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文 “통합 범위, 탄핵 찬성 세력” 강조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7일 대구 경북대학교 북문에서 첫 유세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 비문계로 대표되는 인사들까지 최근 속속 합류하면서 한때 흘러나왔던 비문 탈당설은 이제 설 자리를 잃은 분위기다.
 
문 후보의 압승이란 경선 후유증이 일종의 역풍으로 작용해 결국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맹추격이란 결과까지 초래했지만 역설적으로 민주당에 다시금 위기감을 불러일으켜 당내 계파 간 앙금을 풀고 내부 수습에 이르게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대선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사실상 양강구도가 구축되어버리면서 김종인 비대위 대표 등 비문연대를 추진하기 위해 탈당했던 이들이 끝내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도 민주당 내 비문계 의원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사실상 ‘통합’을 내세워 당 수습이 어느 정도 매듭지어진 모양새인데, 과연 대선 이후에도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마음 급한 문재인, 적폐청산 일보후퇴?
 
안 후보의 추격에 맞서 문 후보가 확실하고도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상도동계 인사 영입에 나선 데 이어 당내 비문 세력까지 적극 끌어안고 있다.
 
자신에게 반감이 강한 보수층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 안 후보의 추격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이는데, 이에 따라 문 후보의 발언에서도 점차 적폐 청산과 같은 강경한 입장보다는 통합을 내세우며 이전과는 조금씩 색채를 변화시키고 있다.
 
대선일까지 불과 3주도 남지 않은 문 후보로선 어떻게든 승세를 굳히겠다는 입장이다 보니 현 시점에서 적폐청산보다는 통합을 외치는 것도 딱히 이상하게 생각할 변화는 아니다.
 
실제로 지난 17일 서울신문·YTN이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권역별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보수성향이 강한 TK(대구·경북) 지역에서 문 후보는 29.3%를 얻은 반면 안 후보는 34.2%를 기록해 두 후보 간 격차가 1.1%포인트에 불과했던 지난번보다 더 벌어졌다는 점에 비쳐 봐도 문 후보의 이 같은 변화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선지 문 후보는 17일 자신의 첫 유세지로 보수의 아성이라 할 수 있는 대구를 찾아 경북대학교 북문 유세에서 “대구가 나서서 분열을 끝내주십시오. 통합을 시작하는 새로운 역사 우리 대구가 써주십시오”라며 “저 문재인 반드시 대구의 마음을 얻겠다, 정권교체의 문을 대구에서 열겠다, 통합의 문을 대구에서 열겠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 대구에 달려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이날 연설에선 ‘적폐’란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은 반면 유독 ‘통합’은 강조해 불과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에서 대선 전략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줬는데, 연합뉴스와 KBS가 지난 8~9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대통령이 국민통합과 적폐해소 중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하느냐’는 질문에 국민통합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답변이 51.3%로 적폐해소를 택한 43%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으로 미루어 문 후보 측이 당선 이후까지 내다보고 급히 전략 수정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중도보수층으로 외연을 확장시키고자 급거 전략을 수정한 흔적은 비단 문 후보의 연설 외에도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지난 13일 언론에 공개된 문 후보의 10대 공약과 달리 나흘 뒤인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최종 10대 공약에는 사드 국회 비준 동의 추진 부분과 기존 순환출자 해소 추진 등이 삭제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뿐 아니라 문 후보 측은 국민의당과의 치열한 영입 경쟁 끝에 상도동계 좌장인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은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국민대 교수의 지지도 거의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민주화 보수진영의 거두인 YS측 인사들과도 손을 잡으면서 이미지 변화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문 후보 캠프에선 그간 각을 세워온 비문계에 대한 손길도 적극 내밀기 시작했는데,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했던 이재명 성남시장 캠프의 비문계 이종걸 의원은 물론 보수 표심을 끌어 모으며 주목받았던 안희정 캠프 측의 비문 인사들까지도 대부분 국민의당이 아닌 문 후보 캠프를 택했다.
 
