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 한 목소리 강조 속 與 “대선체제 변환”…野 신중 기류

▲ 탄핵심판 선고 하루 전인 지난 9일 오전 11시 삼엄한 경비속에 탄핵 찬반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 유우상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통령이란 기록을 세운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만장일치 의견으로 대통령직 파면 판결을 받고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첫 현직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게 되어 형사소추 면책특권이 사라지면서 더는 검찰 수사에 불응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고 자유한국당 역시 박 대통령 탄핵과 동시에 집권여당이란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새 전기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반면 야권은 한 목소리로 탄핵 인용이란 결과에 사필귀정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국론이 극심하게 분열된 상황을 의식했는지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다소 담담하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여야의 희비가 분명하게 엇갈린 가운데 이날 대통령 탄핵과 동시에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조기 대선에 대해서도 각 당은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60일 필승전략’을 구상하는 데 골몰하고 있어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朴 대통령 탄핵 기점으로 ‘보수’ 중심축도 이동할까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과를 접한 자유한국당은 내부적으로 제각기 다른 속내를 드러냈다.
 
당 지도부를 비롯한 대다수 의원들은 책임을 통감한다는 의견부터 판결에 유감이라는 반응에 이르기까지 각자 다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결과에 승복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일치된 입장을 보였지만 일부 친박 성향이 강한 정치인들은 강한 불만을 숨길 수 없었는지 침묵하거나 헌재 판결을 맹렬히 비난하는 등 잠시 불복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먼저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헌재의 결정은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겸허히 수용하고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한마음 한뜻으로 굳건한 의지를 가다듬어야 한다.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원내대표는 “좌파세력이 득세하고 대세론을 펴고 불안한 안보의식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할 때 (국민이) 자유한국당을 한 번 더 믿어줄 수 있다”며 “오늘 탄핵 결정이 나서 마음이 무겁더라도 우리가 갈 방향에 대해 혜안을 느껴야 한다. 보수대통합의 대선 승리를 위해 아픔과 안타까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지도부의 이 같은 입장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통령 탄핵이란 악재는 가급적 빨리 털어내고 이제 조기 대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적 측면을 반영한 발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분명히 하듯 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박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 직후에도 기자들에게 “어떤 로드맵을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일요일부터는 대선 체제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대선체제 변환의 모드로 바뀔 것”이라며 “내일 비대위 소집을 하고 대선경선관리위원회 구성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차주부터 한국당은 곧바로 대선체제로 돌입할 모양새지만 여전히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라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듯 일각에선 여러 불만 어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아직은 당내가 불안정한 형국이다.
 
일례로 친박 핵심인 조원진·윤상현 의원 등은 헌재 판결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훗날 법정에서 다른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반감을 드러냈고, 강성 친박 인사로 태극기 집회에 꾸준히 참석해 온 김진태 의원은 “마녀사냥의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대한민국 법치는 죽었다”며 헌재를 강도 높게 비난하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이에 반해 그간 자유한국당과 보수적통 경쟁을 벌여오면서도 저조한 지지율에 발목이 잡혀있던 바른정당은 대통령 탄핵을 반등의 계기로 삼겠다는 듯 지도부가 전격 총사퇴하고 주호영 원내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해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는데, 대통령 탄핵을 단순히 호재로 삼기보다는 먼저 양분된 민심을 추스르는 대통합 노력에 집중하겠다고 천명했다.
 
