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수·정민태, 한국시리즈 우승을 책임진다

심정수(삼성 라이온스)가 12일 1군 엔트리에 등록했다.

미국과 독일에서 각각 왼쪽 어깨,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고 4개월만이었다. 올 시즌 프로야구 최고액인 7억 5천만원의 연봉을 받은 ‘왕의 귀환’이었다. 속타는 심정수, 기다리는 정민태 사실 8월말일부터 2군 경기에 나서 3할1푼의 타율에 홈런 3개를 때려내 재활은 끝났다고 평가받은 것 치고는 때늦은 복귀였다.

때문에 선동렬 감독이 그대로 페넌트레이스를 끝내고 싶어한다는 추측도 많았다. 심정수 없어도 우승할 수 있다는 걸 과시하려는 것이었을까.

복귀 후 20일 경기까지 심정수는 4경기 15타수 2안타만을 때려냈다. 타율은 급기야 1할대로 떨어졌고, 타점도 홈런도 없었다.

그래도 선 감독은 심정수를 4번타자로 기용하고 있다. 심정수는 포스트시즌의 키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온스는 한때 ‘3점 라이온스’라는 핀잔을 받았다. 삼성의 타선은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한수가 3일 LG전에서 발가락 부상으로 빠지고 심정수가 대신할 때까지 삼성의 클린업 트리오는 ‘양준혁-진갑용-박진만’이었다.

양준혁은 그렇다 치고 ‘포수로서는 잘 치는’ 진갑용과 ‘수비 전문’ 박진만이 클린업 트리오를 맡은 셈. 올 시즌 20일까지 이들이 합작한 기록은 고작 30홈런 189타점이다.

1위 팀의 클린업 트리오의 성적으로는 빈약해 보인다. 따라서 삼성의 타선이 살아나려면 심정수가 그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포스트 시즌은 단기전이기 때문에 중량감 있는 홈런타자의 역할이 크다. 그런데 그 홈런이 터지질 않는다.

눈에 띄게 야윈 얼굴만큼 심정수의 속은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심정수보다 더 속이 타는 사람은 정민태일 것이다. 정민태는 작년 9월 미국에서 어깨수술을 받은 뒤 지금까지 줄곧 2군에서 재활에 매달리고 있다.

당초 6월 중순에는 등판할 수 있으리라는 예측은 9월로 연기되더니, 8월말 김재박 감독은 정민태 없이 포스트시즌을 치를 수도 있다는 발언까지 했다. 김 감독 특유의 담금질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정민태의 구위가 그만큼 부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구 구속 130㎞대 초반을 못 넘기고 있는 정민태의 2군리그 올 시즌 방어율은 9.62. 그렇다고 현대가 포스트시즌을 정민태 없이 갈 만큼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다.

현대의 원투 펀치는 캘러웨이와 장원삼. 한 사람은 외국인선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신인이어서 포스트시즌 경험이 없다. 3, 4선발로 전준호와 김수경이 있고 올해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단기전을 전적으로 믿고 맡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

따라서 김 감독이 “정민태 없이 갈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팀 방어율 3위의 성적을 고려하자면 아예 근거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보다는 일종의 심리전처럼 보인다. 아무리 정민태라 한들 지금은 전준호·김수경과 함께 포스트시즌 3선발을 놓고 비교할 수 있는 패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 패에 정민태가 있느냐 없느냐는 전혀 격이 다르다.

최근 정민태는 ‘류현진이 정민태 이후 없었던 시즌 20승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냐’를 거론할 때나 언급된다. 마치 은퇴한 전설의 선수 취급을 받는 듯하다.

정민태의 나이도 벌써 서른여섯. 지도자로의 전업을 고민할 나이. 이번 포스트시즌은 정민태에게도 기로가 될 수 있다.

지연규·김동주·이종범, 4강 경쟁의 변수 3위 한화 이글스와 5위 두산 베어스의 승차는 4경기차로 줄어들었다. KIA 타이거스와 두산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한화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김인식 감독이 내놓은 묘수는 지연규. 심정수나 정민태에 비해 명성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한때 한화의 마운드를 책임질 것이라는 평판을 들었던 스타급 선수다.

1992년 신인 최고 계약금 8천7백만원을 받고 빙그레에 입단할 때만 해도 정민태·구대성과 함께 빅3로 불렸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5년간 3승만을 올린 지연규는 어깨수술을 받고 프로를 떠났다. 2001년 재기해 2005년까지 6승 23세이브를 추가하고 은퇴했다.

이후 2군 투수코치로 뛰다가 미들맨 최영필의 부상으로 불펜이 무너지자 13일 1군 불펜투수로 합류했다. 11개월만에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13일 구원으로 첫 등판한 지연규는 20일까지 4경기 4와 2/3이닝을 던져 1패에 방어율 3.86을 기록하고 있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빈틈은 메웠다.

8월에 복귀한 김동주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김동주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왼쪽 어깨를 부상한 뒤 시즌 대부분을 재활로 허송세월했다.

규정타석을 채워야 FA자격을 얻는 상황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복귀 후에는 아시안게임 대표팀 문제로 마음고생까지 겪었다.

김동주는 현재 3루를 안경현에게 넘기고 지명으로 4번타자를 떠맡고 있다. 그러나 20일 현재 타율 2할4푼대를 유지하며 2홈런 11타점으로 심정수에 비해서도 그다지 나은 성적을 못 보여줬다.

특히 4강을 두고 중요한 3연전이었던 16, 17일 경기에서 11타수 1안타로 침묵해 팀이 4위 자리를 내주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김동주 효과’는 김동주의 성적을 살펴보는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4번타자 부담감을 던 안경현과 홍성흔은 모두 타율이 올랐고, 둘이 합쳐 시즌 25홈런 123타점을 올린 두 사람은 9월에만 5홈런 24타점을 합작했다. WBC 영웅으로 활약했던 이종범은 어느 때보다 힘든 시즌을 보냈다.

83경기를 뛰고도 타율 2할4푼에 1홈런 9도루에 그친 것. WBC가 체력에 부담을 준 탓이었다. 7월초 2군 신세를 지기까지 했다.

13년차 베테랑 이종범이 2군 처지가 돼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 그런데 2군행은 이종범에게 보약이 됐다.

8월말 복귀한 이종범은 이후 3할이 훨씬 넘는 타율을 치고 있다. 올 시즌 19타점 중 9타점이 복귀 이후 한 달 동안에 나왔을 정도다.

16, 17일 두산과의 3연전에서 압승을 거둔 것은 6안타 3타점을 때려낸 이종범의 공이 컸다. 객관적인 성적만이 아니다.

이종범의 허슬 플레이는 팀 분위기를 이끈다. 17일 두산과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왼쪽 엉덩이뼈를 다친 이종범은 트레이너에게 업혀 덕아웃에 들어갔지만, 계속 출전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더블헤더 2차전 1-1 상황에서 김상훈의 짧은 좌전안타 때 홈으로 파고드는 질주는 전성기 때의 그것이었다. 팀 분위기를 이끄는 일등공신 3위를 내다보는 KIA의 막판 돌풍은 주장 이종범의 부활이 이끌다시피 하고 있다.

심정수, 정민태, 지연규, 김동주. 지금은 상대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지만 팀 내에서 이종범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시즌 막바지, 순위 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포스트시즌을 대비해야할 지금이라면 더욱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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