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김정은의 이복형을 죽이는 것을, 비난한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 “김정은이 김정남을 암살한 것은, 박정희가 김대중 죽이려 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문재되면서 비난의 화살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로 집중됐다. 정 전 장관은 “우리가 김정은의 이복형을 죽이는 것을, 비난한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라고도 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천안함 사건 이후 북풍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다시금 종북몰이로 대선주자 흠집내기가 시도 됐다. 안보에도 유능한 후보임을 내세우며 보수인사까지 영입하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전인범 사령관 파문이후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발언이 또 파문을 몰고왔다.
 
정세현 전 장관은 현재 문재인 전 대표의 국정자문단인 ‘10년의 힘’ 공동위원장 맡고 있는데, 20일 김정남 피살사건과 관련된 인터뷰 발언으로 범보수 진영으로부터 맹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 이런 비난과 공격은 문 전 대표에게 집중됐다.
 
 
◆“김정은이 김정남을 암살한 것은, 박정희가 김대중 죽이려 한 것과 같은 맥락”
정세현 전 장관은 20일 오전 오마이TV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해 '김정은이 김정남을 암살한 것'과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납치해 죽이려 한 것'을 같은 맥락이라고 해석했다. 그의 발언을 녹취록 그대로 살펴보면 그가 말하려던 맥락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권력에 촌수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형제간에도 얼마든지, 동복형제 간에도 될 수 있죠. 세종대왕도 현명한 분이 됐지만 태종이 세 아들 중 셋째를 왕으로 지명한 것 아니에요. 두 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는, 양녕대군은 방랑자가 되고 효령대군은 산속으로 들어갔나. (중략) 만약 한양 도성 내에 살면서 세력을 규합하거나 외부 세력과 연결돼 있었으면 온전치 못했으리라 생각해요. 그건 세종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주변의 핵심층 때문에라도 못 살아남았을 겁니다. 이번 사태도 최종결재권은 김정은이지만 현재 권력을 둘러싼 핵심층. 이 사람들이 다 기획하고 사람을 뽑고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권력의 속성이에요”
 
“전 그 사건을 보며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건 권력 장악한 사람들의 속성이구나. 1973년 8월 달의 김대중 납치도 민주국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실패해서 망정이지. 경쟁자 까진 아니었지만 불편한 사람이었던 김형욱.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지 않았어요”
 
“박정희 시절엔 선거는 형식적인 거였으니까. 71년 대선 때 바짝 추격한 게 죄가 돼서. (중략) 어쨌든 권력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무자비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김정은의 이복형을 죽이는 것에 대해, 비난한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그런 역사가 있었으니까”
 
“동백림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김형욱 납치사건 등을 뉴스를 통해 상세히 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도 그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제거 의혹이라고 할까. 발본색원. 이렇게 상각해야 하지 않을까싶습니다. (중략) 이승만 대통령도 정적을 얼마나 많이 제거했어요. 이승만은 합법적인 방식으로 제거한 적도 있었고. 김구 선생도 혐의는 그런 식이잖아요”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며 정 전 장관은 부모형제도 없는 권력의 비정함을 우리 역사 속의 예로 들면서 강조했고, 그 중 상세한 예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박정희에 더해 이승만 전 대통령까지 예로 삼았으니, 보수 혹은 극우진영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중러가 공동으로 사드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다는 것 아니에요? 사드가 가져오는 외교상 불이익이 명확한데. 사드에 대해 북한은 별 이야기를 안 해요. 자기 상대가 아니라는 거예요. 북한이 사드에 대해 격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돼요. (중략) 투자 대비 억지력을 생각하면 사드는 답이 아니에요. 사드에 대해 북한은 별 반응이 없다는 사실. 이건 대북용이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김정은, 김정남의 골육상쟁 때문에 대화를 하지 말아야한다거나. 지금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에 테러지원국 지정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고. 테러는 실제 테러를 해야죠. 이건 테러지만 형제간의 골육상쟁인데. 사실 북한 내부 문제입니다. 장소가 북한 밖에 있었다는 거지. 이건 뭐 대남도발도 아니고 대미도발도 아니잖아요. 골육상쟁을 이유로 테러지원국 지정이 과연 설득력이 있겠냐는 거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 전 장관의 경험에서 나오는 해박하고 거침없는 발언은 사드는 대북용이 아니고, 김정남 피살사건을 대북제제에 연결시키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 정세현 전 장관은 현재 문재인 전 대표의 국정자문단인 ‘10년의 힘’ 공동위원장 맡고 있는데, 20일 김정남 피살사건과 관련된 인터뷰 발언으로 범보수 진영으로부터 맹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 이런 비난과 공격은 문 전 대표에게 집중됐다. 사진 / 시사포커스 DB
◆정 전 장관 발언에 대한 비난, 문재인에 대한 공세로 집중
정 정장관의 발언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물론이고 국민의당까지 범보수진영은 일제히 덤벼들었다. ‘박정희가 김정은이랑 같다는 거냐’라는 식의 무리한 논리비약이었지만, 먹잇감으로 충분했다.
 
김문수 자유당 비상대책위원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무슨 일만 생기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부정, 비하하고, 북한 김정은 정권을 편드는 종북 좌파들의 본색을 제대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김성원 자유당 대변인도 “이러한 무책임한 발언 쏟아낸 정 전 장관이 역대 김대중 노무현 정부서 통일부 장관 2번 역임한 사실이 경악스럽다”며 “문 전 대표의 국정 자문단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어이없다”고 포문을 문 전 대표에게로 옮겼다.
 
