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퇴진안’ 수용 여부 관련 朴 대통령 입장 표명이 관건

▲ 여야가 박근혜 대통령 거취를 놓고 내년 4월 퇴진이냐, 탄핵이냐로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가운데 당사자인 박 대통령은 정치권의 합의안만 기다린 채 침묵을 지키면서 향후 정국을 예측하기 더 어려워지고 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분열 조짐을 보였던 야권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9일 표결을 목표로 탄핵 추진 움직임을 재개하면서 2일 야3당 단일 탄핵소추안의 발의를 앞둔 가운데 여당은 ‘4월 추진 퇴진’ 쪽으로 우선 중의를 모아 정치권의 구도가 ‘탄핵’과 ‘퇴진’으로 명료해진 상황이다.
 
이처럼 여야가 분명하게 입장을 정리하면서 일견 이전보다 불확실성이 완화된 것처럼 비쳐지고 있으나 극명한 견해차만큼 여야 간 합의 가능성은 크게 낮아져 국회의 합의안에 따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그 앞날은 더 예측하기 힘든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 재결집한 3野, ‘9일 표결’ 목표로 탄핵 재점화
 
차기 대권을 의식해 각자 동상이몽 중이던 야권이 좌고우면하던 끝에 결국 9일 표결을 목표로 탄핵 절차를 재가동시켰다.
 
이미 김무성 전 대표를 위시한 비박계 상당수가 ‘4월 퇴진’안에 힘을 실으면서 가결 여부조차 불확실해진 형국이지만 야권은 비박계 측이 유일하게 수용 의사를 비쳤던 9일 표결을 마지막 카드로 삼아 밀어붙이는 방법 외엔 별 다른 묘수가 없을 정도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이후 돌아선 비박계와는 별개로 애초에 야3당은 주요 지지층이 여당과는 확연히 다르다보니 탄핵 추진 포기로 받게 될 책임론이나 역풍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 좋든 싫든 함께 한 방향으로 추진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라 야권은 지난 1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 지지도가 여전히 한 자릿수 답보 상태를 이어간 점이나 탄핵 찬성 답변이 75.3%로 높게 나타난 점 등에 비쳐 일단 가결 여부를 떠나 탄핵을 추진할 명분이나 여건이 충분히 조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비박계가 스스로 못 박았던 9일 표결에도 불참할 경우 탄핵안 부결로 인한 책임은 대체로 야권보다 비박계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연유로 비박계 역시 친박계와 함께 ‘4월 퇴진’안을 추진하기로 당론화까지 했음에도 내부적으로는 복잡한 분위기인데, 박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여야의 합의안을 따르겠다고 한 만큼 지금처럼 야권이 여당의 ‘4월 퇴진’ 제안을 일축한 채 탄핵만 고수한다면 여당이 간신히 계파를 초월해 중의를 모았다고 한들 야권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수용 불가 입장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비박계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얻어내지 못한 채 출구만 마련해줬다는 비판과 더불어 탄핵 부결 책임까지 지게 되는 최악의 국면으로 몰리게 될 수 있기에 비박계 지도부격인 비상시국회의는 2일 황영철 의원을 통해 “오는 8일 오후 6시까지 대통령이 (4월 퇴진안 수용 여부) 입장을 밝히라”고 청와대에 데드라인을 제시했다.
 
탄핵안 표결이 9일로 예정된 만큼 7일까지 대통령이 4월 퇴진안을 수용하겠다는 확답을 내놓지 않으면 야권과 함께 탄핵 대열에 동참하겠다는 압박전술인데, 일단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일 4월 퇴진이 새누리당 당론으로 채택된 데 대한 박 대통령 입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도 “여야가 조속히 합의해 달라.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라고 여전히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다만 불확실성만 키우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겨우 결속된 여당 내에 불안감을 확산시켜 일부 비박계가 9일 탄핵 ‘무기명 투표’에 동참할 변수도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허원제 정무수석이 비박계와 청와대에서 회동을 원한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연락을 받았던 비상시국회의 간사 황영철 의원은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다는 측면에서 우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 4월 퇴진안 동조 속 ‘흔들리는’ 비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박계 내에선 대통령의 4월 퇴진안 수용 여부는 차치하고 야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탄핵 표결을 강행할 경우 9일 표결에 동참할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인데, 탄핵보다는 4월 퇴진안을 지지하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대부분 비박계 의원들은 대통령이 4월 퇴진안만 받아들인다면 야권과의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탄핵은 철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유승민 의원이나 정병국 의원 등 일부 비박계 의원들은 이들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비박계의 복잡한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데, 정병국 의원은 2일 국회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에게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탄핵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승민 의원도 같은 날 박 대통령이 4월 퇴진 뿐 아니라 (4월 이전까지) 즉각적으로 2선 후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야당의 탄핵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면서 4월 퇴진 의사만 표하는 데 집중하는 김 전 대표 측보다 한층 강도 높은 입장을 내놨다.
 
