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주적 논란 이어 송민순 문건공개로 진땀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안보관 논란에 휩싸이며 예기치 못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최근 대선판이 안보 이슈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데, 이번에도 북한이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대선 막바지에 갑자기 안보 논란이 촉발된 이유는 지난 19일 KBS 대선토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해 북한이 주적이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여기에 문 후보가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모호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문 후보와 맞서는 거의 모든 경쟁후보들이 북한은 주적이라며 문 후보를 압박하는 상황에서도 문 후보는 국방백서엔 주적이라는 표현이 없다며 오히려 반격에 나섰는데, 이런 와중에 ‘빙하는 움직인다’란 책을 펴내 문 후보를 곤혹스럽게 했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이 문 후보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던 시절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에 의견을 물었다는 메모까지 공개하면서 상황은 한층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 민주당-국민의당, 안보관 설전 격화
 
문 후보가 주적 논란에 대해 국방백서엔 주적 표현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자 이를 계기로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 모으기 위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1일 “현재 국방백서에 적으로 규정돼 있는 것은 북한 밖에 없다. (주적이나 적이나) 사실상 같은 개념”이라며 역공에 나섰다.
 
안 후보는 이날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이 없다는 문 후보를 겨냥 “정치권의 폐해 중 하나가 본질을 보지 못하고 지엽적으로 빠지게 만드는 문제”라며 “북한군과 북한 정권에 대해 적이라고 명시돼 있다. 어디에도 다른 국가 대상으로 적이라는 표현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 뿐 아니라 안 후보는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박지원 대표도 대선후보의 말이 당론이라고 규정했다. 사드를 배치해야만 한다”고 못 박은 데 이어 유엔 대북인권 결의안에 대해서도 “당연히 찬성해야 한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문 후보와 완전한 대척점에 섰다.
 
또 그는 “북한은 우리의 적인 동시에 평화 통일의 대상”이라면서도 대가를 지불하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 문제를 푸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안 후보가 급격히 ‘우향우’로 선회하면서 문 후보의 안보관을 문제 삼자 민주당에선 ‘김대중 정신’을 입에 올리지 말라며 국민의당의 기반인 호남 표심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 겸 상임선대위원장은 같은 날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선대위회의에서 안 후보를 향해 “당명을 빼고 보수표에 구애하더니 북한은 주적이라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애잔한 구애를 하고 있다”며 “다급한 보수 후보야 그렇다 해도 안보팔이에 숟가락 얹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자격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추 대표는 “과연 5.18민주화운동과 10.4 성명 등을 당 강령에서 빼고자 했던 것도 그런 것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더 이상 호남정신, 김대중 정신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연이어 우상호 원내대표도 이날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주 초반부터는 호남도 서서히 조금씩 변화하는 초기양상이 드러났다. 특히 호남 50대가 서서히 문 후보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런 것들이 호남에서의 역전현상을 뒷받침하는 그런 근거가 되겠다”고 말해 안 후보에 대한 호남 표심 이탈을 한층 부추겼다.
 
한 발 더 나아가 문 후보 캠프 측에선 아예 안 후보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 손잡고 색깔론 연대에 나선다면서 ‘수구 기득권 세력의 2중대’라고 몰아붙였는데, 윤관석 공보단장은 이날 논평에서 “(안 후보가) 홍준표·유승민 후보와 안보팔이 공조에 나섰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건지, 버리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며 “고작 색깔론 2중대를 하려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부정하냐”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그러자 국민의당에서도 군 장성 출신으로 국방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중로 의원이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후보와 민주당이 북한정권과 북한군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어떻게 안심하고 대한민국의 미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있겠는가”라며 “국민들은 안보관이 불안한 후보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기길 원하지 않는다. 문 후보는 북한이 주적인지 여부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맞불을 놨다.
 
