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2선 후퇴’ - 비박 ‘인적 청산’ 신경전 지속

▲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장 인선 문제가 친, 비박 간 신경전 속에 분당 사태까지 좌우할 사안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조기 대선 계획이 철회됨에 따라 사실상 당분간의 당 대표직이 될 비대위원장직을 놓고 친박과 비박 간 첨예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기를 잡았던 친박계는 내친김에 비대위원장직 인선에도 영향을 미치려는지 벌써부터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일단 정우택 원내대표가 비박계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겠다고 한 만큼 어떻게 인선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비박계에서 예고한 친박계에 대한 인적 청산 조치 여부가 비대위원장 수용 여부를 놓고도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점은 친박계는 물론 정 원내대표 역시 확고한 상황이어서 비박계가 별 수 없이 한 발 물러설 것인지 아니면 아예 탈당을 택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원내지도부 차지한 친박, 비대위원장직도 조건 내걸어

 
앞서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 화합’을 내세운 친박과 사실상 친박 청산을 기반으로 한 ‘당 쇄신’을 내건 비박 간 대결은 결국 친박계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최순실 사태’로 흔들렸던 친박계는 안정을 찾은 반면 비박계는 여전한 친박계의 위세에 당내 입지가 궁색해진 모양새다.
 
그러다보니 사실상 당 대표격인 비대위원장직을 확보하는 데 비박계는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원내대표 당선으로 자신감을 얻은 친박계에선 비대위원장직을 놓고도 비박계에 일련의 조건을 내걸고 있어 ‘비대위원장 선임’은 양측의 자존심을 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주요 쟁점은 ‘인적 청산’ 단행 여부인데, 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비박계 인사가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고 친박계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강성 친박계인 조원진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비대위원장 선출 후 대선구도, 개헌구도로 넘어가야 하는데 전면전을 했을 때 앞에 있었던 사람들은 좀 뒤로 물러나야 하지 않겠나”라며 “(친박계) 대부분이 유 의원은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친박계에선 당 화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친박계와 비박계에서 각각 1명씩 나와 공동 비대위원장을 맡게 하자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는데, 원내지도부까지 이미 친박계로 구성된 상황에서 이 같은 제안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비박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비박계 정병국 의원은 19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서로 타협해서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또 다시 포장을 해서 (친박) 그분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으면 과연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이 뿐 아니라 친박계 후보로 당선된 정우택 원내대표 역시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공동 비대위원장 방안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추천권을 일단 비주류 측에 줬으니 비주류 측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일축하면서도 “단합을 해칠 사람, 정권 재창출에 지장을 줄 사람을 추천하라는 건 아니다”라고 비박계의 비대위원장 추천에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는 ‘인적 청산’을 할 수 있도록 전권을 준다면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한 유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비록 정 원내대표가 이날 “분명히 말하지만 제가 친박의 아바타나 로봇을 하려고 원내대표가 된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으나 명목상의 당 화합 때문에라도 결국 유 의원에 대한 친박계의 강한 반감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 원내대표는 비박계에서 요구해온 친박 핵심 인사들의 2선 후퇴 역시 당직 관여를 금하는 수준 정도로 정의하는 데 그치면서 이들에 대한 높은 수준의 문책을 원하고 있는 비박계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특히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나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의 경우 당초 당직을 맡고 있지도 않은 상황이어서 실효성 없는 2선 후퇴란 단어로 도리어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는 비박계에선 정 원내대표의 입장과 달리 ‘인적 청산’을 주장했던 유 의원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내세우는 쪽에 점점 힘을 싣고 있다.
 
