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북풍 ‘북핵’ 최대수혜자는 누구?

▲ 노무현 대통령
추석 이후 북한의 핵실험이 세계정세를 흔들어 놓고 있다. 특히 향후 한 두 차례의 추가 핵실험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가에도 북한發 핵폭풍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해마다 대선 즈음엔 항상 ‘북풍’ 여론이 들끓곤 했었다. 이는 북한이 대한민국의 대선 민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아래 차기 정권 창출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벤트’를 펼친다는 시나리오에서 출발하곤 했던 것. 따라서 이번 ‘북핵’ 역시 국내 정치적 여건과는 무관하지만 북한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정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외형적으로는 최대 수혜자 한나라당과 피폭자가 돼 버린 열린우리당 양당의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지는 가운데 일찌감치 형성된 대선정국을 덮친 ‘新북풍’의 위력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02년 12월 12일. 북한은 ‘북·미 제네바 핵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가동 중단했던 핵시설의 재가동을 공식 선언했던 것. 당시 국내정치는 대통령선거 열기가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한층 열기가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막판까지 오차범위 내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시점에 터진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 선언은 국내 대선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5·6공 시절부터 여권의 선거용 단골메뉴로 등장하던 ‘북풍’이 2002년 대선에 다시 등장했던 것이다. ◆대선 앞두고 ‘북풍’ 재등장 하지만 지난 2002년 ‘북풍’은 전통보수를 지향하던 한나라당에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오히려 진보와 젊은층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계승’을 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후보의 승리에 일조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코너에 몰린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메가톤급 강경노선을 선택했다. 당장 북핵은 전세계적인 이슈로 거센 폭풍을 놀고 왔고 당사자격이나 마찬가지인 국내에도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일찌감치 대선정국을 형성하며 국정감사 이후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돼 온 정가는 북핵논쟁으로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번 북핵문제가 국내정치여건과는 무관하게 벌어진 ‘新 북풍’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즉, 차기 대권구도에 이번 북핵문제로 인해 전해질 파장의 여파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정치적 지형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야 3당간 치열한 논쟁이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新 북풍’의 힘을 받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 ‘보수진영’이다. ‘뉴라이트-한나라당 연합’으로 이미 보수세력 결집의 기치를 세운 한나라당으로선 그야말로 ‘최고의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사회적ㆍ정치적ㆍ경제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사회에 대북 배신감이 팽배하면서 보수세력이 확대될 것이고 대북 유화정책에 대한 사회적 지지기반은 급속히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지난 13일부터 상임위원회별로 모두 507개 정부 부처 및 기관에 대한 20일 동안의 국정감사에 돌입한 국회에서는 국정감사 첫날부터 여?야간 팽팽한 신경전이 전개됐다. 심지어 ‘북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상임위에서조차도 여?야 상당수 의원들이 북핵관련 질의를 쏟아내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건설교통부에서 열린 건교위 국감에선 야당 의원들이 건교위 차원의 대북 건의안 채택을 요구해 한차례 소동이 일었다. 박승환 한나라당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북핵실험 규탄, 국제사회 노력 동참, 경제지원 중단 등을 담은 결의안을 여야 합의로 채택하자”고 제안했고, 같은 당 윤두환 의원도 “건교부도 남북철도, 도로 연결, 항로문제 등 대북관련 사업이 많다”고 거들었다.
