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이진성 재판관 “박근혜, 지나치게 무성의하고 불성실했다”

▲ 헌법재판소는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면서도, 탄핵사유 중 이른바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사진은 헌재 앞에서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탄핵’의 첫 번째 사유”라고 외치는 대학생들의 모습. 사진 / 고승은 기자
[ 시사포커스 / 고승은 기자 ] 헌법재판소는 10일 ‘박근혜 탄핵’을 인용하면서도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을 탄핵사유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무 수행 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 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 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심판 절차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탄핵 사유로 판단하지 않았다.
 
한편 헌법재판관 중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피청구인은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보충의견을 냈다.
 
그러면서도 “이 사유만으로는 파면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했다.
 
◆ ‘성실’ 의무 위반…“불행한 일 반복돼선 안돼”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대처와 관련, “국가 위기 상황의 경우 대통령은 즉각적인 의사소통과 신속한 업무수행을 위해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해야 함에도, 피청구인은 (세월호)사고의 심각성 인식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있으면서 전화로 원론적인 지시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은 오전 10시 15분과 22분경 (김장수)국가안보실장에게, 30분경 (김석균)해경청장에게 전화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주장하나 통화기록을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통화가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피청구인 주장의 최초 지시 내용은 매우 당연하고 원론적인 내용으로서, 사고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려는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구체성 없는 지시를 한 것”이라며 “결국 위기에 처한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심도 있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피청구인은 그날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이를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질타했다. 사진 / 고승은 기자
이들은 결론적으로 “피청구인은 그날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이를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초래된 국가 위기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그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은 지나치게 불성실했다”며 “피청구인은 헌법 제69조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따라 대통령에게 부여된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두 재판관은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유만 가지고는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상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파면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이같은 ‘성실 의무 위반’을 지적한 취지를 알렸다.
 
◆ 세월호 가족들 “매우 유감, 진상규명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
 
이처럼 많은 이들의 외침과는 달리 아쉽게도 ‘세월호 7시간’은 탄핵사유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과 이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이 모인 4.16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헌재의 탄핵인용은 당연한 결정”이라면서도 “헌재가 박근혜의 세월호 참사 당일의 직무유기를 탄핵사유로 인용하지 않은 것은 상식 밖의 일로서 매우 유감”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4.16연대는 “청와대가 당일 행적에 대한 기록과 정보를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특검 등이 당일 행적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헌재가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렀다는 사실확인만으로 탄핵근거로 삼기는 쉽지 않았을 수 있다”면서도 “진실을 가려온 박근혜의 권한남용이 특조위 조사도 특검수사도 헌재 탄핵심판도 모면하는데 통했다는, 법치의 관점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선례가 남겨지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 세월호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박 전 대통령에게 ‘세월호 7시간’을 밝히라고 요구해왔다. 사진은 광화문 세월호 천막의 모습. 사진 / 고승은 기자
그러면서 “헌재의 판단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와 수사를 회피하거나 위축시키는 데 악용돼선 안된다”며 “국민생명권이 헌법상의 권리로도 구체화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뒤, “이제 진짜 진상규명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들인 <다이빙벨> <나쁜나라> <업사이드다운> 등을 배급한 시네마달 측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촛불이 승리한 오늘, 박근혜의 세월호참사 당일의 직무유기를 탄핵사유로 인용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진짜 진상규명의 시작”이라며 “세월호에서 살아난 사람, 형제자매를 잃은 이들, 희생자를 수습하기 위해 애썼던 민간잠수사거짓과 은폐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사람, 망각과 싸우며 촛불을 드는 연극인, 추모와 교육의 기억공간을 만드는 유가족의 3년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리고 돌아오는 봄, 우리가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을 밝히라는 요구에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박 전 대통령이 이제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감에 따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박영수 특검팀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얼마나 박 전 대통령 상대로 ‘세월호’ 관련 수사를 제대로 할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