▲ 김무성 전 대표가 비박계 의원들과 논의한 결과 비대위원장 후보에 유승민 의원을 추천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그 중에서도 유 의원과 비박계 내에서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온 김무성 전 대표조차 같은 날 약 15명의 비박계 의원들과 함께 회동한 뒤 유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추천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박계에선 유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우는 마지막 승부수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개별 탈당도 아닌 분당에 돌입할 것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처럼 김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 후보에 유 의원을 세우기로 돌연 입장을 정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유 의원이 먼저 ‘인적 청산’을 위한 ‘전권을 내놓으라’고 승부수를 던져 친박계와 치킨 게임에 돌입한 만큼 이 요구가 받아들이지 않는 즉시 대규모 탈당을 결행할 명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비박계를 이끌 주도권마저 쥐게 돼 탈당파인 김 전 대표보다 승부수를 던진 유 의원에게 리스크가 큰 상황이란 판단 하에 김 전 대표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 전 대표가 아니더라도 이미 비박계에서 비대위원장으로 유 의원을 내세우자는 목소리가 상당히 높고 이른바 ‘낀박’이라던 정진석 전 원내대표나 심지어 친박계에 속하는 강효상 의원조차 이날 M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유 의원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대위원장 후보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을 정도로 친박계의 반발 여부를 떠나 유 의원이 후보로 정해지는 것은 필연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유 의원이 비대위원장 수용 조건으로 내세웠던 ‘전권’이 과연 어느 정도 범위까지 이르는지에 대한 부분인데, 이와 관련해 같은 비박계인 나경원 의원은 이날 “지난 2011년 말 출범했던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와 같이 모든 권한을 주는 게 필수적”이라며 “친박계 2선 후퇴를 위한 각종 징계 결정, 새로운 보수 가치 정립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을 위해서라도 비대위원장에 전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유승민 탈당 여부, 사실상 ‘정 원내대표’ 결단에 달려
 
하지만 이런 요구는 탈당이나 제명 등 인적 청산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정 원내대표의 주장과 상충하는 부분이다 보니 결국 ‘분당’이란 배수진을 친 비박계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향후 분당을 각오하더라도 현재의 입장을 견지할 것일지는 순전히 정 원내대표의 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 원내대표가 이날 원내수석에 김선동 의원을 임명하는 등 원내지도부조차 대부분 친박계로 진용을 구성하면서 친박계 쪽에 힘을 싣고 있는 행보를 이어가는 점에 비춰 볼 때 비박계가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어 유 의원 역시 이날 “(정 원내대표의) 공식 답변을 기다려보고 결심을 말씀드리겠다”면서도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고 탈당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이미 유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 과정에서 일어난 공천 파동에 반발해 탈당한 바 있어 두 번째 탈당 시도를 하는 데 있어선 이제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당초 김 전 대표와 달리 당 잔류를 강하게 주장해왔던 만큼 부득이 탈당을 택하더라도 그만한 명분이 필요해 최대한 당내 투쟁을 벌인 뒤 친박계에 의해 ‘밀려나는’ 모양새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일찌감치 새누리당을 탈당해 새 길을 모색하고 있는 김용태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은 비박계 중 탈당에 미온적으로 나오는 유 의원을 향해 연일 탈당을 종용하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는데, 지난 18일 김용태 의원은 “유승민 의원에게 묻겠다. 더 이상 어떤 수모를 당해야 친박들과 결별할 것이냐”라며 “이제 새누리당을 나와 우리와 함께 새로운 보수 중심의 신당을 만들어 보자”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별 다른 반응이 없자 이들 탈당파 전·현직 의원들 모임의 일원인 정두언 전 의원은 19일 가진 ‘저부터 반성하겠습니다’ 토론회에서 유 의원을 겨냥 “강경보수 입장에 섰다가 왜 갑자기 중도개혁을 얘기했는지 그 변심을 설명한 적 없다”며 이를 ‘기회주의’로 칭한 뒤 탈당하지 않으면 끝이라고 말해 한층 압박수위를 높였다.
 
한편 이날 회의에 새누리당 소속임에도 특별히 참석한 비박계 정병국 의원은 앞서 가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박계의 분당 가능성에 대해 “새누리당이 해체돼야 한다고 우리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부분이 마지막으로 남았다”며 “이번 주 안에 결판이 나지 않을까”라고 밝혀 이들의 탈당 촉구 정도와 관계없이 적어도 금주 중에는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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