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권성동 ‘핑퐁’ 속 후폭풍 우려한 野 책임 공방에만 매몰

▲ 정세균 의장(가운데)가 여야 간 합의를 전제로 내세운 채 2일 본회의에서도 끝내 특검 연장안을 직권상정하지 않으면서 야권 내 책임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난 2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로 특검 연장이 사실상 불발되면서 박영수 특검팀은 현재 공소 유지를 위한 인원 40여명 외엔 모두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적어도 특검 연장 사안에 있어선 원내 3분의 2 가까이 차지하는 야4당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손 한 번 쓰지 못한 채 무산된 데에는 나름의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표면상으로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문제 삼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거부와 권성동 법사위원장의 반대로 특검 연장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지만 단순히 이들이 원칙주의를 고수하는 차원에서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만 해석하기에는 야권 모두 사활을 걸고 있는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 정세균, ‘특검 연장안’ 강행 처리 부담 느꼈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특검 연장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법사위 몇몇 위원들 때문에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밟기 어렵다”며 “직권상정도 무산됐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국민에게 솔직히 말씀드린다”고 특검 연장 무산을 공식화했다.
 
특검 연장안이 처리될 경우 3월 초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이후에도 탄핵 정국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압박을 지속할 수 있는 만큼 민주당으로선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기에 전날 추미애 대표가 정세균 의장을 직접 만나 직권상정해달라고 설득할 정도로 적극 노력해왔으나 정 의장은 국회법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어렵다는 답변만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 의장은 앞서 지난해 12월 28일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최순실 강제구인법 직권상정을 요청했으나 그 때 역시 여야 교섭단체의 원내대표 간 합의를 들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바 있어 이번 역시 직권상정의 요건 중 가장 유력하게 내세울 수 있을만한 ‘국가비상사태’에 대해 당시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으로 해석해 끝내 어렵다고 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16일 국회의장 취임 간담회에서 정 의장은 직권상정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남용되어선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라면서도 “그러나 국회의 존재의의가 무엇인가. 국민을 위해, 국회를 위해 필요하면 쓰라고 준 권한이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용할 때가 온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어 국민의 70% 이상이 특검 연장을 바라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온 상황에서 정 의장의 이 같은 행동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했는지 정 의장은 지난달 28일 야4당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설사 특검법을 직권상정해서 통과시킨다고 하더라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실제로 특검이 활동을 계속할 수 없는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박영수 특검 인력이 그대로 수사를 맡는다는 내용을 특검법 부칙에 넣어 소급 적용하는 것도 논란이 있다”며 자신이 반대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이는 정 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본회의에서 특검 연장안이 처리된다고 해도 황 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다시 반려되어 버리면 아무리 재의결 요건인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의결정족수를 충족할 수 있다고 한들 그 사이에 현재 특검팀의 활동 기한이 종료돼 조기 대선 국면으로도 바쁜 와중에 새 특검까지 다시 출범시켜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에둘러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먼저 국회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현재 특검 연장에 반대하고 있는 3명의 여당 법사위원을 설득해 본회의로 넘기면 처리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하며 특검법 처리에 대한 부담을 법사위원장인 바른정당 소속의 권성동 의원에게로 넘겼다.
 
그렇지만 본래 야당인 민주당 출신임에도 정 의장이 이렇듯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이들과 공조 중인 국민의당에선 당장 문 전 대표 쪽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비록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국민성장’ 회원의 날 행사에서 “테러방지법도 (19대 국회 때) 직권상정 됐는데 그보다 훨씬 더 필요성이 강하다”며 “직권상정해서라도 특검연장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같은 날 고연호 국민의당 대변인은 “문 전 대표가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기에 정 의장이나 추 대표는 문 전 대표가 하라는 대로 한 것”이라고 ‘문재인 배후설’을 제기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고 대변인은 “문 캠프 쪽에서는 이대문(이대로 문재인) 전략을 쓰고 있다”며 “만약 직권상정으로 특검법이 통과되면 (보수대결집 등 여러 변수로 기존의) 대권 판이 흔들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문 캠프가 손해 볼 수도 있기에 직권상정을 안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대선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 전 대표가 굳이 상황변화를 초래할 만한 시도를 하진 않으려 할 것이란 해석인데, 이 같은 주장은 단순히 정 의장이 반문 성향은 아니란 점과 대선 국면만 놓고 본다면 일견 맞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특검 연장에 동의하고 있는 유권자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삼고 있는 민주당으로선 특검 연장 불발 시 제1야당이란 위치상 가장 먼저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는 부담이 있기에 설득력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 남은 건 ‘책임 논쟁’ 뿐…野 공조 분열 양상
 