▲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 중단 촉구 시위
그러나 여당 의원들은 “외교통상위에서 다뤄야 할 사안을 왜 건교위에서 논의해야 하느냐”며 반대했다. 산업자원위원회의 산자부 감사에선 야당 의원들이 개성공단에 파견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안전 문제를 거론했고, 문화관광위원회의 문화부 감사에선 금강산관광 사업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무위의 국무조정실 감사에선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2년간 북한에 지원한 금액이 무려 8조5천697억원”이라며 “이런 지원이 핵폭탄이 돼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재정경제위원회의 재경부 국감에서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은 질의서를 통해 “정부가 북한모래 반입 대금으로 지원한 4천200만 달러 전액이 북한 인민무력부에 건네졌다”고 주장했다. 북핵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를 젖혀두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각 국정감사장에서 정부·여당에 집중포화를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함께 보수단체들도 ‘북핵규탄집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지난 13일 예비역대령연합회 등 전역 군인 단체들로 구성된 ‘국민행동본부’ 회원 5천여명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고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를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집회에서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이 핵폭탄을 만드는데도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등 한미연합사 해체를 강행하려 한다”며 “북한 핵무기에 대항하려면 우리도 정의의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집회를 마친 뒤 종로구 탑골공원으로 이동, ‘북핵반대·한미연합사해체반대 천만인 서명운동본부’가 개최한 북핵 규탄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소속 전직 북파공작원(HID) 30여명도 이날 오전에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북한 인민군 복장을 하고 북한 핵실험 강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유지와 겨레 생존을 위해 다시 한번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며 “국가가 북한 핵시설 파괴임무를 부여해 준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결의하기도 했다. 또 한국원폭피해자협회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북한 핵실험 반대집회를 열고 “국제협력을 통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 문제가 수습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북핵실험 이후 보수세력이 정치적, 사회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차기 대선이 한나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판단도 들게 한다. ◆양분화 현상 뚜렷한 정가 하지만 정가의 북핵문제를 보는 시각은 사회적 시각과는 조금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 ‘북핵’의 정치적 수혜자를 단정 짓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보수세력의 커진 목소리는 오히려 북핵문제가 한나라당에 역풍으로 작용할 지도 모른다는 인식하에 ‘역풍차단用’의 성격이 짙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북핵문제가 발생한 뒤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정당대표들과 전직대통령들을 만났다. 이같은 노 대통령의 발빠른 행보는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햇볕정책’이 북 핵실험 한방으로 무너져 내려버린 위기상황임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북핵’은 참여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안기지는 못할 것이란 게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오히려 연일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노 대통령과 여당에 ‘지푸라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즉, 안보위기만큼 정부?여당의 위상을 살려줄 호재는 없다는 것이 이같은 분석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임기 말 심각한 레임덕 현상에 시달리던 대통령과 대선정국에서 뚜렷한 대권후보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여당에게 반전의 기회를 던진 것이 바로 ‘북핵’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정가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이 연일 정부·여당을 성토하며 압박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한나라당의 변함없는 지지율 40%대에 포함된 사람들”이라며 “오히려 ‘북핵’으로 인해 현 정부에 비토적인 목소리를 내던 진보세력들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
▲ 미사일 발사 장면
실제 ‘북핵’ 문제 이후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미국의 강경일변도 교섭태도는 진정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대화와 협력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남북협력사업 중단을 한나라당 혼자만 주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력한 제제로 인해 오히려 안보불안, 국민불안을 조장하는 ‘안보장사’는 이제 그만두라”고 덧붙였다. 이는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의 시각과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임종석 열린우리당 의원도 “한국정부는 우선적으로 핫라인 재구축부터 나서야 할 것”이라며 “대북포용정책의 기조 및 경협 등을 확고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의 지속적인 운영은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풀어줄 수 있는 마지막 동력이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도 “현재의 핵 위기를 궁극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방안으로 풀어야 한다”라며 “대북포용의 큰 틀을 유지하되 치밀하게 그 성과와 한계점을 분석해 ‘당근과 채찍’이라는 상황변화에 따른 룰(Rule)이 인식될 수 있도록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소수의 의견이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고 의원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을 정도다. 결국 ‘북핵’은 여권이 차기 대권구도로 구상중인 ‘反한전선’ ‘진보 VS 보수’ 라는 양자대결구도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여의도는 확실하게 ‘분단’되고 있다. 대북포용정책의 지조 유지 및 남북경협의 지속화를 찬성하는 진보세력과 강경대응을 요구하는 보수세력간의 두 가지 세력 흐름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양자 대결구도는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DJP 연합 VS 신한국당’ 또 2002년의 ‘민주당 VS 한나라당’이라는 구도로 현 여권이 정권을 창출하고 이어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선거전략이었다. 따라서 ‘북핵’ 이후 급격히 세력의 양분화를 보이고 있는 차기 대권구도 역시 ‘진보 VS 보수’ 대결로 갈 경우 한나라당의 정권교체는 쉽지 않을 것이란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진보 VS 보수’ 양자구도 형성 추석 이후 급격히 터져 나온 북한 핵실험. ‘2006 新 북풍’의 수혜자와 피폭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지는 아직도 미지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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