 논란 등 청문위원들로부터 여러 날선 질문을 받았음에도 스스로 인정치 않았으나 위장전입 문제와 관련해선 결국 인정하면서 야권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5일 기자들에게 “총리 지명을 이르게 하다 보니 본인도 몰랐고 우리도 몰랐다”며 곤혹스럽다는 속내를 내비쳤는데, 당장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청문보고서 채택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며 문재인 대통령까지 압박하고 나섰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처럼 후보자 신상에 대해 혹독하고도 엄격한 잣대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다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대통령 자신이 국민 앞에 선언하고 공약집에도 명시한 고위공직자 원천배제 사유에 해당하는 것을 국무총리 후보자 자신이 인정했는데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냥 넘어가자고 할 수 없다”고 사실상 ‘자승자박’격이란 입장을 내놨다.
 
한국당 측 청문위원인 경대수 의원도 26일 “오늘 저희는 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이 어렵다”고 선언한 데 이어 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놓고 비공개 회의를 가진 직후에도 기자들에게 “저희는 (이낙연 총리후보자가) ‘후보 자격이 없다’, ‘총리로서 적격이 안 된다’ 이런 판단을 하고 있다”고 못을 박아 경과보고서 채택이 불투명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이 총리 후보자에 큰 하자가 없다면 가급적 여당에 협조하겠다며 힘을 실어줬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서까지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정부여당이 인선을 강행하더라도 29일 있을 본회의에서 인준될 수 있을지 단언하기 어려워져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일단 새로 국민의당 사령탑을 맡게 된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26일 “총리 인준이 빨리 되고 정부 조각이 빠른 시일 내 마무리되도록 해주는 것도 국회의 소임 중 하나”라며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대선 직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던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같은 날 “개업식에 와서 웬만하면 물건을 팔아주고 싶은데 물건이 너무 하자가 심해서 도저히 팔아줄 수 없는 그런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고 상반된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여당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자당 소속 청문위원인 이태규 의원이 청문회에서 이 총리후보자로부터 직접 부인의 위장전입 의혹을 인정한다는 답변을 받아낸 점도 있는데다 인사청문위원 구성비 면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것도 국민의당이다 보니 현재 여소야대임에도 정부여당의 높은 지지율로 인해 맥을 못 추던 야권 상황을 뒤집으려는 계기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바른정당에서도 이날 오신환 대변인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이 대국민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 한 이 총리후보자는 자진사퇴하거나 총리지명을 철회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먼저 밝혀야 할 것”이라고 청와대 압박에 동참한 데 이어 “바른정당은 고위공직자 인준 기준에 대해 여야협의체 구성을 제안한다”고 차별화까지 꾀해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저마다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이들 야3당의 공통적인 요구는 지금까지 거론되는 후보자마다 대체로 5대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데 대해 인선을 결정한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먼저 내놔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인데,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26일 청와대에선 문 대통령 대신 임종석 비서실장이 나와 인사 문제 관련한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
 
◆ 靑 고개 숙이면서도 ‘현실 제약’ 강조…인선 강행 의지?
 
임 비서실장은 인사대상자들의 공직 배제 5대 원칙 위배 논란과 관련해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희가 내놓는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먼저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는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모두 다르듯 관련 사안도 들여다보면 성격이 다르다”며 “후보자가 갖고 있는 자질과 능력이 관련 사실과, 사실이 주는 사회적 상실감에 비쳐 현저히 크다고 판단될 때 관련사실 공개와 함께 인사를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현실의 제약 안에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임 비서실장은 “선거캠페인과 국정운영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양해를 구한다”고 밝혀 5대 원칙에 일부 위배됐더라도 이 총리 후보자 인선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는데, 이 후보자 뿐 아니라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도 똑같이 위장전입으로 도마에 올라있다는 점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대신 청와대 측은 조각이 시급한 시점에 5대 원칙이 이제는 발목을 잡게 되다 보니 앞으로 현실성을 고려해 이 원칙을 구현할 수 있는 적용 기준을 내부적으로 마련하겠다는 입장인데, 야당에선 대통령 본인이 아닌 비서실장이 나온 것부터 진정성 없는 사과라고 각을 세우고 있다.
 
우선 한국당은 정용기 대변인 논평에서 “변명은 비서실장을 앞세워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다. 이런 입장 발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며 “사회적 상실감이라는 모호한 명분을 앞세워 5대 비리 관련자들도 자질과 능력이 있는 경우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정권 입맛에 맞춘 고무줄 잣대로 인사를 하겠다는 정치적 꼼수”라고 청와대를 질타했다.
 
국민의당도 최명길 원내대변인을 통한 공식 논평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이 내놓은 해명은 국민이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궤변”이라며 “5대 비리 고위공직 원천 배제 원칙은 수정된 것인가, 고수하는 것인가. 그냥 넘어가자는 태도로는 사태를 매듭지을 수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날을 세웠다.
 
바른정당 역시 오신환 대변인이 같은 날 “총리는 국무위원 제청권을 가진 사람인데 이번 사안을 그냥 넘긴다면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어떤 기준을 갖고 처리할 것인지도 불분명하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인사원칙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향후 재발방지 대책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처럼 청와대가 내놓은 발표내용에 각 정당이 한 목소리로 혹평한 것 외에도 청문회 여야 간사 회동은 물론 뒤이은 4당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에서조차 당초 이날 마무리 짓기로 했던 청문보고서 채택이 끝내 불발되면서 차주 예정된 본회의에서 총리후보자에 대한 본회의 표결 역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장관후보자와 달리 총리후보자에 대해선 국회 인준이 필요한 만큼 여당은 이날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됐음에도 이 총리 후보자를 2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굳히고 있는 데 반해 야권은 일찌감치 반대 의사를 내비쳤던 자유한국당 외에도 다른 정당들까지 유보적 입장으로 선회해 정부여당과 야권의 첫 충돌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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