▲ 정세균 의장이 직권상정하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한 민주당에선 당장 법사위에서 정 의장과 같은 이유로 특검 연장안 처리를 거부하고 있는 바른정당의 권성동 법사위원장(사진)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정치권은 이미 특검 연장을 어떻게든 시도하겠다는 움직임보다는 특검 연장 무산을 전제하고 벌써부터 그 책임을 누구에게 씌우느냐로 각자 각을 세우는 모양새인데, 무엇보다 대선 후위주자를 가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서 국면전환의 계기로 삼으려는지 민주당 측과 이 같은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김병준 총리후보자 지명 당시 ‘선 총리 후 탄핵’ 주장을 내세웠던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문 전 대표 측이 그 때 황 대행이 아닌 김 후보자로 바꾸는 데 동의하지 않은 채 대통령 2선 후퇴 결국 이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고 ‘민주당 책임론’을 내세우고 있고, 바른정당 역시 국민의당과 근거는 달라도 ‘민주당 책임론’이라는 점에 있어선 한 목소리를 냈다.
 
그 중에서도 정병국 바른정당 대표는 2일 국회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특검 연장안 처리와 관련해 자당 소속의 법사위원장이 있는 법사위에서 처리하는 데 대해선 “지금 법사위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포함해서 논의해야 하는데, 그건 (특검 연장을) 안 하자는 얘기”라며 “결국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의지가 있느냐, 이는 민주당의 의지”라고 역설해 민주당에서 정 의장의 직권상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민주당에선 소속 의원 35명이 2일 공동성명을 내고 “바른정당의 당 대표 및 원내대표의 특검법 연장안 처리 합의에도 불구하고 권 위원장은 여야 간 합의에 따른 처리만을 고집함으로써 특검 연장안의 법사위 통과를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며 “권 위원장의 입장이 당론과 다른 것인지 아니면 당 지도부와 협의 하에 역할분담 차원에서 바른정당이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권 위원장을 들어 ‘바른정당 책임론’으로 맞받아쳤다.
 
한 발 더 나아가 박완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경우 지난달 28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권 위원장이 어렵다면 지금까지 협치하고 4당 합의 하에 해야 된다고 하는 부분에선 존중하지만 예전에 사실 사회권을 다른 분한테 줘서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사회권 이양을 내세워 권 위원장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흡사 양측이 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의장과 바른정당 소속인 권성동 법사위원장의 거부를 서로 명분 삼아 책임을 놓고 핑퐁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안건을 처리하고는 싶지만 직권상정이나 강행 처리로 불어 닥칠 혹시 모를 후폭풍에 대한 책임은 결코 안고 싶지 않다는 각 당의 속내가 드러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느 쪽으로 판결 나오든 상당한 후폭풍이 예견되고 있는 탄핵심판 선고까지 앞둔 상황에서 여당을 규모로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이는 직권상정마저 강행할 경우 자칫 탄핵심판까지 싸잡아 편파적이라고 몰아갈 명분만 여당 측에 줄 수 있다는 점도 각 야당이 직권상정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여기며 서로 떠넘기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특검 연장안이 2일 본회의는커녕 법사위라는 첫 번째 벽조차 넘어서지 못한 채 결국 처리 무산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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