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행불자 위한 위령제 열고, 영산재와 추모식 등 다양한 행사 가져...

광주 5.18민주화운동행불자위령제 봉행위원회(상임 공동봉행위원장 김정길·박강수)가 9일 오전 광주 국립 5.18묘지에서 유가족과 사회 각계인사, 일반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광주 5.18민주화운동 행불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열고 영산재와 추모식 등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 24년의 아픔 올해로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24주년을 맞이했다. 1980년 5월 빛고을 광주 거리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고 군사 독재에 맞서 거리로 뛰어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민주화를 향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았으며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서야 꿈에 그리던 자유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동안 확인된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은 유공자로 인정받았으나, 수백명의 행방불명자들은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남아 있는 가족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수많은 행방불명자들의 가족들은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고, 행방불명된 이들은 생사도 모른 채 한을 품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 이에 행불자위령제 봉행위원회 측은 "5.18민주화 운동 24주년을 맞아 광주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행방불명된 억울한 영혼들을 때가 늦었으나 이제라도 위로하고 명예가 회복되는 계기를 삼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자 한다"고 행사취지를 밝혔다. ▲ 행사개요 위령제 식전행사에서는 영산재 보존회 법현스님(동국대 교수. 중요 무형문화재 제 50호)외 스님 7명이 스님들의 공양의식인 영산재를 가졌다. 영혼을 발심시키고, 그의 귀의하게 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한다는 영산재는 국가의 안녕과 군인들의 무운장구 및 큰 조직체를 위해서도 행한다. 또한 5.18민중항쟁 추모탑 앞에서 광주향교 신형철 전교의 집례로 이루어진 전통제례는 참여자들이 하나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추모식은 추모사와 추모시, 추모가 등으로 이루어졌다. 행불자 가족회 회장이며 봉행위원장인 김정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위령제가 억울한 행불자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5.18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화합의 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천도교 김광욱 전 교령은 추모사에서 "살아있는 우리들이 어찌 행방불명되신 님들의 성령을 외면한 채로 광주민주화 운동의 거룩한 듯을 기릴 수 있겠냐"며 "살아 있는 우리들 정성이 부족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음을 너그럽게 용서할 것"을 전했다. 5.18 항쟁 당시 직접 작성한 '빛고을 시부'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낭독한 전 아태평화재단 총 여성회장이며 환경문인회 작가인 정옥자 회장은 이날 행사에 참여한 전옥주(경기시흥.55)씨를 소개하며 광주시의 도움을 부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전씨는 당시 마이크를 잡았던 '민주화의 꽃'이며 광주시민을 목소리 하나로 집결시킨 장본인이고 진정한 희생자"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은 아이들 네 명을 데려다 키우는 엄마로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지금은 행불자가 어딘가 방치된 채 있지만 이들이 안장에 돌아왔을 때 보람 있는 국립 묘지가 되고 민주화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 당시 5공, 6공의 특전 대장이였던 정호영 장군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겸허한 자세로 희생자 앞에 뉘우치고 헌신할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광주 민주화는 사는 것"이라고 뜻을 밝혔다. 추모가를 부른 박영자씨는 애절한 창법으로 5.18행불자를 위한 유령승천입지곡을 불러 감동과 함께 눈물을 자아냈다. 박씨는 막바지에 "가슴이 북받쳐 목이 메여 소리를 다 하지 못한 것에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으며 삼촌이 행방불명되었다는 한 유가족은 인터뷰 요청에 눈물로 대답을 대신 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15일 총선을 앞두고 예민한 시기여서인지 정치인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취재 이성심 기자 lss@sisafocus.co.kr 사진 임한희 기자 lhh@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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