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검찰조사 대응, 탄핵심판에 각하사유 줄 수 있어

▲ 박영수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이 불가능해 보이고, 헌법재판소의 이정미 재판관 퇴임(3월 13일) 전 선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카드로 ‘자진 하야설’이 대두되고 있다. 특검이 해체되면 후속 수사는 검찰로 넘어가는데, 검찰수사를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과 탄핵선고 전에 사퇴함으로써 헌재에 탄핵심판의 각하사유를 준다는 점에서 선택지가 될 수 있다.ⓒ청와대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박영수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이 불가능해 보이고, 헌법재판소의 이정미 재판관 퇴임(3월 13일) 전 선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카드로 ‘자진 하야설’이 대두되고 있다.
 
특검이 해체되면 후속 수사는 검찰로 넘어가는데, 검찰수사를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과 탄핵선고 전에 사퇴함으로써 헌재에 탄핵심판의 각하사유를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정우택 “대통령의 자진 하야와 정치력이 뒷받침돼야 국론분열 최소화”
박 대통령의 하야 또는 퇴진론은 인명진 바른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가 제시했는데, 이들이 말하는 ‘명예로운 퇴진론’에 일부언론이 가세해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부인에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 선택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22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대통령은 현재로서는 하야라든지 자진사퇴에 대해선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보도가 청와대에서 나오고 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선 이미 청와대에서도 검토를 한 것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걸 다시 해야 할지는 저희가 연구를 좀 해보겠다”며 “이 문제는 조건이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대통령의 자진 하야와 여야의 정치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국론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권이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두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후 당내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에 하야를 권유할 생각은 없나'라는 질문에 “여러가지 조금 뭐가 있는데 지금은 이야기하기가...”라고 대답을 주저하다가 ‘청와대와 교감한다는 뜻이냐’고 재차 질문이 이어지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이야기하기가 조금 그렇다. 하여튼 뉘앙스만 남겨놓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는 ‘투트랙’의 정치적해법이라며 “대통령 자진 하야와 여야의 고도의 정치력이 겸비돼야 하는데 이게 과연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려를 해야 하고,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탄핵 결정에 다 같이 승복을 하고 정치권이 잘 무마해서 부작용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사법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 전제라고 답했다.
 
 
▲ 특검으로부터 구속수사를 받고 기소되는 최악의 상황은 거의 벗어난 박 대통령으로서 차악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탄핵인용 선고일 것이다. 사진 / 시사포커스 DB
◆주호영·원유철 ‘명예로운 자진사퇴’...“정치적으로 해결해야”
‘명예로운 자진사퇴’는 지난해 말 정치권 원로들이 박 대통령에 건의한 ‘4월 퇴진, 6월 대선’의 연장선에 있는데, 최근 자유당에서 불을 지피고, 바른정당도 일부호응하며, 보수언론이 부추기고 있다. SNS에 ‘취임 4주년이 되는 이달 25일이 디데이’라고 날짜까지 예언하는 소위 ‘2말, 3초 하야설’이 퍼지기도 했다.
 
정우택 자유당 원내대표 13일 "저는 작년에 정치권 원로들이 '4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 6월 대선' 안을 제의했을 때부터 이런 정치 해법이 절대적으로 국회의 탄핵 소추에 앞서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탄핵 소추는 정치권의 책임지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정치적 해법에 다시 불을 당겼다. 이에 인명진 자유당 비상대책위원장도 15일 “지금이라도 탄핵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동아일보’는 “나라가 백척간두에 선 지금,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파탄으로 치닫는 것은 박 대통령 자신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쯤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 진심으로 고민해 봤으면 한다"는 글을 18일자 사설로 실으면서 미국 닉슨 대통령이 탄핵 표결 전에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사임한 사례를 들었다.
 
원유철 자유당 의원은 21일 “이대로 가면 보수와 진보 진영이 맞부딪혀 국정 대혼란만 남을 것”이라며 “각 당의 대표 등 거물들이 모여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게 현재로선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빅 테이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도 이날 “청와대나 대통령은 탄핵심판으로 가기 전에 국민을 통합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있는지 심사숙고를 바란다”며 “사법적으로 탄핵 인용이냐, 기각이냐로 풀 게 아니라 정치적 해법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부쩍 많은 언론 사설들이 정치적 해결을 촉구했다”며 “언론은 대통령이 하야 결심을 하고, 정치권은 하야에 따른 사법처리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야만 국론분열이 안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했다”고 언론을 빌어 자신의 듯을 표시했다.
 
