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보다는 ‘내 일’을 할 뿐이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문수 경기도지사 하면 흔히들 이런 말들을 떠올린다. 발로 뛰는 도지사. 현장에서 일하는 도지사. 그리고 숱한 에피소드역시 그를 가늠케 하기에 충분하다. 동료 의원들이 “골프를 하지 않으면 큰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경고 아닌 경고를 하면 “큰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다. 사람이 자기 길을 가면 되는 거지”하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그런 그도 낙후된 경기 북부지역의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골프장 건설을 돕겠다고 말했다. 이미 정치인이 아닌 행정가가 된 것이다. 이런 그의 모습들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정’이 숨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불과 두 달여 정도 지난 김문수號. 그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 본다. 김문수는 한국전쟁 발발 이듬해인 51년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공무원 아버지가 문중 친척의 빛 보증으로 집과 월급을 모두 차압당하면서 고생길에 접어든다. 김문수 는 학창 시절을 “번듯한 대구 남산동에선 우리 집만 초가집 두칸에 판잣집 한 칸이었다”며 “구멍난 천정으로 밤하늘의 별이 보일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그러나 김문수는 명석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노동 운동엔 가난속에 힘들게 입학한 대학시절 뛰어든다. 대학 1학년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그는 가난을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게 된다. 이 때부터 그는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과감한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 71년 여름 김문수는 공장에 취업한다. 구로공단 옆 안양천 뚝방길 근처에 있던 드레스 미싱 공장이 그의 첫 직장이었다. 설난영과의 결혼은 금속노조 남서울지부 청년부장으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설난영은 당시 금속노조 남서울지부 여성부장이었다. 당연히 노동운동가 부부의 칼바람 같은 삶이 이어졌다. 이름만 가족일 뿐 따듯한 밥 한끼 같이 먹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노동운동가 김문수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서다. 김문수는 1년전 이재오등과 민중당을 창당, 14대 총선에 나섰지만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그러던 그의 신한국당 입당은 세간의 이슈였다. 노동 운동 대부의 ‘변절’로 인식된 ‘여당행’, 이 사실만으로도 언론은 그를 써댔다. 김문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군사정권의 막을 내린 시점에서 노동 운동의 관점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변절이 아닌 또다른 발전을 위한 기회를 위해서 였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김문수는 96년 15대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 박지원을 누르면서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 한다. 당시 선거 뒤 닳아 없어졌다던 김문수의 구두 뒷 굽은 정치신인들에게 이제 고전으로 불린다. 이어진 10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은 김문수를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깐깐한 성격, 빈틈없는 논리, 청빈한 생활은 한나라당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가난한 국회의원’은 어딜 내놔도 상대당의 공격에서 자유로웠다. 자유로운 김문수는 그렇게 자유롭게 야당 저격수로 나서고, 대통령 친, 인척 비리 폭로 등으로 김문수는 당내에서 진가를 인정받는다. 그는 이같은 저력으로 지난 17대 총선 부천소사에서 ‘탄핵역풍’까지 뚫고 내리 3선에 성공한다. 그런 그가 지난해 7월 갑작스레 경기도지사 손학규를 찾는다. 그리고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결심한다. 당 대표 경선 2차례, 그러나 매번 최하위권 성적을 기록하면서 당내에서 ‘영원한 비주류’였던 김문수의 이런 결심은 측근은 물론 가족조차도 의아하게 만들었다. 김문수는 “망국적 수도 이전으로 병들어 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선 경기도를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으로 만드는 방법뿐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10개월 뒤인 2006년 5월 31일 밤. 김문수는 더이상 비주류가 아닌 경기도의 주류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뚝섰다. 지난 7월 3일. 제 32대 신임 김문수 경기지사는 경기도청 운동장에서 취임식에서 자신의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김 지사는 “한반도의 심장, 경기도에서 성장엔진으로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포문을 열고 “경제와 기업 살리기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전임 손학규 지사가 했던 외자유치와 기업지원 정책을 계승,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이어 “현재 경기도를 규제하고 있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유례없는 ‘악법’이고 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보다 더 나쁜 법”이라며 이를 적극 고쳐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공장을 짓지 못하게 하면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면서 “대학과 공장을 짓지 못하는 악법 때문에 수만개의 공장과 우수인력, 인재들이 외국으로 나가고 외국투자자본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역설했다. 김 지사는 “이제는 수도권규제와 하향평준화를 고쳐 교육선진국을 만들고 한반도의 심장인 성장엔진 경기도가 선두에서 선진국으로 이끌 것”이라고 공언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는 서울보다 17배나 넓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 때문에 난개발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며 “경기도를 친환경적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일하다가 죽어도 좋다! 