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으로 선의로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논쟁과 대화의 첫 걸음”

▲ 20% 대의 지지율을 뚫고 급상승하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즉문즉답’ 강연에서의 소위 ‘선의 발언’으로 곤혹을 치뤘다. 반어적인 표현이고, 현장에 있었던 관중들은 다 이해한 분위기였다고 해명했으나,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진 / 고경수 기자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20% 대의 지지율을 뚫고 급상승하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즉문즉답’ 강연에서의 소위 ‘선의 발언’으로 곤혹을 치뤘다. 반어적인 표현이고, 현장에 있었던 관중들은 다 이해한 분위기였다고 해명했으나,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안희정 지사는 19일 부산대에서 열린 ‘즉문즉답’ 강연에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이어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하고 말문을 떼고서는 10초 정도 머뭇거렸다. 이 때 관객들은 웃으며 박수를 치는 등 그의 난처한 모습에 공감했다. 안 지사는 결국 “그분들도 선한의지로 우리 없는 사람들과 국민들의 위해서 좋은 정치하시려고 그랬습니다.(웃음) 근데 그게 뜻대로 안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선한 의지로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다”...문제된 발언
그는 이어서 “케이재단, 미르재단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인 대기업들의 많은 좋은 후원금을 받아서 동계올림픽을 잘 치루고 싶어 하는 마음이실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했고 이때도 웃는 관객들이 많았다. 이후 안 지사는 “그러나 그것이 법과 제도에 따르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참고적으로 저는 그 누구라도 그 사람의 마음은 그 액면가대로 저는 선의로 받아들입니다”라고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누구라도 선의로 받아들인다는 발언을 했다.
 
이후 안 지사는 “이명박 대통령도 747 잘해보고 싶었겠죠. 그래가지고 그분이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현대건설 사장님답게 24조원을 돈을 동원해서 국민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국민을 위해서 4대강에 확 집어넣는 것입니다.(웃음) 선한의지로 받아들이자구요(웃음)”라며 관객의 웃음을 샀다. 또 “그 선한의지로 받아들였을 때 우리의 그분의 실수는 무엇일까? 국가주도형 경제발전모델로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못한다는 걸 그분은 계산을 못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누구를 조롱하려고 드리는 말씀 아닙니다”라고 자신의 말이 조롱 또는 농담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밝혔다.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어” “대연정 전과 때문에 선한 의지로 안 봐”...쏟아지는 비판
이 발언이 알려지자 정치권은 거두절미하고 안 지사를 맹렬히 비난했다. 앞서 대연정 발언, 사드배치 결정 존중 발언 등에 이어서 나온 발언이라, 안 지사의 우클릭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 등 정치권은 물론 유명인사, 일반인 등 사방팔방에서 그에게 포화를 집중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20일 “안희정 지사는 토요일엔 서울에서 촛불집회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일요일엔 (박 대통령의) 선한 의지를 언급했다”며 “이곳저곳에서 말이 달라지거나 대충 넘어가선 안 된다. 안 지사의 가벼운 입에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손학규 전 대표는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훈련, 그러한 자질이 부족했었다는 게 지금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건 조금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고 의도와 달리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정치인에게는 의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결과다. 더구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국민의당에 입당한 손학규 전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박 대통령의 자질이 부족했었다는 게 지금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데, 조금 억지로 한 말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들은 민주당인사들에게서도 쏟아졌다. 이들은 대부분 SNS를 통해 비판을 이어갔다.
 
문용식 김근태재단 부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십 년 도 닦다 내려온 계룡산 도사를 보는 듯하다”고 비꼬았고, 문미옥 민주당 의원도 "안 지사님의 설명대로 반어와 비유였다고 해도 지나쳤다"며 "안 지사님의 선의는 믿고 싶지만 저들에게는 선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진성준 민주당 전 의원도 "박 대통령의 문제는 선의냐 악의냐가 아니다"라며 "그의 안중에는 헌법도 법률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의식'이 문제이고, 자신만은 법치주의의 예외라는 이중 잣대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 역시 "국정운영을 자신들 사업의 '수익모델'로 생각했던 MB와 최태민과 최순실 손아귀에서 수십 년간 놀아나던 박근혜가 좋은 정치를 할 생각이 있었냐"며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 그리고 촛불혁명에 참여한 시민들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발언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청래 전 의원도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안희정이 선한 의지로 얘기했다고 하더라도 대연정 전과 때문에 세상은 선한 의지로 안보는 것 같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민심을 대변했다.
 
 
◆‘선의’에서 ‘분노’로 주고받으면서 문재인과도 공방
‘선의 발언’과 관련한 논란은 급기야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전 대표까지 가세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모른척하기에는 사태가 꽤나 커져있었다.
 
이재명 시장은 "어차피 우리는 한 식구들"이라면서도 "다만 최종적으로는 우리 민의, 선을 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데 청산해야 할 상대, 책임져야 할 상대까지 손을 잡아버리면 새로운 변화가 사실은 절반의 성공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점들을 좀 감안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선의 발언’과 관련한 논란은 급기야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전 대표까지 가세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모른척하기에는 사태가 꽤나 커져있었다. ⓒ안희정 지사 페이스북
문재인 전 대표도 "안희정 지사의 해명을 믿는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안 지사의 말에 분노가 빠져 있다.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국민이 추운 겨울날 촛불을 들고 고생하면서 '이게 나라냐'라는 말로 깊은 분노와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연이어서 국가 권력을 사유물처럼 여기고 부정부패로 탐욕을 채웠기 때문"이라며 "이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분노’를 내세워 비판했다.
 
