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 “정권교체 아닌 정치교체 돼야”…기성 정치권에 선전포고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공항에 귀국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에 도착 한 뒤 지지자들에 둘러 싸여 서울역사를 빠져 나가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그간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어온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마침내 유엔에서의 소임을 마치고 12일 고국 땅을 밟았다.
 
국외에서 활동해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던 반 전 총장은 이날 귀국하자마자 작심한 듯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서부터 집중견제에 나선 정치권을 향해 본격적으로 포문을 열었는데, 무엇보다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내세운 타 후보에 맞서 정치교체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된 면모를 보이려 해 이목을 끌었다.
 
또 그는 앞서 강조해 왔던 대통합을 이날 회견에서도 재차 언급해 사회 분열과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앞으로 치유와 단합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 이 같은 화두를 던지며 대선판에 발을 들인 반 전 총장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반기문 “우리 사회 지도자 모두 책임 있어”
 
반 전 총장은 귀국하자마자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1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서 조국 대한민국을 돌아보면서 마음이 무겁다”며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에 대한 첫 소회를 이렇게 풀었다.
 
그는 현 상황을 ‘총체적 난관’으로 규정한 뒤 그 결정적 원인으로 부의 양극화부터 이념, 지역, 세대 간 갈등을 차레로 꼽았는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해답으로 ‘사회 대통합’이란 화두를 던졌다.
 
그러면서 반 전 총장은 “우리 사회 지도자 모두가 책임 있다”고 강조해 현 사태에 이르게 된 원인이 일부에 특정되어 있다기보다 사회 지도층 전체의 공동책임이란 시각을 내비쳤다.
 
그 중에서도 그는 기성 정치권을 꼬집어 “유감스럽게도 정치권은 오직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따진다. 정말 개탄할 일”이라며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가 돼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반 전 총장은 “이제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우리 사회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 지에 대해서 그 해법을 다시 찾아야 한다”며 “나라와 사회가 더 분열되는 건 민족적 재앙이다. 우리에겐 더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는 거듭 사회 지도층을 향해 “패권과 기득권 더 이상 안 된다”면서 “모두 책임감, 남을 생각하는 배려와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는데, 굳이 ‘패권’이란 단어를 언급한 것을 놓고 벌써부터 친박과 친문 패권주의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발언이 대선주자라는 특성상 정략적으로만 풀이될 가능성을 우려했는지 그는 “많은 분들이 제게 권력 의지가 있냐고 묻는데, 그 분들이 말하는 권력의지가 소위 남을 헐뜯고 권력을 쟁취하겠다 그런 것이라면 저는 권력의지가 없다”며 “이 어려운 시기에 헌신하고자 하는 저의 진정성 또 유엔의 이상까지 짓밟는 이런 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공으로 맞섰다.
 
반 총장은 이어 “그간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쌓은 식견을 어떻게 하면 나라를 위해 쓸지 고민했다. 지난 10년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성공한 나라는 왜 성공하고 실패한 나라는 왜 실패했는지 알았다”면서 “나라를 하나로 묶어서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들 의지가 있다면 저는 제 한 몸을 불사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다”고 대선 출마 의사를 거듭 드러냈다.
 
또 초미의 관심사인 대선 출마 공식 선언 시점과 관련해서도 그는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귀국 후 국민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고 했고 내일부터 그 기회를 갖겠다”고 밝혀 대선이 앞당겨질 가능성에 대비해 발 빠르게 움직일 것임을 시사했다.
 
끝으로 반 전 총장은 현재의 국난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저는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과거 수많은 위기를 당하면서 그때마다 우리 국민 특유의 저력을 봤다”며 “정쟁을 중단하고 뜻과 결의를 발한다면 마치 아침 태양이 어둠을 뚫고 솟듯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고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다만 그는 준비된 메시지를 전한 뒤 이어진 일문일답에선 유엔협약이나 공직선거법상으로도 대선 출마 자격을 갖기 어렵지 않느냐는 송곳질문이 쏟아지자 “그게 저의 정치적 행보, 선출직 행보를 막는 그런 건 아니다”면서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 건 그 의도를 의심케 한다”고 불쾌감을 표출했다.
 
