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적반하장에도 연일 저자세, “국민은 입 다물라?”

▲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시민들의 힘으로 ‘위안부’ 소녀상을 설립한 것과 관련, 일본 정부가 연일 발끈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연일 저자세로 일관하며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무언가 ‘이면합의’가 있던 게 아니냐는 파장을 낳고 있다. 사진/고승은 기자
[시사포커스/고승은 기자]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시민들의 힘으로 ‘위안부’ 소녀상을 설립한 것과 관련, 일본 정부가 연일 발끈하고 있다. 일본 측에선 주한일본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일시 귀국'시키고,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중단 등을 외치고 있다.
 
아베 총리도 NHK 방송에 출연해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성립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며 “일본은 우리의 의무를 실행해 10억 엔을 이미 거출했다. 그 다음으로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며 부산에 설치된 소녀상은 물론, 서울의 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소녀상 철거가 한일 정부 간 ‘이면 합의’된 사항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미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지난 1년여간 박근혜 정권의 태도는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짐작을 누구라도 하게 했다. ‘위안부’ 합의 문서를 비공개하는 것도 모자라, 소녀상 철거 문제를 일본 측에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해도 이렇다할 대응을 한 적이 없다.
 
외교부는 10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과 관련, "정부와 해당 지자체, 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이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을 고려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하기에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사실상 이전을 촉구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이면합의 의혹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는 양국 외교장관이 합의 당시 발표한 그대로이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녹음된 듯한 말만 반복했다. 결국 의혹만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지난 1년여간 박근혜 정권의 태도는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짐작을 누구라도 하게 했다. 사진/고승은 기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도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 "한일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존중하면서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외교부와 유사한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위안부’ 합의 재협상이나 폐기는 없다고 못을 박은 셈이다.
 
이같은 발언은 일본 정부의 요구에 굴복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굴욕적인 합의를 비판하는 국내의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성토가 일고 있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황 총리가 ‘위안부 재협상은 없다’고 선언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고연호 국민의당 대변인도 “무능하고 무책임한 외교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기는커녕 국민들에게 입 다물라고 하는 것이 황 총리의 유일한 한일관계 대책이냐”라고 목소릴 높였다.
 
‘위안부’ 합의 문제와 관련,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을 제외하곤 문재인·이재명·박원순·안철수·안희정·유승민 등 주요 대선주자 10인은 최근 <한겨레>를 통해 모두 재협상 혹은 폐기를 요청하고 있다. 결국 박근혜 정권 이후에는 폐기나 재협상 쪽으로 갈 분위기가 높은 상황이다.
 
◆ “모두가 다 아는 상식, 박근혜-아베와 그 수하들만 모른다”
 
새해 두 번째 열린 수요집회에서는 뻔뻔한 일본 정부와 굴욕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 정부를 향한 질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이 주최한 11일 오후 수요집회에서는 “일본은 전쟁범죄를 제대로 인정하지도 사죄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 허물을 덮기 위해 한일 ‘위안부’ 합의에 소녀상 철거하라며 한국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를 질타한 뒤, “국민들을 지키고 보호해야할 정부와 외교부장관은 이에 대해 항의 한마디도 못하는 굴욕스러운 상황”이라고 한국 정부를 힐난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이날 발언을 통해 “마치 소녀상 철거가 10억엔과 맞바꾸려고 햇던 것처럼, 그것이 마치 약속이었던 것처럼 한국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며 “10억엔을 주었으니 일본 정부가 도의적으로 우위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새해 두 번째 열린 수요집회에서도 뻔뻔한 일본 정부와 굴욕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 정부를 향한 질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진/고승은 기자
그는 황 권한대행에 대해서도 “사실상 황교안은 박근혜와 같이 탄핵돼야 할 사람”이라며 “박근혜 탄핵안 가결과 동시에 위안부 합의도 함께 탄핵된 것이다. 합의를 지키겠다는 등 발언을 하면 안 된다”고 일갈했다.
 
윤 대표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인데도, 그걸 딱 누구만 못하고 있느냐. 아베와 박근혜, 그리고 그 수하들”이라며 윤병세 외교부장관,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등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 뒤, “할머니들이 25년동안 국제사회를 돌아다니며 만들어왔던 평화와 인권, 존엄성, 명예를 다시 되돌려놓을 수 있도록, 역사를 2015년 12월 27일 그 이전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학생은 발언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합의되었다고 발표됐지만 지금까지도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현실적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하고 있지만, 할머니들의 상처가 치유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됐다”라며 “우리가 바라는 해결은 돈 몇 푼으로 하는 해결이 아닌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시민도 발언에서 “할머니들이 4반세기동안 시위하시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해결을 촉구했는데 느닷없이 2015년 12월 28일 또다시 정부에 의해 짓밟혔다. 이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과 거짓이 무엇이냐의 문제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수요집회는 굉장히 추운 날씨에도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지켰다. 특히 “반성없는 일본정부! 미래없는 한일관계” “중딩(중학생)들도 화가 난다. 일본정부 사과하라” 등 피케팅을 하는 등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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