그 중에서도 이목을 끌었던 인물은 비문계 거물로 안희정 캠프의 좌장 역을 맡았었던 박영선 의원인데,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문 후보 캠프에 합류한 지난 16일 박 의원은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통합과 국가개혁, 통합정부의 아젠다를 놓고 문 후보와 충분히 협의했고 문 후보의 결연한 통합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문 후보의 압도적 승리와 국민 통합을 위해 문 후보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겠다”고 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원 외에 탈당설이 돌았던 변재일 의원과 진영 의원도 문 후보 캠프에 함께 합류한 데 이어 문 후보와 냉전을 이어간 끝에 탈당까지 했던 김종인 전 대표까지 적극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와 관련 우상호 민주당 선거대책위 공동선대위원장은 18일 “상도동계로 불리어지는 분들이 상당히 진척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 전 대표에 대해서도 “박영선 의원 말에 따르면 손사래를 치지는 않으셨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렇듯 가속도가 붙은 문 후보의 ‘통합 행보’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점점 더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일단 국민통합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비문계의 주장에 문 후보가 응했던 만큼 이들 비문계 측 발언을 통해 그 범위를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는데, 박영선 의원은 17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나와 “통합정부는 탄핵에 찬성했던 세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규정해 탄핵에 반대한 자유한국당 이외 세력과의 통합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다만 박 의원은 적폐 청산에 대해선 같은 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적폐란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성격 규정을 좀 더 분명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앞으로는 (문 후보가) 그 단어를 아마 거의 사용하지 않으시지 않을까. 선거운동의 주요 키워드가 국민통합이고 통합정부고 국가개혁”이라고 입장을 내놔 적폐 청산 추진 동력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김두관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확실히 못 박았는데, 그도 18일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한 자리에서 “적폐청산이란 단어는 편 가르기 하는 인식이란 지적도 있었다”며 “다른 정당에선 ‘문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 빼고는 다 적폐세력이냐’란 오해를 근거로 활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같은 의미라면 긍정적으로 완전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사용키로) 정리했다”고 설명해 사실상 적폐청산 구호가 폐기됐음을 분명히 했다.
 
◆ 경계 나선 국민의당, 文 ‘통합론’에 맹공
 
▲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유세에 나서고 있다. ⓒ안철수 국민캠프

문 후보의 이러한 전략 수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측이었다.
 
이미 국민의당에선 지난 17일 김유정 국민캠프 대변인이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후보가 적폐청산 구호를 폐기했다고 한다. 안 후보를 따라 이제라도 통합을 얘기하는 건 환영하지만 그에 앞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며 “안 후보가 통합과 미래를 말할 때 문 후보는 분열과 편 가르기로 응수했다. 적폐청산 구호 폐기에 앞서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견제구를 던진 바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18일 국민의당 김경록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재인 후보는 어제 대구에서 대통합을 얘기하면서 ‘영남의 지지로 문재인이 당선되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웃을 것’이란 궤변을 늘어놓았다”며 “문 후보가 갑작스레 ‘대통합’ 운운하면서 대구, 경북에 손을 내밀고 박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웃을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사자인 안 후보도 전면에 나서 문 후보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하루 전 문 후보가 찾았던 대구를 방문한 안 후보는 대구백화점 앞 유세에서 “저를 지지하는 국민을 적폐라고 공격했던 문 후보가 이제 와서 통합을 말합니다”라며 “하지만 통합은 국민을 위해 하는 겁니다. 선거 이기고 나서 다시 계파패권으로 돌아가는 것은 통합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문 후보의 갑작스런 통합 주장을 꼬집었다.
 
당 기반인 호남에서 문 후보에 우세를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자신을 밀어주고 있는 보수 표심까지 문 후보에 빼앗길 수 없다는 안 후보의 필사적인 심경이 느껴지는 대목인데, 적폐청산까지 일견 접어두는 듯한 문 후보의 ‘통합론’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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