오신환 바른정당 대변인은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라며 “이런 왜곡된 인식을 문 전 대표도 동의하는지 그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 부정에 대해 “어떻게 북한의 행위와 우리 역사를 동일시해서 보냐”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정 전 장관이 김정은 정권의 반인륜적인 국제범죄를 구시대적 발상 정도로 두둔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대한민국의 전직 통일부 장관이 가질 수 있는 인식인지 매우 의심스럽고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문재인 전 대표는 정세현 발언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고 국민 앞에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역시 화살을 문 전대표에게 돌렸다. 안철수 전 대표도 "정말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어정쩡한 초기대응, 정세현 해명성 후속 인터뷰...더 거세지는 공세
정세현 전 장관의 발언을 빌미로 문재인 전 대표에게 집중되는 공세에 문재인 전 대표의 초기 대응은 어정쩡했다. 정 전 장관의 해명성 인터뷰도 이어져 더 불을 지른 측면이 있다.
 
▲ 문재인 전 대표는 “김정남의 피살에 대해서는 여러 번 말씀을 드려서 더 보탤 것이 없다”면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발언은 국민이 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진은 백범 김구 묘소에 참배하는 문재인 전 대표. 사진 / 시사포커스 DB
문 전 대표는 21일 오후 “김정남 피살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테러이자 패륜적 범죄행위라는 게 저와 민주당의 단호한 입장"이라며 "정 전 장관의 말씀 취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와 다른 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패륜에 대한 언급만을 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21일 오전 tbs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김정남 피살을 두고 여권의 '종북몰이'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며 “김정남 사건은 권력투쟁의 골육상잔 문제인데 이를 안보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은 안된다는 발언을 한 것”이라고 했다. 또 “정치권력은 기본적으로 잔혹하다. 권력투쟁이라는 것이 그런 속성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일이나, 김 전 대통령 납치사건 등을 언급한 것”이라고 자신의 발언 의도를 해명했다.
 
해명이 먹혀들 리 없었다. 네티즌들도 들끓었다. "김정남 사건을 보며 북한은 대화할 능력도 가치도없다고 느꼈다. 저런애들과 경제교류하고 대화로 핵문제를 풀어나간다는 발상은 정말 아니다" "이런 사람들 솎아내지 않음 문재인도 답없다!!" "저러다가 정세현은 조선왕조 운운하며 김정은 왕조 정당성도 주장하겠군. 이걸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관은 선해하기엔 미심쩍은게 많음. 이러다가 몇 십 년 후 고정간첩 몇 명은 드러날 듯" "문제인 캠프에 노무현때 북한 옹호하고 퍼준 인물들 다 모여드는구나" "문재인 맞네 에고 대통령되면 나라 말아 먹겠네 뭘" "문재인 주변은 진짜 정리해야한다 저런 국가관 흐리멍텅한 머저리들 데리고 뭘 어쩌자는건지 곧 대통령될 것 같은데 정말 한숨만 나온다"는 등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공격이 이어졌다.
 
22일에는 정병국 바른정당 대표가 “국민들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북인식때문에 불안해하는 데 정책을 보좌하는 인사도 이 모양이니 문 전 대표가 만일 대통령이 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 우려스럽다”면서 “정 전 장관은 당장 국민에게 사과하고 거취를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이현재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영입 1호인 표창원 의원, 안보 강화를 위해 영입했다 중도 하차한 전인범에 이어 정세현까지 논란이 됐다”며 “문 전 대표는 사람보는 안목이 없다. ‘안목 실패 3종 세트’를 보여주고 있다”고 최근 논란된 세사람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틀째 이어진 국민의당의 거친 비난 속, 박지원은 침묵
문병호 국민의당 최고위원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 전 장관의 발언과 인식을 두둔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라며 “국민들은 정 전 장관의 발언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문 전 대표는 정 전 장관을 해임하라”라고 촉구했다. 이날 국민의당 최고회의에서는 김영환·황주홍 최고위원도 연이어서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는데, 박지원 대표만은 이에 대한 업급이 없었다.
 
결국 문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정 전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열린 '더불어 국방 안보 포럼'에 참석한 뒤 기자들에게 “김정남의 피살에 대해서는 여러 번 말씀을 드려서 더 보탤 것이 없다”면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발언은 국민이 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 전 장관 발언 이후 네티즌 사이에서는 문 전 대표를 두둔하는 반응도 있었다. “우리나라 독재시대에 분명 암살사건 있었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말 해줬다고 생각 하는데” “맞는 말 하셨잖아요” “개누리 니들도 똑같다...북한 수준이랑...” “정 장관 말 중에 어디 틀린 점이 있나...” “정세현이가 뭔소리를하건 문재인하고 뭔 상관이냐?” “김구 선생을 김정남에 갖다 대면 안되죠. 이승만의 암살 패악질이 훨씬 더 크다는 것”,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건에 공감한다” “우리나라 독재정권 북한 둘 다 비난받아야함” 등 정세현 전 장관의 발언에 수긍하고, 문 전 대표와는 상관없다는 반응들도 꽤 있었다.
 
정세현 전 장관으로서야 하고 싶은 말이 훨씬 많을 테고, 문재인 전 대표로서야 억울하면서도 정 전 장관에 대한 신뢰와 예우차원 때문에 더 골치 아팠겠지만, 선거를 앞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정치권은 논리가 아닌 감정의 ‘정글’이고, 대중들도 그렇게 쏠리게 마련이다. 확실한 조기진화 말고는 냉정과 이성은 필요 없는 곳이다. 하마터면 ‘죽은’ 김정남에게 ‘산’ 문재인이 호되게 당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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