▲ 남경필 경기지사는 반패권 세력을 주축으로 한 연정을 주제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자유한국당에 있는 탄핵에 찬성한 분들은 거기 있을 명분이 없다”며 “한국당에서 나와 바른정당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 길을 걷든지 지금은 본인이 결단할 시기”라고 사실상 탈당을 촉구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당장 위기에 처한 한국당 내부를 흔들기 위한 목소리 역시 높여가기 시작했는데, 바른정당 대선후보인 남경필 경기지사는 이날 반패권 세력을 주축으로 한 연정을 주제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자유한국당에 있는 탄핵에 찬성한 분들은 거기 있을 명분이 없다”며 “한국당에서 나와 바른정당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 길을 걷든지 지금은 본인이 결단할 시기”라고 사실상 탈당을 촉구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불출마로 무산되었던 한국당 내 잔류한 일부 비박계의 2차 탈당을 이번 탄핵을 전기 삼아 유도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는데, 현재 이들의 규모가 대략 30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 만큼 실제 2차 탈당이 이뤄진다면 조기 대선을 준비하려는 한국당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 90여명에 이르는 한국당에 비해 32명에 그치는 원내 제4당이라는 규모 때문에도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좀처럼 얻기 어려웠던 바른정당이 한국당에서의 탈당 의원들을 흡수해 한국당 의석수와 비슷하거나 이를 넘는 규모로 반전을 이뤄낸다면 전략 투표를 하려는 보수 유권자들까지 끌어갈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아직 몇 가지 변수는 남아 있는데 바른정당 대선후보 중 그나마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유승민 의원도 한국당의 대선잠룡인 홍준표 경남지사를 압도하는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점, 박 대통령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율 역시 보수 성향 대선후보 중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극복해야 낼 과제로 꼽히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일부 여론으로 인해 국론 분열 양상이 지속되고 있고, 국가원수 부재상황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된 만큼 외연 확장에 한계가 분명한 황 대행이 굳이 대선 출마를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공직선거법상 대선일(5월 9일로 잡을 경우)로부터 30일 전인 오는 4월 9일까지 황 대행이 대통령 권한대행직에서 사퇴한다면 대선 출마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野, 탄핵 인용 반기면서도 ‘몸조심’ 분위기
 
한편 야권은 이번 헌재의 탄핵 인용 판결로 한층 힘을 받은 분위기지만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자칫 자만심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는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 선두권 대선후보들을 가진 민주당에선 이런 기류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는데, 이날 열린 비공개 의총에선 “환호작약하지 말자”면서 자제하자는 뉘앙스의 발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심지어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유명한 설훈 의원까지 “지금은 배척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조심스러운 모습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민주당은 이날 의총에서 향후 당 차원의 촛불집회 참석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당 깃발 등 상징물도 쓰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는데,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내려진 이상 장외집회에 기댄 여론전을 지속하는 건 국론분열만 부추겨 대선을 앞두고 괜한 역풍만 맞을 가능성을 높일 뿐 별 다른 실익이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발맞춰 민주당 대선주자들도 일제히 국민 통합 필요성에 방점을 뒀는데, 문재인 전 대표는 헌재 선고 뒤 박광온 캠프 대변인을 통해 “이제 나라를 걱정했던 모든 마음들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고 입장을 내놨으며 안희정 충남지사도 이날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 모두가 화합하고 통합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면서 “이를 위해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그동안 촛불을 들었던 분, 태극기를 들고 나왔던 분, 진보와 보수, 남녀노소, 영호남, 재벌과 노동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의당 역시 탄핵 판결에는 반기는 표정이면서도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통합을 강조했는데, 박지원 대표는 헌재의 탄핵 판결 직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국민의당이 국민 혼란과 불안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데 모든 것을 던지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또 탄핵 인용 결정을 대선 지지율 상승을 위한 전환점으로 삼고자 했는지 그간 안철수 전 대표와 손학규 전 지사 간 갈등의 원인이 되어왔던 경선 룰 문제도 이날 즉각 ‘현장투표 80%, 여론조사 20%’로 합의하며 빠르게 매듭짓고 4월 첫 주에 최종 후보를 선출하겠다고 밝히는 등 대선 경선 준비에 가속도를 내는 데 주력했다.
 
이는 탄핵 이후 박 대통령에 반발했던 촛불 민심은 점차 차분해지면서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 만큼 그동안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 적잖은 반사효과를 얻었던 문 전 대표의 지지율에서 어느 정도 거품이 빠질 것이란 기대 때문인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도를 지향하는 국민의당 대선후보들에게도 표심을 끌어올 여지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각 당이 나름의 셈법에 분주한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궐위가 확정됨에 따라 이날 제19대 대통령선거의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한다고 밝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직선제에 의한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대선 레이스는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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