이어 경기도 발전을 위해서는 도로, 철도 등 교통이 편리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1시간 경기도를 목표로 막힌 곳을 뚫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또 “수도권 식수공급을 위해 팔당수계지역 7개 시군은 말할 수 없는 희생을 묵묵히 참고 견뎌왔다”며 “팔당댐의 물을 더욱 깨끗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규제를 고치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환경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타운 운동과 관련해 그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혔던 새마을 운동과 같이 뉴타운 운동도 21세기 새마을 운동”이라며 “뉴타운을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재건축, 재개발 노력을 경기도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서해안 시대를 맞아 “중국과 최단거리에 있는 평택항과 화성, 안성, 시흥, 김포의 해안지역을 발전시키고 주 5일 시대에 맞게 주말농장, 친환경 농업을 새롭게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깨끗하게 일하고 도민의 말을 널리 들으며 벼슬이 아닌 머슴으로, 청렴결백을 신조로 일할 것”이라고 취임사를 마쳤다.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수습사무관들에게 ‘과로사(過勞死) 투지’를 불태우자며 진취적인 도정을 펼쳐나갈 뜻을 확고히 한 것으로 알려져 관가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특유의 ‘투쟁의식’을 드러내며 능동적이며 도전적인 도정을 구상하고 추진해 나가고 있다. 행정가 이전에 정치인으로서도 강성적 이미지를 이어 온 그 답게 파격적 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 2월 국회의원 신분의 김 지사는 북한의 위폐 사건에 대해 중국에서 북한 기관원으로부터 구입했다는 이른바 ‘슈퍼노트(초정밀 100달러 위폐)’의 실물은 공개하며 “왜 범죄행위를 두둔하느냐”고 따진 바 있다. 또한 북한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 온 김 지사는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퍼부었다. 그는 “김정일 정권의 눈치를 보는 우리 정부의 ‘조용한 외교’가 부끄럽다”며 북한인권, 납북자, 국군포로, 탈북자, 이산가족 법안 등 북한 인권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투지를 보였다.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에는 ‘북상동 끝장멘트’를 시작으로 이른바 ‘대수도론’을 주장하며 지금까지 줄곧 이에 대한 설득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또 취임 후부터는 ‘형식파괴’를 주창하며 수행 공무원들에게 검은색 양복을 입지 말 것을 지시하는가 하면 출입시 문을 열어 주지 말 것을 당부하는 ‘의전파괴’도 주문했다. 그는 “오세훈은 젠틀맨 나는 머슴”이라는 말로 경기 도민의 머슴을 자청하기도 했다. 이전 손학규 지사의 해외투자 유치 등으로 인해 힘든 공무를 해왔던 경기도청 공무원들은 한층 더 저돌적이고 활발한 김 지사와의 만남에 앞으로 어떻게 버텨낼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후문이 전해진다. 이번에 수습사무관들 앞에서 밝힌 과로사 발언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김 지사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김 지사는 “우리는 10년 안에 중국에 역전될 수 있는 역사상 최악의 상태에 있다”며 “중국에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경기지사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경기도에 따르면 김 지사는 지난 16일 한 라디오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수도권 규제완화정책 등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거대 중국이 매년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며 “이같은 시점에서 역사적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이어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경기도와 서울, 인천시의 행정 칸막이를 없애는 통합 행정이 필요하다”며 “이는 경기지사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고 국가적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경기도 기업체들은 50조원 이상의 투자를 미루고 있다”면서 “증설투자를 하고 싶어도 수도권규제 때문에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골프를 치러 혹은 집을 사러 해외로 나가는 실정인데 경기도에는 4년제 대학조차 신-증설 할 수 없어 상당수 인원이 외국으로 유학가고 있다”며 “수도권 규제완화의 핵심은 국부유출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지사는 현재의 노동운동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이기적인 운동이 아닌 이타적인 운동이 돼야 한다”며 “나보다 어렵고 영세한 분들, 비정규직 등을 위한 노동운동이 명분과 취지에 맞다”고 답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수도권 규제 철폐를 위한 일련의 노력이 빛을 발할 것 같다. 수도권에 위치한 미군기지 반환지역의 첨단공장 신설과 공장총량 규정 및 외국인 투자지역 지정요건 등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주한미군 공여지역 주변 지역 등 지원 특별법’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주한미군이 반환하는 공여지와 그 주변지역에 컴퓨터, 항공기, 광섬유 등 61개 첨단 업종의 공장 신설이 가능해졌다. 이번 조치로 그동안 낙후 지역으로 분류되던 경기북부지역 개발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경기도와 동두천시, 의정부시 등 지자체들은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직상승’하는 경기도 특히 경기도는 이번달 추가경정 예산안에 미군 반환 공여지 종합개발계획 용역비 7억원을 반영했다. 따라서 예산이 확정되는 대로 용역을 의뢰해 결과를 토대로 내년 9월부터 해당 시장, 군수들의 의견을 수렴해 시행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같은 결과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김문수 경기지사와 여당의 이 지역 출신 의원들과의 정책협의회가 열리는 등 김 지사의 꾸준한 정책 지원 요청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평가가 있다. 김 지사는 여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공여지 매입비용과 도의 내년 국고보조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요청하는 등 수도권 규제 철패를 위한 여당의 공조를 당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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