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여부 놓고 정치권 ‘갑론을박’ 논쟁
탄핵 이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대면조사는 처음 실시되는 만큼 검찰은 한웅재 형사8부장과 이원석 특수1부장 등 부장검사 2명을 투입해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강요 등 13개 혐의를 놓고 중앙지검 10층 1001호실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집중 조사에 들어갔는데 검찰로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소환하는 데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르다보니 이날 그동안의 특검 수사 내용은 물론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문제 등 여러 사안을 포함한 조사를 강도 높게 진행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검찰이 이번 수사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각 당 대선주자들까지 나서서 저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논란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 한국당 제외한 4당, 朴 반응에 한 목소리 비판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원론적인 대국민 메시지만 던진 21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은 한 목소리로 비판적 반응을 쏟아냈다.
먼저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에 대해 “저 정도의 담화로 얘기하는 건 무책임”이라며 “구속을 피하려는 피의자의 필사적 계산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같은당 윤관석 수석대변인도 구두논평에서 “지난번 청와대에서 퇴거하면서 강력한 불복 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에 검찰 조사에서도 일관된 부인을 할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며 “끝까지 부인하는 태도를 버리고 검찰 수사에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박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윤 대변인은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은 검찰, 특검, 헌재의 출석을 피해왔지만 이제 ‘민간인’ 신분”이라며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죄하는 태도와 진실 규명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그는 검찰을 향해서도 “이번이 명예회복의 마지막 기회”라며 “검찰이 엄정하게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해야 이후 박 전 대통령 신병 처리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탄핵국면도 수습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 뿐 아니라 국민의당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해 날선 발언을 내놨는데, 박지원 대표는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지방자치법 개정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조사에 대해 “또 한 번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어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변명하려고 하지 말고 국민 앞에 전직 대통령답게 솔직히 인정해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같은 당 김경진 수석대변인 역시 구두논평에서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다면 본인이 조사받는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정치적 책무가 있다”며 “무성의한 발언 두 마디만 내놓은 건 전직 대통령으로서 직위나 정치적 책무의 엄중함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검찰 출석 당시 짤막했던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지적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탄핵선고에 대해 수긍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드러낸 것”이라며 “증거인멸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김 대변인은 앞서 이날 오전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선 “전직 대통령이었던 이유 하나만으로 구속이 안 된다면 이건 헌법상에 특수신분을 창설하는 일이기 때문에 현재 국민들이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검찰이 3~4일 정도는 사회적인 의견 청취, 여론 수렴의 절차적 시간을 가진 후에 영장을 청구하고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에선 당연히 발부하고 구속될 것”이라고 금주 중 박 전 대통령의 구속될 것까지 전망하기도 했다.
정의당에서도 심상정 대표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일말의 기대로 박 전 대통령의 입을 쳐다봤던 국민들 입에선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약속이나 한 듯 내뱉는 성의 없는 말 뿐”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사법처리하면 된다. 국민통합이니 국격을 들먹이면서 살살하자고 하는데 안 될 말”이라고 박 전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렸다.
심 대표 외에 한창민 대변인 역시 같은 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을 겨냥 “최소한의 반성을 기대했던 국민들을 다시금 허탈하게 만드는 말이었고 무엇이 송구스러운지조차 없는 불성실한 모습”이라며 “검찰은 특검 수사에서 조금이라도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압박했다.
심지어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에서도 다른 야권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내놨는데, 오신환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국민들에게 보다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원했건만 끝내 형식적 입장만 밝힌 채 검찰청사로 사라졌다”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지 않은 데 대해 참으로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 한국당, 朴에 대한 예우 강조…구속엔 미온적
반면 자유한국당에선 이들 정당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내놓았는데, 대체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거나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왜 박 전 대통령 얘길 우리에게 하나. 이제 당이 이렇고 저렇고 할 얘기가 아니다”라며 “무슨 얘기를 해봐야 박 전 대통령과 아무 소통 안 하는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인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듯 “300만 당원에 대해 우리가 일일이 논평해야 하나”라며 “필요하시면 그쪽 법률대리인에게 물어라”라고 신경질적 반응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그나마 한때 친박 중진으로 불리기도 했던 정우택 원내대표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중앙지검 앞에서의 박 전 대통령 메시지에 대해 논평했는데 “헌정사상 4번째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 모습을 보면서 저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국가적 비극에 참담함과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하실 말이 많았겠지만 오늘 굉장히 절제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는 “국가적 품격과 국민 통합을 고려해 조사 과정 전후에서 전직 대통령 예우와 안전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거나 “정치권에서 미리 여론형성을 위해 구속을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밝히는 건 검찰 수사가 외부로부터 압박이나 외풍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안 되기 때문에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하는 등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야권의 반응과는 분명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한국당의 대선주자들 역시 친박 여부를 떠나 대동소이한 목소리를 냈는데, 홍준표 경남지사는 인 위원장처럼 “내가 그 말에 대해 무슨 말을 하냐”며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에 대한 논평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검찰을 향해 “요즘 검찰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 지금 검찰이 눈치보고 있는 곳은 딱 한 군데”라며 검찰이 대선 유력주자를 의식한다는 듯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에 반해 이전부터 박 전 대통령에 그다지 날을 세우지 않아온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나 강성 친박인 김진태 의원은 홍 지사보다는 적극 입장을 밝혔는데, 이 전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에게 특별한 이익을 준다든지 불이익을 줘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야권의 구속수사 주장에 대해선 “사실상 연금 상태에 있지 않느냐. 검찰과 법원도 이런 점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에둘러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또 다른 한국당 대선후보로서 ‘박 전 대통령을 지키겠다’고까지 했었던 김 의원은 아예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불구속 수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나는 당연히 그렇게 가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야권에서 구속수사) 압력을 넣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분명하게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김 의원은 검찰을 향해선 정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며 “검찰이 맨날 하는 말이 ‘원칙을 지키면서 정도를 지키겠다’고 했으니 검찰이 생각하는 원칙과 정도가 뭔지 지켜보겠다”고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 확연히 엇갈린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가 이날 조사를 통해 확정될 것인지 세간의 이목이 중앙지검으로 쏠리고 있다.
김민규 기자
sisafocus01@sisafoc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