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군 복무 단축 등 선거 때마다 등장…역풍 우려도

▲ 대선판이 날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일부에선 대선 지지율을 의식해 포퓰리즘이라 칭할 정도로 급진적인 공약까지 내놓는 모양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표심 확보 혹은 수성에 부심하는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상대 후보보다 선명성을 부각시키고자 솔깃한 공약들을 찍어내듯 쏟아내면서 대권 경쟁이 점차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두권 후보를 따라잡으려는 대선주자들은 마지막 수단이라는 듯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으면서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포퓰리즘 공약을 펼치는 다른 후보를 비판하는 자기모순까지 보이는 등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가운데 누가 이 진흙탕 싸움의 승자가 될 것인지, 가장 큰 수혜자가 누구일지에 대해 벌써부터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 다급해진 대선주자들,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까지
 
선거 때마다 젊은 남성 유권자 표심을 노리고 후보들이 내놓는 단골 소재는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이다.
 
자칫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고자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사안까지 끌어들인다는 비판에 직면할 부담이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과감히 공언할 정도로 한 표가 아쉬운 대선주자들의 속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이런 공약을 내놓은 후보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귀국 직후 일어날 ‘반풍’을 최소화하려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6일 자신이 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한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한다’에서 “참여정부 때 국방계획은 18개월까지 단축하는 것이었다”면서 “점차 단축돼 오다 이명박 정부 이후 멈춰버렸는데 18개월까지는 물론 더 단축해 1년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넌지시 ‘1년 복무 공약’을 띄웠다.
 
다만 그는 모병제에 대해선 “통일 이후가 바람직하다. 훨씬 더 먼 미래의 일”이라며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하면서 직업군인을 늘리는 게 현실적”이라고 거리를 뒀는데, 이는 바른정당 소속인 남경필 경기지사가 일찌감치 내놓았던 공약이다 보니 즉각 역공을 받게 됐다.
 
남 지사는 18일 국회에서 ‘사교육 철폐 촉구’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문 전 대표를 겨냥 “지난 대선에서 모병제를 주장하더니 오락가락하는 정책행보”라며 출산율 감소 추세로 인한 향후 군 입대 대상 적령 인원 수 감소를 들어 “지금 상황에서 군 복무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면서 모병제도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전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군 복무기간 단축) 말씀을 하셨는지 굉장히 걱정스럽다”며 “국방을 팽개치겠다는 얘기”라고 문 전 대표의 안보관까지 꼬집었다.
 
이에 문 전 대표 측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은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4차 포럼’ 직후 기자들에게 “1년을 공약한 게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서며 “직업군인제, 과학기술군으로 해서 군을 확실히 개혁하면 장기적으로 먼 미래에 1년까지도 군 복무를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라 해명했다.
 
또 과거 문 전 대표가 모병제 공약을 내세웠던 점을 의식해 “모병제 플러스 징병제를 병행한다든지 그런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며 “통일 이후 군에 필요한 숫자가 많지 않을 때 모병제까지 검토하면서 1년까지도 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그러자 남 지사는 다음 날인 19일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 전 대표가 38시간 만에 ‘군 복무기간 1년’ 공약에서 발을 뺐다”며 “정치 지도자는 국방에 관해서 만큼은 원칙이 필요하다. 국방만큼은 포퓰리즘과 왔다갔다 말 바꾸기를 용납해선 안 된다”고 보다 거세게 문 전 대표를 몰아붙였다.
 
