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금’ 명목 20% 지급, 금감원 제재 피하려는 꼼수

[시사포커스/강기성 기자] 교보생명이 금감원의 문책경고에 따라 자살보험금을 ‘위로금’이라는 명목으로 20%만 지급하기로 한 것에 대해 약관을 지키지 않았고, 금감원 제재만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0일 교보생명 측은 최근 미지급 자살보험금 중 ‘2011년 1월 24일 이후의 미지급 건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의견서와 관련해 “대법원의 판결에도 금감원의 행정제재에 따라 2011년 이전에 보험업법을 최대한 맞춰 지급을 결정했다”며 “20%의 위로금을 설정한 이유는 50% 가까이 되는 해외주주들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자칫 경영자에 대해 배임소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지난 2일 이달 중으로 미지급 자살보험금 1134억 중 18%가량인 200억원을 ‘보험금’이 아닌 ‘위로금’이라는 이름으로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 교보생명이 위로금이라는 명목으로 미지급 자살보험금 20%만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배임'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시사포커스DB

소멸시효 판결?… 대형3사 외 생보사, 자살보험금 지급
앞서 2011년 1월 24일 금감원은 보험업법에 따라 기초서류 준수 위반 규정 법제화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2014년 8월 ING 자살보험금 미지급 제재를 거쳐 ‘영업제재’ 등 강수를 두며 생보사들에게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먼저 2016년 6월 ING, 신한, 메트라이프, PCA, 흥국, DGB, 하나생명 등 7개사가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 외 삼성, 한화, 교보, 동부, 알리안츠, KDB생명, 현대라이프생명은 대법원의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근거로 버텼지만, 이후 금감원의 '영업권 반납' '대표 해임권고' '과징금 부과' 등 초강수에 '백기'를 들고 빅 3사(삼성‧한화‧교보)를 제외한 모든 생보사들이 보험금을 지급하기에 이르렀다.

알리안츠생명은 금감원 제재에 이사회를 열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137억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고 뒤따라 현대라이프생명도 전액 지급을 발표했다. 동부생명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직전에, KDB생명은 판결 두달 후에 지급을 결정했다.

이 후 2016년 11월 금감원은 생보사 중 메트라이프생명 등 5개 보험사에 자살보험금을 뒤늦게 지급했다는 이유로 100~700만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내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들 보험사들이 늦게나마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데다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경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형 3사를 제외한 ING, 알리안츠, 메트라이프, PCA와 모든 국내 생보사들은 자살보험금 중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난 재해사망특약보험금도 모두 지급한 상태다,

결국 소멸시효 법원 판결을 근거로 지난해 말까지 삼성, 한화, 교보생명 대형 3사만 버티고 남았다.
 
20% 지급하는 이유가 배임 우려 때문?
올해 1월 2일 교보생명은 2011년 1월 이후의 자살보험금 재해보상특약에 대해서만, 즉 20%를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대법원의 소멸시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의 제재 경고가 있었기 때문에 양보(?)한다는 식이다. ‘자살보험금’대신 ‘위로금’이라는 명칭을 내놨다.

이런 교보 측의 주 논리 중 하나가 자살보험금이 자사의 해외주주들에게는 경영자의 배임행위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생명도 같은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교보‧삼성생명의 논리대로라면 ING, 알리안츠, 메트라이프, PCA 외국계 생보사들과 국내 대다수 생보사들 역시 자살보험금 지급이 배임이나 주주들의 손해배상 소송사유가 됐어야 한다.

이에 대해 자살보험금을 지급해 주주들이 배임이나 이의를 제기한 전례도 없고, 주주들의 조짐도 없다는 것은 업계의 중론이다.

또 소비자업계 일각에서는 “빅 3사가 전체 자살보험금 중 20%만 지급하겠다는 것은, 회사주주들에 대한 배임이 아니라 보험 고객들에 대한 배임이다”고 지적했다.
 
▲ 금감원은 교보,한화,삼성생명에 대법원 소멸시효 판결과 관계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현재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이 입장을 전달한 상태다.

특약을 끼워 놓고 손해나니…‘강건너 불구경’
과거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생보사들은 2년 이후 자살시 지급한다며 재해사망보장특약을 넣은 자살보험상품을 판매했고, 특약이 일반사망보험금보다 2~3배 컸기에 2010년 이후 지급 조항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됐다.

이후 보험사들은 재해사망특약이 실수였다며 2010년 약관을 부정하며 지급을 거부해 크게 불거졌다. 2014년 9월 교보생명이 자살보험금에도 소멸시효를 적용해야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 9월 대법원은 “2006년 7월 사망한 원고가 교보생명에 2014년 8월에야 특약 보험금을 청구했으므로 보험청구권은 시효가 완성돼 소멸했다”고 판결했다. 앞서 2004년 5월 교보생명과 맺은 보험계약 중 특약(재해사망특약)이 가입돼 있는 피보험자가 2006년 7월 자살했고, 교보생명은 일반사망보험금 5000만, 특약을 빼놓고 지급했다.

그리고 교보생명은 “재해사망보험금 청구권이 2년 소멸시효가 지나 없어졌다”고 외면했다. 당시 보험계약자는 교보 측의 이를 미리알고 계약한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약관의 내용을 자살한 보험계약자나 알 사항이지 보험수령인이 자세히 알 리가 없어 사망이후에 주장한 것이다.

이에 금감원 측은 2016년 5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애초 소멸시효 개념 소송이니 의미가 없다”며 교보 측과 생보사에 소멸시효 여부와 무관하게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이 소명서를 제출하면서 '꼼수' 논란이 벌어졌다. 금감원의 ‘기초서류 약관 준수 위반 규정’ 이후 청구 건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후 피해구제 노력을 감안하겠다”면서도 “약관은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약관에 명시되어 있으면 그대로 지급해야 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며 보험 약관 준수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선진국의 보험소송의 사례를 비춰봐도 ‘약관 작성자가 자신이 잘못 작성한 약관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논의의 가치조차 없다”라고 설명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2011년 1월24일 이후의 보험업법 문제는 금감원과 보험사 간 문제로 지급할 의무는 변함없다"며 "계약할 때의 소비자와의 (약관이라는)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보험사의 이중적 행태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교보생명과 마찬가지로 한화생명도 1050억원 중 교보생명과 비슷한 20% 미만을 '보험금'으로 지급할 방침이다. 삼성생명은 아직 자세한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비슷한 수준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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