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불복선언에 정치권 ‘시끌’…승복 당론화한 한국당은 ‘난감’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 관련 반박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파면을 선고한지 수일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정치권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2일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온 뒤 박 전 대통령이 내놓은 첫 반응에서 헌재의 판결에 불복하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게 풍겨 나왔기 때문인데, 야권에선 당장 탄핵 불복을 시사한 발언이라며 한 목소리로 성토하는 반면 일찌감치 헌재 결정을 수용하기로 했던 자유한국당에선 예상치 못한 박 전 대통령의 반응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양새다.
 
이미 박 전 대통령이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간 만큼 정치권이 이젠 조기 대선 준비에 몰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이 내놓은 ‘탄핵 불복’이라는 의외의 반응이 이슈로 급격히 떠오르면서 탄핵 국면에서 벗어나 대선 정국으로 옮겨가는 듯했던 정국 향방이 다시금 유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朴 “시간 걸려도 진실 밝혀질 것”…장기전 불사 의지 드러내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삼성동 사저로 돌아온 뒤 친박계 인사이면서 청와대 전 대변인 출신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헌재의 파면 선고 이후 자신의 첫 입장을 내놨었는데,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선 제가 안고 가겠다”며 일견 판결을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밝혀 결국 끝까지 맞서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특히 당시 기자들이 헌재 결과에 승복한다는 말씀이 있으셨냐는 질문에도 민 의원이 “그런 말씀 없었다”고 일축한 점에 비추어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자신은 억울하며 헌재 판결에 불복한다는 속내를 에둘러 내비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정국 동안 극심한 국론 분열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자신의 지지층을 향한 반응만 내놔 사실상 국론 분열을 통한 여론전 흐름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중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탄핵 정국을 마무리하고 대선 채비에 나서려던 정치권은 박 전 대통령이 내놓은 뜻밖의 반응에 격앙된 목소리로 맞불을 놓기 시작했는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물론 바른정당까지 모두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강도 높게 성토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은 끝내 국민이 아닌 자신과 친박을 선택했다. 뉘앙스 그대로 불복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이 몇 갑절 더 커질 것”이라며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정무적 고려 없이 단호한 수사로 진실을 규명하고 죄를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박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 "파면당한 대통령의 승복, 반성, 통합의 메시지는 끝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야당인 국민의당에서도 주승용 원내대표가 같은 날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최소한 국정혼란에 대한 과오에 대해서라도 국민에게 사죄하는 게 도리였다”며 “헌법 수호의 의지가 전혀 없다. 진실은 청와대가 아니라 검찰에서 밝히는 것”이라고 박 전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에서도 대표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날 확대중진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을 겨냥 “분열과 갈등의 여지가 있는 메시지를 남긴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며 “지금이라도 헌재 판결 존중과 국민 통합 의지를 밝혀주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뿐 아니라 야권 대선주자들까지 이 같은 비판 대열에 함께 했는데, 대선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더문캠 일자리위원회 출범식’ 뒤 기자들과 만나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은 것은 우리 국민과 헌법에 대한 모욕”이라며 “사죄하고 승복하는 모습으로 국민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함께 해주는 것이 박 전 대통령에게 남은 마지막 도리”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같은 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지사 역시 “사법적 대원칙과 정의는 권력자의 위치에 있든 없든 벗어날 수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한 데 이어 “헌법질서와 헌법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지지받을 수 없다”고 친박 의원들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또 다른 민주당 후보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아예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대통령은 탄핵에 승복하지 않고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지지자를 규합하고 있다. 적폐 세력 그 누구도 반성하지 않았다”며 “적폐청산을 위해 박근혜, 이재용 등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사면 불가 방침을 공동천명하자”고 다른 후보들에 제안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대선후보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도 같은 날 종로 조계사 조계종 총무원을 예방한 뒤 박 전 대통령의 헌재 불복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 헌재 판결을 존중하고 또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검찰 수사에 협조하셔야 한다”며 “자연인 신분으로 검찰에서 수사 요구가 있을 때 수사를 받고 진실을 밝히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박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밖에 바른정당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유승민 의원 역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중진회의에서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건 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국민에 대한 배신이고 헌법에 대한 배신”이라고 박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 한국당, 朴 ‘불복 발언’에 자중지란 빠지나
 
이 같은 반응 속에 박 전 대통령을 배출했던 자유한국당은 이미 헌재 판결 수용을 당론으로 결정했음에도 이 같은 논란이 일어나자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데,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가타부타 논평할 생각이 현재로선 없다”면서도 “우리 당론은 이미 아쉬움은 있지만 헌재 결정에 대해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또 대한민국 발전 시각에서도 탄핵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제 탄핵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남기고 이것을 계기로 자유한국당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떻게 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국민을 위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지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가고 박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입장을 표하고 있는 데 대해선 “어떤 의미에서 갔는지는 당 차원에서 알아보겠다”면서도 “그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 사저에 가는 것은 그동안의 개인적 인연”이라고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의 불복 발언에 부응해 적극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인데, 박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했던 김진태 의원은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헌재 결정은 법리를 무시한 정치판결”이라며 “우리 모두가 헌재 결정에 동의하고 재판관들을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마찬가지로 불복 의사를 드러냈다.
 
또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시간은 걸려겠지만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는데 저 윤상현도 동의한다”며 김 의원과 함께 이 같은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에 반해 당내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는데, 자유한국당 내 비박계로 분류되는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같은 날 ‘재철생각’이란 보도자료를 내고 “얼마 전까지 헌법의 마지막 수호자였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헌법을 무시하는 듯해서는 안 된다”며 “최소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인다’는 정도의 발언이라도 기대한다는 건 무망한 것이냐”고 박 전 대통령을 한껏 몰아붙였다.
 
비록 당론은 헌재 판결 수용으로 결론 났음에도 이렇듯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의원별로 의견이 엇갈리자 자중지란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를 의식한 듯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당론과 반대되면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만 고수할 뿐 헌재 판결에 불복하는 친박 의원들에 대한 징계 여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자칫 이번 사안이 또 다른 분당 사태를 초래할까 염려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마냥 상황을 외면만 하기엔 친박과 비박 간 시각차가 너무도 분명해 일단 당론을 다시 거론하는 선에서 ‘불복 발언 논란’을 어느 정도 매듭지을 필요가 있었다.
 
조기 대선까지 앞두고 있는 판국에 끝까지 박 전 대통령을 끌어안으려고만 하다간 역풍만 맞게 될지 모른다는 점을 다분히 염두에 둔 건데, 그렇다고 한국당 단독으로 이를 천명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보니 때마침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과 원내교섭단체 원내대표들 간 회동이 있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원내대표들과 함께 헌재 판결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해 국면 수습에 들어갔다.
 
이로써 내부 정리에 들어가고 어떻게든 대선 국면으로 전환해 탄핵 정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심산이지만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또 다시 어떤 발언을 내놓을 경우 여기에 부응한 친박계 의원들 역시 이번처럼 당내를 요동치게 할 수 있어 한동안 한국당 지도부에 ‘좌불안석’인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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