여기에 자유한국당까지 마치 지원사격에 나선 것처럼 문 후보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는데, 정준길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문 후보는 UN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시 북한의 의중을 파악하고, 2016년 3월 북한인권법 처리를 하는 본회의에 불참했다. 그런 문 후보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을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국민상식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북한을 주적이라 못하면 자격이 없다고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 송민순 쪽지로 ‘UN인권결의안 결정’ 진실공방 재개
 
바야흐로 송민순 회고록으로 한 차례 일어났던 북한인권결의안 관련 논란까지 다시 도마에 오른 셈인데, 공교롭게도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이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으로부터 연락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며 지난 2007년 11월 UN 북한인권결의안 표결과 관련해 북한의 의중을 물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쪽지까지 공개해 문 후보를 둘러싼 안보 논란은 한층 확산됐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밝혔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쪽지를 공개한 뒤 이날 북한대학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문 후보가 방송에서 제 책이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쓴 것으로 묘사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며 “지금 와서 사실관계를 다 호도하고 부인하기 때문에 진실성의 문제라고 본다. 색깔이나 정치이념의 문제가 아닌 판단과 진실성의 문제로 봐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북대화는 양쪽에서 손을 잡고 해야 하는데 북한이 칼자루를 쥐고 우리가 칼끝을 쥐고 앉아선 남북대화가 될 수 없다”며 “추가적인 건 문 후보가 직접 대답하라. 이번에 공개한 거로 충분히 대응이 됐다고는 보지만 더 대응할 필요성이 있으면 그때 대응하겠다”고 문 후보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문 후보도 이날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강당에서 범여성계 연대기구가 주최한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대선 때 NLL사건과 같은 제2의 북풍공작, 그것으로 선거를 좌우하려는 비열한 색깔론이라고 본다”며 “잘못된 내용에 대해서 송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묻겠다.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공법으로 치고 나왔다.
 
문 후보는 이어 “송 전 장관이 제시한 전통문으로 보이는 문서가 북쪽에서 온 것이라면 거꾸로 국정원이 그에 앞서 보낸 전통문 역시 국정원에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기록물법에 저촉되지 않을 경우를 전제로 송 전 장관의 주장을 배척할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의지까지 드러냈다.
 
이렇듯 문 후보가 강공으로 맞대응하는 가운데 문 후보 캠프의 홍익표 수석대변인도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송 전 장관 관련 브리핑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송 전 장관의 쪽지 공개와 관련,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된다. (송 전 장관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캠프에 들어가 뛴 것은 사실 아닌가”라며 “최근에는 손학규 공동선대위원장과 가깝다. 안철수를 띄우기 위해 (공개한 것 같다)”고 주장해 점점 진흙탕 싸움 양상으로 치달았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통령 후보 초청 관훈 토론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이런 가운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등 보수진영 후보들까지 송민순 쪽지 공개로 재개된 ‘북한 인권결의안 관련 논란’에 뛰어들어 문 후보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홍 후보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송 전 장관이 청와대 메모 서류를 제시했다. 지도자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문 후보를 몰아세웠다.
 
아울러 유 후보도 같은 날 오전 여의도 서울마리나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서 “문 후보는 지난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근데 최근 토론회에선 처음에는 안 물어봤다고 하다가 북한이 아닌 주변에 취재만 했다고 했다”며 “문 후보는 스스로 북한이 아닌 국정원을 통해 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국정원을 통해 북한에 확인하고 그게 국정원장에서 안보실장으로 가서 청와대 문건으로 나왔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결국 당시 기록을 갖고 있을 대북 관련 부처들로 눈길이 쏠렸는데, 일단 이날 통일부에선 이덕행 대변인이 송 전 장관 쪽지와 관련 “거기에 대해선 전혀 파악한 바도 없고 통일부가 언급할 입장이 아닌 것 같다”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이상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는데, 심지어 민주당에서도 이날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 김병기 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국정원이 송민순 쪽지를 밝힐 수 없다면 이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며 “송민순 쪽지에 일말의 조작이나 정치적 목적이 있다면 국정원은 문 닫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엄포까지 놓아 이 상황에선 이번 진실공방 끝에 결국 어느 한쪽은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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