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서병수 부산시장-김세훈 영진위원장 구속 수사하라”

▲ 영화인들은 7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은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시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김세훈 위원장과 서병수 시장을 즉각 소환하여 구속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고승은 기자
[시사포커스/고승은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과 관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종덕·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구속됐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아직 '블랙리스트' 부역자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인들은 지난해 12월 12일 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장관, 서병수 부산시장 등을 ‘블랙리스트’ 공작 관련해 특검에 고발했고, 같은 달 23일에는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등을 비위혐의로 부산지검에 고발했다.
 
특검팀이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김 전 장관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결국 쇠고랑을 채웠지만, 서병수 시장과 김세훈 위원장에 대한 소환조사 등은 진행되지 않았다.
 
영화인 1천52명은 7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은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시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김세훈 위원장과 서병수 시장을 즉각 소환하여 구속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김세훈 위원장에 대해선 청와대와 문체부가 주도한 블랙리스트를 배제시키기 위해 영화진흥사업을 편법적으로 운영했다고 지적했고, 서병수 시장에 대해선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탄압했다고 지적했다.
 
◆ “농담이 아니었구나, 상식을 벗어난 사회구나”
 
국가보안법 문제를 지적한 영화 <불안한 외출>의 김철민 감독은 “세월호 지지 서명에 함께 했던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며 “최근 언론에서 알려진 사실을 보면서 상상보다 더한 현실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보고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감독은 “블랙리스트 명단에 있는 감독의 작품이 상영된 데 대해, 정부가 TF팀을 만들어서 블랙리스트 예술가 작품을 배제했다고 하더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말도 안되는 현실이 그대로 현실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MB-박근혜 비판이 담겼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던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의 김선 감독도 “처음엔 정치적인 해악성이라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는데, 사유가 굉장히 황당하고 경악할만한 문장이 있었다. ‘국가원수를 죽이려는 살인무기같은 영화’ ‘한사람 개인 인권을 무자비하게 해치는 극악무도한 영화’ 이런 워딩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제한상영가를 받았을 때는 정치적인 사안에서 폭력적인 사안으로 바뀌었다. 인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작품인데 폭력성 잣대를 들이대니 황당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해당 영화는 약 5년여간의 소송 끝에 지난 2015년 9월 개봉할 수 있었다. 당시 박주민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도움으로 승소하게 됐다고 김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농담이 과해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나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최순실 사태 벌어지고 블랙리스트 사태 터지면서 ‘농담이 과해서가 아니었구나. 상식을 벗어난 사회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박근혜 정권의 문화침탈과 같은 행태들은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 “제일 못하는 사람이, 제일 잘하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천안함 프로젝트>의 백승우 감독도 발언을 통해 “개봉 첫날 다양성 영화부문 1위였고 극장관이 늘어날 거라는 즐거운 이야기를 듣다가, 제작사에서 ‘전부 다 내린다’고 하더라”라며 개봉 하루만에 내려진 씁쓸한 기억을 꺼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화가 나려면 상황이 이해되야 하는데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 ‘천안함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법적 대응을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몇 년 전 유럽 등의 해외영화제에선 한국영화가 없으면 ‘올해 영화제가 부실하지 않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한국영화가 도약했다. 또 한국 문화 콘텐츠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고굽스러운 문화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집단들 중에서 가장 수준 낮은 게 정치인 집단이다. 제일 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하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니 굉장히 기분나쁜 일”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영화계에 많은 숙제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우선은 드러난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블랙리스트라는 게 무서운 것이 사실 조폭이나 하는 행태인데, 한 번 찍히면 반드시 보복한다는 게 아니었나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집요한 보복을 했다”며 부산국제영화제 탄압 사태를 언급했다.
 
그는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식으로 탄압했고, 보복행위를 했는지 명확하게 진상규명 하는 것”이라면서도 “단순히 부산영화제가 피해를 봤거나 누군가 피해를 봤기 때문에 복수, 보복하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 “‘쉰들러 리스트’라도 만들어 복권시켜야”

김일권 시네마 달 대표는 “김세훈 위원장 취임이 2014년 12월인데, ‘다이빙 벨’ 사태 이후에 예술영화관들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고 예술 영화관에 대한 지원이 끊겼다”며 “취임 이후 독립영화를 탄압하고 지원에서 배제한 책임자는 김 위원장이다. 사퇴와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퇴할 사람 사퇴하고 구속될 사람 구속돼야 한다. 새롭게 영화인들 힘 모아서 (부산국제영화제)이용관 위원장을 비롯해 (정권에 의해 탄압받았던) 문체부 공무원들, 영진위 공무원들, 영화인들을 ‘쉰들러 리스트’라고 만들어 복권시켜야 한다. 그런 날이 진심으로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 영화인들은 이날 발언을 통해 자신들이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해 겪었던 일들을 생생히 증언했다. 사진/고승은 기자
정상진 앳나인 대표는 “당연히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회사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건 충격이었다”며 “제 스스로 봤을 때는 불이익을 받은 부분은 없다. 지원금을 아예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많은 정책에 들어가서 관객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제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회사가 블랙리스트 올랐다는 자체만으로 저와 같이 일하는 동료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죄송하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 부분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 “학교서 애들 왕따시키는 것도 문제인데, 국가가 왕따를 시키니…”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군함도> 등을 감독한 류승완 감독도 “우리 감독들은 이번 사태를 맞이하면서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생각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문제”라며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자유롭고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고 만드는 게 가장 큰 자산인데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는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류 감독은 "어떤 사람은 '빨갱이 이름 몇 명 적어서 관리하는 게 뭐가 큰 죄냐'고 말하지만. 큰 죄다. 헌법에 위배되는 일이고 국민의 주권을 빼앗아 가는 일이다. 자유와 민주주의 모두를 빼앗아 가는 큰 죄다. 많은 시민들이 이게 큰일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학교에서 애들 왕따 시키는 것도 큰 일인데, 국가가 왕따를 시키고 있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이 사태를 그냥 지나친다면,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지고, 사법적인 책임이 이뤄진 다음에는 다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