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세론’ 탄력 받을 듯…황교안 출마 여부는 변수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불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지율 난조 속에 거취를 고심하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 정치권을 크게 뒤흔들었다.
 
불과 하루 전까지 ‘대선 전 개헌’을 위한 개헌추진협의체를 정치권에 제안한 데 이어 1일 오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물론 오후 기자회견 직전엔 정의당까지 찾아가 정치개혁 협조를 요청하는 등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하려는 듯 보였던 그였기에 그와 ‘빅텐트’ 구성 등을 논의하던 이들은 갑작스런 이번 불출마 결정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반면 그와 경쟁해야 했던 대선주자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담담히 소회를 전하면서도 벌써부터 변화된 대선구도에 발 빠르게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향후 대선판 향배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潘, 등판 3주 만에 대선 ‘중도하차’…현실 장벽 느꼈나
 
귀국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반풍’, ‘충청대망론’ 돌풍을 일으키며 유엔 사무총장이란 경력과 기성 정치권 출신이 아니라는 ‘깨끗한 정치 신인’ 이미지에 힘입어 모든 대선후보군을 제치고 선두를 달렸던 반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불과 3주 만에 지지율 하락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대권 레이스에서 이탈했다.
 
그간 ‘반짝 지지율’ 돌풍으로 급부상했다가도 기성 정치권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대선판에서 손을 뗀 이들은 기업가 출신인 문국현 전 의원이나 관료 출신인 고건·정운찬 전 총리 등 다양한 사례가 있었기에 관료 출신에다 더욱이 오랜 기간 해외에서 체류해온 반 전 총장이 기성 정치권의 압박과 공세를 버텨내고 완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은 일부 있어 왔다.
 
일례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달 18일 전북 전주 전북도의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반 전 총장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결하면 이기지 못한다”며 “설 지나서 출마를 포기하실 가능성도 많다고 본다”고 반 전 총장의 불출마를 그 시점까지 정확히 예견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관측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반 전 총장이 이렇듯 전격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만큼 그 원인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표면상으론 지지율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뿐 아니라 결집시켜도 모자랄 보수층 표심까지 상당부분 이탈해 대선 출마 여부도 불분명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향하는 등 점차 흩어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나 귀국 초기부터 빚어진 여러 구설과 검증 논란, 이에 대한 대선 캠프의 미흡한 대처와 캠프 내 지휘체계 혼선 등 총체적 난국이 원인으로 작용한 끝에 불출마를 택하게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반 전 총장 스스로 ‘정치교체’를 화두로 내세웠음에도 대선 캠프 내 과거 이명박계 인사 등을 중요 직책에 두어 캠프 내 인선 문제조차 논란을 자초했으며 때마침 공교롭게도 자신의 동생과 조카 비리까지 거론되게 되어버린 상황 또한 기성 정치권 출신이 아닌 반 전 총장이 견디기엔 쉽지 않은 난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고심 끝에 그가 최후의 카드로 내놓았던 ‘대선 전 개헌’ 카드마저 자신을 적극 영입하려던 보수정당들에서까지 냉소적인 반응으로 일관하자 더는 출구를 찾기 어렵다는 판단에 빠르게 결단을 내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같은 속내를 내비치듯 이날 반 전 총장의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됐다”며 서운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다만 이토록 중대한 결심을 자신의 측근 뿐 아니라 대선 캠프 내 누구에게도 일언반구 논의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서 내리다 보니 여의도 사무실로 이전까지 준비 중이던 참모들은 문자 그대로 충격에 휩싸였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선지 반 전 총장은 불출마 선언 직후 자신의 ‘마포 캠프’ 사무실을 방문해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여러분과 미리 상의하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발표문을 만들었다”며 “아마 한 사람이라도 상의했다면 뜯어 말렸을 게 분명하다”고 참모들을 달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각을 세워온 일부 야당 뿐 아니라 자신에게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촉구해 온 보수정당에 대해서도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 쪽이다라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 나는 보수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내 양심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며 “보수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함에 따라 그간 그가 세우려던 빅텐트 구상을 논의했던 이들은 예외 없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얼마 전 설 연휴 중 반 전 총장과 만나 함께 하기로 했던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매우 안타깝다”며 “반 전 총장이 추구했던 국민대통합과 정치개혁의 목표가 반 전 총장의 불출마로 사라져선 안 된다”고 입장을 내놨다.
 