이처럼 비박계조차도 4월 퇴진안에 동의한다는 큰 흐름 외엔 야당과의 합의 여부 등 세부적인 부분에선 분명한 이견 차가 나타나고 있는데, 실제로 중앙일보가 새누리당 의원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2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22~23일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던 새누리당 의원 31명 중 21명은 대통령이 4월 퇴진을 약속하면 탄핵 처리에 불참하겠다고 했으나 4명은 8일까지 입장을 유보하겠다고 했고, 3명은 응답을 거부했으며 심지어 3명은 대통령의 퇴진 약속과 관계없이 탄핵에 찬성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비박계도 야권처럼 동상이몽하고 있다 보니 장차 상황변화에 따라 친박계와 발맞추고 있는 현 국면을 뒤집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당장 오는 7일을 시한으로 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 여부는 물론 친박계의 독촉에도 이정현 대표가 속히 처리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비대위 구성 문제 등도 당 분열을 재발시킬 수 있는 도화선으로 꼽히고 있다.
 
이 같은 낮은 수준의 연대를 뒤흔들기 위해 야권에선 현재 여러 방면으로 탄핵대오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데,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2일 비박계에서 오는 7일까지 박 대통령에 명확한 답변을 요구한 점을 꼬집어 “박 대통령이 오는 7일 이전에 또 무엇인가 말씀을 던질 것”이라며 이를 ‘거짓말 함정’이라고 규정해 선제 차단에 나섰다.
 
또 더불어민주당에선 앞서 표창원 의원이 1일 탄핵 반대 의원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여론을 통한 압박전술을 펴기도 했는데, 여기에 반감을 가진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 등 일부 비박계 인사는 표 의원과 반말과 고성이 오가는 거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같은 날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인터넷과 SNS 등에 공개돼 탄핵에 미온적인 의원들의 휴대전화로 시민들의 탄핵 촉구 메시지가 시시각각 쇄도하면서 일부 의원들은 정상적 업무를 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 내부 수습 나선 與 향해 野 ‘탄핵’ 압박 강화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1일 탄핵반대의원들의 휴대폰 번호가 유출된 것과 관련해 휴대폰을 꺼내보이며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여당 지도부도 더는 좌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여당 흔들기 시도’를 맹비난했는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일 의원총회에서 야권을 겨냥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은 관심이 없고 오로지 탄핵”이라며 휴대전화 번호 공개 사태에 대해선 “홍위병을 앞세운 대중 선동에 의한 정치”라고 날선 반응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정 원내대표는 이 시점에 청와대 측이 확답을 내놔 여당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 데 대해 답답했는지 박 대통령을 향해서도 배수진을 쳤는데, “만일 국회에서 4월 퇴진을 결정했는데 대통령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의원직 사퇴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압박수위를 높였다.
 
여기에 그간 말을 아끼던 친박계 이정현 대표까지 같은 날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이미 퇴진을 수용했고 대통령이 억지로 경착륙보다 연착륙, 정권의 원만하고 안정적인 이양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문재인, 안철수 대표를 비롯한 야당 주요 인사들이 국정혼란과 정치혼란을 최소화 하는 방안으로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단어를 먼저 쓰지 않았냐”라고 야권에 맞불을 놨다.
 
여당 지도부의 이 같은 비판에도 야권은 더 이상 개의치 않은 채 대선주자들까지 한 목소리로 탄핵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는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2일 오후 국회 앞에서 ‘문재인의 호소’ 행사를 열고 새누리당에서 제안한 4월 퇴진안에 대해 “국민의 뜻을 왜곡해 다시 권력을 잡으려는 기회주의적 정략”이라며 “탄핵을 무산시키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겠다”고 역설했다.
 
또 다른 야권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이에 못지않게 여당의 4월 퇴진안 제안을 겨냥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박근혜 퇴진을 바라는 전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지금 국민들의 요구는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거나 헌법적 절차에 따라 국회에서 탄핵하라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안 전 대표는 “대통령 탄핵표결 전에 국회가 ‘박 대통령 퇴진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자”면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즉시 중단은 물론 국회 추천 국무총리에 대한 정권 위임, 조건 없는 퇴진을 결의사항으로 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각 당 지도부부터 대선주자들까지 대통령 거취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앞서 최순실게이트와 관련해 별도의 해명 기자회견 일정을 열기로 약속했던 박 대통령이 비박계에서 제시한 오는 7일 이전까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가 정국전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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