이런 공세는 일견 ‘네거티브’로 비쳐질 수는 있지만 현재 대선 지지율이 선두권을 달리는 문 전 대표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남 지사로선 이처럼 문 전 대표의 공약을 문제 삼아 자신을 부각시킬 뿐 아니라 유력후보인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유권자 일부를 동요시켜 다른 당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어떻게든 낮출 수 있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바른정당의 유승민, 남경필 후보는 일부에서 제기되는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에 대해 안보를 이유로 들며 비판적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특히 남 지사가 속해 있는 바른정당은 경제나 사회는 일부 진보적 색채를 띠면서도 안보는 보수라는 기조를 분명히 하는 걸 차별화된 점으로 내세워 선명성을 강화시키고 있는데, 또 다른 대선후보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20일 창당준비회의에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 전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당시 대선후보) 모두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을 꺼냈던 점을 들어 “오늘 이후 대선 후보들이 이걸 갖고 공약으로 내거는 행태는 이제 그만두길 제안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유 의원은 “이런 식으로 복무를 단축하면 대선 때마다 3, 6개월씩 줄어 도저히 군대가 유지될 수 없다. 아예 법에다 단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군 복무기간 단축 금지 법안’ 발의 가능성까지 암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같은 당 소속이지만 결국 대선경쟁자란 입장 때문인지 남 지사가 주장한 모병제에 대해서조차 “집안 형편이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집안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군대를 거의 안 가게 되는 식으로 병역이 이뤄지면 정의롭지 못하다”며 “지원숫자가 부족하면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반대 의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당 대선후보끼리도 이처럼 동일 사안에 대해 견해차를 보이는 건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군 복무기간 1년’이란 내용이 담긴 문 전 대표의 대담집이 나온 지 하루 뒤인 17일 문 전 대표 따라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마치 문 전 대표처럼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라는 자신의 새 저서를 통해 ‘선택적 모병제’로 군 복무기간을 10개월까지 단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시장은 같은 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선 “현재 국가가 계획하고 있는 감군 목표치 50만 중에서 10만명을 모병해 전문 전투병으로 양성하되 월급은 충분히 (연봉) 3000만원 정도를 지급하면 된다”며 “그러면 10만명의 직장, 청년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군은 군대로 전투력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구체적 실천 방안까지 내놨다.
 
◆ ‘기본소득제’ 도입, ‘교육정책 차별화’ 등도 화두
 
이 뿐 아니라 이 시장은 18일엔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 외에도 자신이 성남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청년배당’을 성공적인 기본소득 실험이라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국민 1인당 1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는 기존 정부 예산을 구조조정하고 국토 보유세를 더 걷으면 재원 마련이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기본 소득은 더 이상 취약계층을 구제하는 복지 개념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이 시장 외에 청년수당을 도입한 또 다른 지자체장인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아동·청년·노인 등에 월 30만원씩 지급하는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며 기본소득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렇듯 선두 따라잡기에 다급한 후보들이 다소 급진적인 공약을 내세운 데 반해 선두 수성에 집중하고 있는 문 전 대표의 경우 기존 복지제도와 연계시키거나 아동 혹은 미취업 청년 대상으로 수당을 도입하는 선에서 지급한다는 공약을 내놓으며 수위조절에 들어가기도 했다.
 
경쟁적으로 차별화 전략을 내세운 부분은 비단 기본소득에 국한되는 건 아니었는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상당한 관심을 가질 교육정책에 있어선 마치 ‘호객 행위’를 하는 듯 상당히 자극적인 공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 국공립대학을 통폐합하겠다고 공약했고, 같은 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대학교와 수능을 모두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으며 바른정당의 남경필 경기지사는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폐지하고 사교육 폐지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밖에 수도이전이나 선거 연령 인하 등에 대해서까지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셈법에 따라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고 있어 이 같은 기류가 도리어 역풍을 맞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자극적 공약은 하위권에 머물 때 일시적으로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는 성공할 수 있겠지만 공약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유권자들에게 확실하게 어필하지 못하면 도리어 신뢰를 잃게 되는 부작용에 처하게 될 수 있고 또 포퓰리즘 공약일지언정 독보적이라기보다 다른 후보들과 대동소이한 공약들만 남발하게 되면 단기적 반등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퓰리즘 공약은 지지율 반등 여부에 개의치 않고 불안한 대선주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안정제’처럼 이번 대선에서도 남발되고 있는데, 과연 유의미한 효과를 도출해 낼 수는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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