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달래줄 '꽃' 피었네...

‘서울대입구’ 전철역에서 지선버스를 타고 15분 정도가면 도착할 수 있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이 나온다. 일명 ‘녹두거리’라고도 불린다. 신림9동에 있는 이곳 신림동 고시촌은 일대는 대한민국 엘리트 관료 및 법관이 되기 위한 일차적 관문으로 통한다. 다리 뻗고 자기도 힘든 고시촌에서 청춘을 바친 중견 법조인과 고위 공무원들이 가끔씩 이곳을 찾아 과거의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신림동 고시촌의 풍경은 더 이상 한 평 남짓의 답답한 추억이 아니다. 이미 이곳은 ‘퓨전과 복고가 결합된 유흥문화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고시촌의 명성이 크게 퇴색되지 않는 수준은 유지해 왔으나 최근 이마저도 서서히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섹시 코드가 결합된 ‘바(Bar) 문화’가 빠른 속도로 형성되기 시작했고 ‘PC방촌’으로 불릴 정도로 빼곡히 들어서 있던 PC방들은 모두 ‘성인 PC방’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속에는 고시생들만이 아닌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녹두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녹두거리는 그 옛날 이곳에 유명한 녹두 빈대떡 집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아직도 몇몇 곳에 녹두 빈대떡 집이 그 흔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확한 연원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큰 대로를 중심으로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이면도로는 일명 먹자골목과 학원가, 그리고 유흥가가 뒤섞여 있다. ◆바(bar)들의 반란 최근 신림동 고시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라면 급속도로 형성된 바(Bar)들이다. 대로변의 첫 번째 이면도로에는 이미 6~7개의 바들이 들어선 상태. 이른바 ‘빠거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신림동 고시촌 일대에서 가장 섹시한 공간이기도 하다. 저녁 7~8시 사이에 이곳으로 출근하는 여성들의 모습 자체가 이미 하나의 ‘볼거리’로 자리를 잡을 정도다. 가난한 고시생의 입장에서 바를 들락거린다는 것은 이곳에서는 ‘사치’에 가깝다. 집으로부터 든든한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일부 ‘상류층 고시생’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기는 하다. 그런데도 이곳에 바들은 오히려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이유는 이곳 고시촌이 고시생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직장인이나 인근 대학의 학생들까지 고시원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IMF의 거센 바람이 우리 사회에 번지면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싸고 혼자 이용할 수 있는 고시원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른바 자녀들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낸 이른바 기러기 아빠들이 늘어나면서 일반 월세보다 돈이 덜 들어가는 이곳 고시원을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직장인들보다는 바를 이용하는 손님들은 돈 많은 고시생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업주들은 말한다. A바 바로 아래층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원래는 고시생보다는 인근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의 출입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고시생들도 자주 찾는다. 혼자 와서 조용히 술 한잔 하고 가는 바의 문화와 고시생의 정서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고시촌 바가 아무래도 저렴할 것이라는 소문 때문인지 직장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한창 피 끓는 젊은이들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해 잔뜩 모여 있는 고시촌 주변에 ‘섹시 코드’로 무장한 업소들이 유혹의 손길을 뻗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특히 이러한 바들은 기존의 술집과는 전혀 다른 인테리어와 분위기, 그리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서빙과 함께 말동무도 해주기 때문에 고시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그만 이라고 이 곳을 찾은 고시생들은 밝혔다. ◆심화되는 양극화 빠거리를 지나 관악청소년 회관과 동방종합시장까지 가는 길은 마치 1980년대와 2000년대의 모습을 혼합해 놓은 듯한 묘한 분위기가 발산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돈 없는 고시생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단돈 2천5백원짜리 백반을 파는 허름한 식당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는 최신 유행의 새로운 업태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점차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특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전히 소탈하고 값싸고 심지어는 ‘잔술’까지 팔고 있는 ‘고시형 술집’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가난한 고시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봐주지 않는 값 비싼 술집이나 레스토랑 등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에 대해 강남 유흥가의 첨단 상업 문화가 고시촌 일대에 침투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 분식점을 운영하는 한 50대 여성은 “이곳에서 10년이 넘게 장사하고 있지만 비싼 유흥업소들이 들어서면서 면학 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고시생들보다 이곳에 와서 흥청망청해대는 일부 직장 남성들의 모습이 더 꼴불견”이라고 눈살을 찌푸렸다. ◆도박이 점령한 고시촌 확실히 신림동 고시촌은 아직도 강남이나 북창동식의 유흥가와는 상당히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시내 유흥가에서는 감히 찾아보기 힘든 싼 가격도 그렇지만 혼자 술을 먹거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간편하게 거리를 활보해도 조금의 눈치도 보이지 않는 편안함 때문이다. 고시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성인 PC방의 범람이다. 그래서 한때 이 거리를 청소년들이 점령하기도 했다. 원래 이곳은 ‘열 걸음 걷다보면 한 군데 있는 것이 PC방’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PC방들이 있었다. 좁디좁은 고시원에 컴퓨터를 놓을 수 없는 고시생들을 위해 생겨난 것이다. 이 곳에서 고시를 접수하고 많은 자료를 찾는 등 PC방은 고시생들에게는 꼭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최근 PC방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바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성인 PC방의 범람이다. 성인 PC방으로 너도 나도 탈바꿈하면서 이제 바와 성인 PC방은 고시촌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흥문화가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성인 PC방으로 인해 공부는 뒷전이고 도박에 빠져 돈을 탕진하는 것이다. 스크린 경마는 게임 방식에 따라 한번에 120여곳에 동시 베팅을 할 수 있는 데다 5분 정도면 게임 한번 하는 데 충분하다. 몰입하다 보면 1시간에 10만원 정도 쓰는 것은 예사다. 이러다 보니 고시촌의 공부하는 분위기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8)씨는 “무늬만 고시생인 사람들이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일부 수험생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았다가 1주일에 20만∼30만원씩 쓰면서 중독 되는 경우도 제법 있다.”고 전했다. 특히 여학생들의 불안은 더 심하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강모(24·여)씨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 여자 혼자 생활하기 편하다는 점이 신림동의 장점”이라면서 “그런데 늦은 밤이면 경마오락장 부근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도 늘어나 괜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환락가로 변신한 신림동
성인 PC방의 범람과 함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윤락업소의 등장이다. 그동안 고시촌에는 업자의 불문율 때문인지 윤락업소는 들어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장안동 안마 업자들이 고시촌에 ’분점‘을 내면서 업종 불문의 윤락업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특히 이들 안마시술업소가 다른 지역에 비해 30~40% 저렴한 5만원에서 6만원 사이에서 유사 성행위를 제공하면서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행위까지 알선하는 안마시술소도 이제 10여개나 되고 있다. 밤이 되면 업소에서 고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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