이 뿐 아니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도저히 제가 이해할 수 없고 제가 왜 거기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며 “이미 제가 분명하게 입장 밝혔다. 제가 얼마든지 자신있게 말씀드린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내내 극구 부인하던 반 전 총장은 자신이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 통화한 내용에 대해선 적극 해명했는데, “오해가 있었다. 완벽한 결론은 아니더라도 중간 단계라든지 그래서 양국 간 합의가 이뤄지면 (원론적으로 유엔사무총장으로서) 그런 협상을 환영해왔다”면서 “궁극적인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린다”고 부연했다.
 
◆ 정치권, 반 전 총장 귀국에 표정 각양각색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지지자들이 12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에 도착하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입국장부터 기자들의 날선 질문공세로 이미 대선주자로서 검증의 시험대에 올라서게 된 가운데 그의 귀국을 바라보는 기성 정치권에서도 일부는 벌써부터 검증 압박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우선 반풍(潘風)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선 윤관석 수석대변인을 통해 “반 전 총장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이미지 만들기 민생행보가 아니라 국민의 의혹을 해결하기 위한 검증”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 대변인은 이어 “반 전 총장이 만약 대선에 출마하겠다면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할 것은 대통령 후보로서의 철학, 자질, 능력, 도덕성”이라며 “전직 유엔사무총장이란 명성과 경험에만 의존하기보다 당당하게 국민의 검증대에 올라야 한다”고 압박수위를 높였다.
 
민주당 대선주자들 역시 당 공식입장과 마찬가지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진 못했는데, 일단 문 전 대표의 경우 반 전 총장의 귀국에 앞서 반풍의 본산인 충청권까지 내려갔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론 반 전 총장의 귀국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듯 당시 “반 전 총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데 이어 반 전 총장의 귀국 당일엔 이와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해도 “질문 안 받겠습니다”라며 묵묵부답으로 ‘무시 전략’을 펼쳤다.
 
다만 선두를 지키려는 문 전 대표와 입장이 다른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날 반 전 총장이 귀국하자마자 입장문을 통해 “기득권자가 ‘기득권 청산’과 ‘공정한 새질서’를 만드는 건 연목구어일 뿐”이라며 “최악의 유엔사무총장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외교행낭 사건, 23만 달러 수수 의혹, 친인척 비리 등 국민은 (반 전 총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과 자질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어 대조를 이뤘다.
 
얼마 전까지도 반 전 총장 영입 의사를 내비치며 연대론에 불을 지폈던 국민의당도 최근 안철 수 전 대표의 ‘자강론’ 때문인지 이날 반 전 총장을 향해 “동생과 조카의 비리혐의, 박연차 스캔들 등 본인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직접 국민 앞에 해명해야할 의무가 있다”며 “철저한 검증으로 국민을 납득시켜야만 반 전 총장의 정치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다소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취했다.
 
‘자강론’을 내세웠던 안 전 대표 역시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학생 리더십 아카데미 특강’ 직후 기자들의 반 전 총장 귀국 관련 질의에 “(반 전 총장이) 정치를 한다면 어떤 정치를 하실 건지 또 누구와 하실 건지 말씀도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어느 것 하나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유보적 자세를 취했다.
 
이에 반해 보수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정당들은 한 목소리로 환영 의사를 밝혔는데, 새누리당은 반 전 총장 측에서 이미 입당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음에도 진보성향 정당에 의한 정권교체를 더욱 바라지 않기 때문인지 이날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을 통해 “정치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며 “그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 희망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호의적 반응을 내놨다.
 
또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비박계 의원들이 세운 바른신당 역시 이미 김무성 의원이 반 전 총장에 러브콜을 보냈듯 이날 반 전 총장의 귀국에 대해서도 장제원 대변인을 통해 “그의 국제적 경륜과 경험이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어려움 극복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바른정당은 반 전 총장의 대권 행보를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고 노골적으로 영입 의사를 표했다.
 
반 전 총장의 귀국으로 그간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던 보수 성향 정당들의 기대감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정권교체가 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정치교체가 될 것인지를 놓고 벌써부터 세간의 관심이 반 전 총장의 발걸음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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