이 ‘분노’라는 단어를 두고는 문 전 대표와 안 지사간의 공방이 이뤄지기도 했다.
 
안 지사가 "문 전 대표가 정확하게 말했다. 제가 분노를 사용하지 않았다"며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될 지도자 일 때는 그 분노라는 감정이 너무 조심스럽다. 지도자로서의 분노라는 것은 그 단어 하나만 써도 많은 사람들이 피바람이 난다"고 반박했다.
 
이에 문 전 대표는 "지금 우리 분노는 사람에 대한 증오가 아니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심 없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겠나"라며 "국민들은 적폐청산, 국가대개혁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정말 오래된 적폐에 대한 뜨거운 분노. 그것을 타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재반박했다.
 
 
◆발언의 취지와 자신의 화법 등 해명...비판만 더 키워
상황은 안 지사가 발언 의도를 해명하면서 더 커져만 갔다. 안 지사는 20일 민주당 ‘2017년 전국여성위원회 연수’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을 비호하고 두둔한 것은 아니다”라며 “좋은 선의나 목적이더라도 법에 어긋난다면 잘못이라는 말을 한 것뿐인데 왜 왜곡됐다고 보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자신의 발언이 곡해됐다고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법에 책임을 물어야 하고 지금 잘못을 묻고 있다”며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대화가 시작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jtbc 뉴스룸 ‘대선 예비주자 검증’ 코너에 출연해서는 "그 누구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 액면 그대로 긍정적으로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의 본질을 들어가기가 훨씬 빠르다라고 하는 경험 때문에 그렇다"라고 자신의 화법을 설명했다. 그는 "본인들께서 그것이 선의였다고 주장하시니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며 "그러나 그것이 현재 국정농단의 수사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그 과정에 모든 과정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정치적으로 어떤 주장을 대할 때 그것을 긍정적으로 선의로 그 액면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논쟁을 하고 또 대화를 하는 첫 걸음"이라고 자신의 화법임을 거듭 강조했다.
 
▲ 이틀째 비판이 계속되고 안 지사의 해명이 오히려 그의 화법에 대한 지적으로까지 이어지자 결국 안 지사는 사과를 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그런데 시청자의 반응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안희정 빠이” “경상도 표 의식하는 거냐” “국민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횡설수설, 음주 방송하는거냐” “왜 악행도 선의에서 출발했다고 계속 주장하느냐” “안희정한테 속았다. 철학은 도올 선생같이 해라. 명쾌하게” 등의 글이 이어졌다. 또 “안희정에 따르면 일본도 우리에게 선의를 가지고 개화시켜준거냐” “박근혜와 비슷한 느낌” “이슈가 된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질문을 하는데 왜 그 부분만 물고 늘어지느냐는 식의 답변은 맞지 않다고 본다” 등의 대부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김어준은 21일 자신이 진행하는 교통방송 ‘뉴스공장’에서 “안희정의 발언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범죄는 과실범 밖에 남지 않는다”며 “범죄를 얘기할 때 행위자의 의도에 따라 계획범인지 과실범인지가 결정되는데 모두의 선의를 받아주면 과실의 영역만 남게 된다”고 구분을 지었다.
 
SNS에서의 비판도 계속이어졌다. 박찬운 변호사는 “무엇보다 국민을 가르친다는 자세를 보이면 안 된다. 지금 우리 국민이 안지사로부터 철학강의를 들을 때가 아니다. 또 대화에서 너무 고급진 표현(통섭, 20세기 지성사 등등)을 함부로 쓰면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표현에서 자괴감을 느낀다. 정치인의 표현은 단순하고 쉬워야 한다. 국민입장에서 국민 눈높이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사과...22%의 지지율로 대선주자 2위로 뛰어오르자 겪은 첫 시련
이틀째 비판이 계속되고 안 지사의 해명이 오히려 그의 화법에 대한 지적으로까지 이어지자 결국 안 지사는 사과를 했다.
 
안 지사는 21일 오후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과 미래인재’ 컨퍼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선의 발언’에 대한 질문에 “마음을 다치고 아파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 제가 그 점은 아주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그는 “제가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어떤 분의 말씀이어도 액면가 그대로, 선의로 받아야 대화를 할 수 있고 문제해결도 가능하다는 취지로 말씀을 드렸다”면서 “그런데 그게 최근 국정농단 사건에 이르는 박근혜 대통령의 예까지 든 것은 아무래도 많은 국민들의 이해를 다 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문제가 확대된 부분을 짚었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의 ‘분노’발언에 대해서 “분노는 정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면서 “그러나 정의의 마지막 마무리는 역시 사랑이다. 그런 점에서 그 말씀도 옳은 말씀”이라고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논란이 다 가라앉을지는 몰라도 안 지사로서는 이틀 간 ‘정치인의 발언’과 ‘대중의 수용’ 간의 간극에 대해 또 발언의 취지와 무관하게 상황에 따라 해석되는 확대되는 여론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22%의 지지율로 대선주자 2위로 뛰어오르자마자 그가 겪은 첫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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