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분석 여의도 정가 떠도는 정계개편 시나리오

정기국회를 코앞에 두고 정가에 서서히 정계개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10월 정기국회 이후 여의도에 한차례 거센 ‘빅뱅’이 몰아칠 가능성마저 내비치고 있다. 여-야를 떠나 서로 이념과 정책에 따라 ‘헤쳐모여’가 단행될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한나라당을 깬 후 신당을 만들어 정체성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한나라당 개혁, 소장파들이 여당과 손잡아야 한다”고 답했다. 물론 김, 민 두 의원이 정계개편의 축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정가를 떠도는 정계개편 논의는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더 이상 인물은 없다. 이제는 정책과 이념이다. 최근 정가를 떠도는 정계개편 논의가 인물 중심에서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물에서 정책으로 지난 13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한나라당을 깬 후”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정체성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인사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한나라당 개혁-소장파들이 여당과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의원의 주장과는 맥을 달리 하고 있지만 결국 여당과 손을 잡던, 정체성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던 인위적인 정계개편이라는 점은 명확한 사실. 이처럼 정치권 일각에서는 향후 정계개편의 방향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속속 새어나오고 있다. 이 기류의 핵심은 더 이상 인물이 중심이 된 정계개편이 아닌 의원 개개인의 정책적 판단 및 신념에 따라 나눠진다는 것. 이는 두 가지 뿌리에 근거한다. 하나는 더 이상 카리스마적 정치력을 확보한 거대인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인물 중심의 정계개편론은 그 생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론이나 당 지도부의 전략적 부재에 대한 의원들의 활성화된 비판 및 의견개진이 이뤄지는 현 정치상황이다. 따라서 몰이념적-정책적 정당구조가 의원들의 역량과 성향을 포섭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런 정당구조의 한계는 한미FTA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을 거치며 당내소장파들이 당 지도부의 전략부재에 대해 맹성토했던 한나라당 연찬회 파동, 열린우리당 13명이 참여했던 한미FTA권한쟁의심판청구 등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 바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역사를 되짚어 보면 그야말로 인물위주의 정치였다. 87년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절차적 민주화가 도래한 이래, ‘1노 3김’의 정치 시스템은 한국땅에 뿌리를 확실히 내렸다. 공고한 지역적 기반과 대표적인 보스의 존재는 항상 인위적인 정계개편의 피바람을 불러왔다. 지난 90년 2월 ‘3당 야합’의 보수대연합, 97년 대선을 앞두고 성공한 DJP연합 모두 위의 조건을 근간으로 이뤄진 것이다. 여기서 97년 대선의 경우는 다른 종속변수가 투입된다. 그것은 이인제 의원의 탈당. 당시 신한국당의 경선결과에 불복해 이 의원이 탈당함에 따라 이회창 후보의 표를 잠식했고, 결국 97년 대선은 김대중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인물과 지역적 지지기반으로 대표되는 인위적 정계개편의 흐름이 정계개편을 맥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란 게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즉, 한마디로 인물중심의 정계개편은 더 이상 없다는 것. 카리스마 정치 “이제 그만~” 차기 대권가도에서 인지도가 높은 후보군을 보유한 한나라당의 경우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등 이른바 ‘빅3의 3강구도’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2강’을 형성하고 있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은 향후 대권정국에서 결코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 이란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미 지난 1997년 ‘이인제 학습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 이런 무모한 형태의 정계개편 가능성은 전무한 상태다. 또한 한나라당을 떠받치고 있는 보수적 지지층이 분열한 이들을 지지를 보낼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빅3 중 ‘1약’ 손 전 지사의 경우 야권 일각에서는 차기대권보다는 차차기를 노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 또한 이인제 의원이 말을 갈아탄 이후 지난 2002년 대선가도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밀린 선례를 학습한 효과다. 최근 갑작스레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고건 전 총리는 정치력이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에서 인물론을 내세운 정계개편의 무대에서 은퇴해야 할 처지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특히 ‘모든 토대를 다 만든 후 대권주자로 영입하라’는 식의 고 전 총리의 정치행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선주자들이 넘쳐나는(?) 야당에 비해 여당은 상대적으로 인물난에 허덕이는 처지. 따라서 상품성 있는 대선주자를 쉽사리 내세우기 힘든 실정이다. 이같은 정황은 개인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으로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 전작권 환수논란 등 주요국정현안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제각각 활성화된 논의를 보여주고 있는 이면에는 앞으로 전개될 정계개편이 인물보다는 이념-정책쪽으로 진화할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지난달 말 치러진 연찬회에서 이 두 사안에 대한 당지도부의 무능력과 전략부재에 대해 일제히 성토의 목소리를 냈다. 우리당 의원 13명은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에 대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이런 양상은 과거의 정당정치와 비견해 볼 때 괄목할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런 양상은 분명 확고한 당론결정이나 보스중심 정당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차기대선은 분명 양강구도로 전개될 것인데, 이는 인물이 아닌 중도보수측과 중도개혁측의 맞대결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념-정책 중심노선에 따른 정계개편 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은 누구일까. 이 ‘가설’의 외부효과는 대내, 외적 국정의제와 관련된다. 그리고 인물은 철저히 통제변인 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도출되는 종속변수는 전작권 환수 논란에서 비롯한 대북관, 한미FTA에서 발현된 경제관 그리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지역간 연대의 성격이다. 이를 거칠게 단순화시키면, 중도보수그룹은 먼저 강경한 대북관을 가진다. 북한을 주적으로 보며, 분단현실의 극복을 위해 북한정부에 강경압박을 가할 수단을 펼쳐들 수 있다. 그리고 자본의 세계화 및 전지구적 산업재편을 용인하며 급격한 개혁조치를 완화하는 정책을 쓴다. 마지막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지도부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적 영호남의 통합을 추진한다. 이에 해당되는 그룹은 소장파를 제외한 한나라당과,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열린우리당의 안개모 등의 정파, 민주당의 통합론자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응해 중도개혁그룹은 먼저 온건한 대북관을 지닌다. 북한과 경제통합을 통해 그들의 도발의지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정책수단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재벌 및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맞서, 세제개혁, 연금개혁 등을 통해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경제카드를 빼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위적 지역주의의 억제를 반대한다. 이에 해당되는 집단은 참정연, 의정연구센터 등의 여당 내 정파, 원희룡, 고진화로 대표되는 한나라당 소장파 등을 손꼽을 수 있다. 新개혁폭풍 시작된다 인물이 사라진 정계개편, 참여정부 초창기 여의도를 급습했던 거대한 개혁폭풍 못지않은 자연스러운 정가의 새로운 개혁움직임이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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