또 지난달 30일 반 전 총장과 독대했던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역시 이날 한 방송에서 “이 분이 나라를 새롭게 하겠다는 뜻을 갖고 왔는데, 인격살해·모독 이런 것을 많이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얻었던 것 같다”며 “(불출마를) 예상하지 못했다. 대단히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 뿐 아니라 아직 반 전 총장과 만나진 못했지만 전날 금주 중 회동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갑작스런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면서도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 ‘潘 불출마’ 돌발 변수에 정치권 표정 제각각
 
한편 반 전 총장과 미묘한 거리를 유지했던 기성 정당들은 반 전 총장의 불출마에 한결 같이 안타깝지만 겸허히 수용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이를 국면전환의 계기로 삼고자 부심하는 모양새다.
 
먼저 집권여당이면서도 유력 대선주자 확보에 고민이 깊은 새누리당에선 이날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 관련, 정태옥 원내대변인의 구두논평을 통해 “야당과 일부 좌파들의 과도한 흠집내기 때문에 굉장히 안타깝다”며 야당 책임론을 내세웠다.
 
보수를 대표하는 유력 후보로 비쳐졌던 반 전 총장을 ‘야당과 좌파’들의 압박에 밀려난 희생양으로 묘사해 일단 보수층의 결집을 시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는데, 같은 날 오전만 해도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나이 들어 겨울에 여기저기 다리다가는 미끄러워 낙상하기 쉽다”며 반 전 총장의 ‘제3지대 결성’ 움직임에 일침을 가한 점에 비쳐보면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가장 고민됐던 당내 ‘충청권 의원들’의 집단탈당 가능성이 이번 반 전 총장의 불출마로 명분 자체가 사라져버려 새누리당에선 도리어 바른정당과의 ‘보수 적통’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시금 당의 기반인 TK지역을 중심으로 한 보수 결집을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으로 전망된다.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중앙당사에서 정병국 대표, 주호영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 등을 예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 일찌감치 대선주자들을 내놓고 반 전 총장과 함께 범보수 경선 등 여러 방안을 통해 보수층 표심을 끌어오려던 바른정당의 표정은 이 소식에 한층 가라앉았는데, 반 전 총장과 지난 29일 독대했을 정도로 그간 가장 영입에 적극적이던 김무성 의원은 이날 오후 정책 의총 직후 기자들에게 “드릴 말씀이 없다. 너무 큰 충격”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지어 당의 반 전 총장 영입에 미온적이었던 유승민 의원 역시 이날 고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 “오전 11시쯤 바른정당에 찾아와서 서로 안부를 주고 받았는데 갑자기 불출마 선언을 해서 충격을 받았다”며 “이번 대선에서 보수 위기 속 지지자들이 기대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불출마해서 보수층 지지자 입장에서 많이 허전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반면 최근 스스로 ‘대세론’에 대해 자평할 정도로 자신감을 보였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좋은 경쟁을 기대했는데 안타깝다. 그동안 보여주신 행보에 비춰보면 뜻밖”이라면서도 “우리 국민의 압도적 민심이 정권교체에 있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한층 선두를 굳혔다는 확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불출마로 갑자기 갈 곳 잃은 유권자들이 그렇다고 문 전 대표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은 희박한 만큼 이들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등 새로운 보수후보의 출현에 따라 급속히 하나로 결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현재의 안정된 우위 구도를 향유하던 문 전 대표로선 지금의 보수층이 양분된 상황과는 달라지는 또 다른 돌발 변수를 대비해야 할 부담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