 
▲ 퇴진론은 ‘정치적 사면’이 핵심인데, 이 지점에서 정치권은 시각차가 뚜렷하다. 바른정당의 정병국 대표도 같은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결이 다르다. 다른 야당들은 사법처리는 거래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진 / 고경수 기자
◆퇴진론의 핵심은 ‘정치적 사면’...야권 ‘사법처리는 거래대상 아니다’
결국 퇴진론은 ‘정치적 사면’이 핵심인데, 이 지점에서 정치권은 시각차가 뚜렷하다. 바른정당의 정병국 대표도 같은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결이 다르다. 다른 야당들은 사법처리는 거래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병국 바른정당 대표는 22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자진 하야가 해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대통령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모르겠는데 그런 부분들까지 가정해놓고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하야와 정치적 사면에 대해 "정치적 해결이 그렇게 연결돼선 안된다"면서 "어떤 상황이든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이뤄져야 하고, 그것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사법적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통령의 하야에 대해 “지금까지 언행으로 봐서 하지 않을 것 같다. 좀 늦었다”고 예상하면서 “어찌됐든 아무리 하야를 하더라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치외법권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사법처리를 강조했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에서 “탄핵심판을 앞둔 지금,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는 한참 전에 떠난 열차와 같은 이야기”라며 “자신으로 인해 온 나라가 혼란에 휩싸인 와중에도 자진사퇴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챙기고 사법 당국의 수사를 피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에 분노가 치민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진사퇴는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지만 이전과 같이 4월 퇴진이라는 애매한 말로 약속할 것이라 관측된다"면서 "이전의 행보에서 미뤄볼 때 박 대통령이 이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자진사퇴설은 당장 탄핵을 수포로 돌리겠다는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그동안 ‘2선 후퇴’ ‘국정에서 물러나겠다’는 얘기가 매번 나왔지만 진정성이 있었던 적이 있느냐. 박 대통령 본인이 직접 하야하겠다고 하기 전까지 우리가 반응할 필요가 없다”면서 “한국당이 간보기하는 것 같다. 괜히 거기에 대해 우리가 ‘된다, 안된다’ 하는 순간 논란만 거세진다”고 아예 논의가담을 피했다.
 
 
◆청와대 ‘하야는 절대없다’...탄핵인용 선고 임박한 상황에서 마지막 카드
청와대도 일단 부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자진사퇴설은 터무니없는 얘기이고, 내부적으로 전혀 검토한 적도 없다"며 "정치권에서 자꾸 그런 식의 얘기를 흘리는데 우리 입장은 명확하고, 더 이상 언급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그는 "이제 와서 자진사퇴하면 모든 죄를 인정하는 것인데, 그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대리인측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하야라니,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지금은 헌재 탄핵심판과 특검 조사에만 집중할 때다. 하야와 관련한 이야기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한 것으로 ‘뉴시스’는 전했다.
 
박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9일 국회 탄핵가결 직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헌재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하야불가 입장을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특검수사에 임해 온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볼 때 신빙성은 의심된다.
 
특검으로부터 구속수사를 받고 기소되는 최악의 상황은 거의 벗어난 박 대통령으로서 차악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탄핵인용 선고일 것이다. 그래서 자진사퇴는 탄핵선고 전에 쓸만한 카드이다. 헌재는 당화하겠지만, 일단 전직 대통령으로 그의 신분은 유지된다.
 
갑작스런 사퇴 후 정치권과 국민들도 혼란을 겪을 것이다. 탄핵찬성 측으로서는 ‘닭 좇던 개’처럼 잠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물론 구속수사와 엄정한 사법 처리를 요구하며 금새 전열을 다지겠지만, 성에 차지 않는 찜찜함이 있을 것이다. 탄핵반대 측으로서는 시간과 명분을 벌면서 박 대통령의 명예회복과 대선을 향한 대결집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탄핵선고가 임박하면서 거의 모든 카드를 사용한 박 대통령에게 남은 카드 중 가장 유효한 것은 ‘자진사퇴’일지 모른다. 물론 ‘정치적 사면’이 전제되어야 할 텐데, 그 역시도 협상의 상대가 없는 지금은 불가능하고, 사퇴 후 검찰 수사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시간을 끌다보면, 60일 후에 탄생할 새 대통령은 바로 그 정치적인 협상상대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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