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임기단축용 개헌’이나 ‘4월 하야’ vs 3野, 탄핵…비박 ‘캐스팅 보트’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3당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장실에서 회동을 갖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난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 당시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언했는데, 야권은 물론 새누리당 비박계까지 탄핵안 처리로 뜻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고 전격 발표한 데에는 적어도 탄핵이란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는 것만은 원치 않는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라며 ‘임기 단축’을 한 예로 제시한 것은 탄핵으로 강제 퇴진 당하게 되는 것보다 어차피 조기 퇴진이 불가피하다면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방법으로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모양새를 띠고 싶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당장 친박계에서도 정치권에서 대통령 거취 문제를 협상해야 한다면서 대통령 임기단축을 위한 개헌 논의에 들어갈 의사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미 탄핵 국면으로 접어든 야권이 이제 와서 입장을 되돌리긴 어렵다며 탄핵은 일단 강행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대통령 임기 단축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에 정국 향방을 쥐고 있는 새누리당 내 비박계 역시 대국민담화 이후 일부 주춤하기는 해도 탄핵 카드를 완전히 놓지는 않고 있어 장차 정국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대통령 임기 단축’ 위한 개헌 가능성은?
 
우선 국회가 법적으로 대통령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방법 중 ‘탄핵’이란 절차는 박 대통령 스스로 강조한 ‘국정공백 최소화와 안정적 정권 이양’에는 부합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청와대가 30일 “개헌이든 아니든 국회 결정대로 따르겠다”고 발언했다고 해도 실상 탄핵을 제외하고 법적으로 국회가 대통령 거취를 결정할 방법은 오직 ‘개헌’ 뿐이다.
 
헌법 제128조 2항에는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 시도를 막기 위해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적시하고 있지만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표현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기 위한 개헌은 정치권의 결심만 있다면 가능하다.
 
다만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최대계파인 친문재인계가 개헌 반대 입장을 확고하게 표명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개헌을 논의하고자 한 배경이 대통령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차기 정부가 어떤 형태로 변화되어야 할 것인지에 방점을 뒀던 만큼 최순실 사태라는 특정 사건의 영향으로 불거진 ‘대통령 임기단축’안을 개헌 동기로 삼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 비박계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격인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이 30일 “대통령의 임기 단축만을 위한 개헌은 명분이 없다”며 “대통령의 진정성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스스로 자진사퇴 시한을 명확히 밝혀주어야 한다”고 밝힌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발언처럼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도리어 국회에 맡길 게 아니라 일단 대통령 스스로 퇴진 일자를 명확히 하는 편이 적절하다는 것인데, 이들은 최적의 퇴진 시점으로 지난 27일 정계 원로들이 제시했던 내년 4월 말을 꼽았다.
 
이처럼 내년 4월 말을 대통령의 퇴진 시점으로 잡게 되면 대통령 하야 시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는 현행법상 6월 중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되는데, 탄핵을 택할 경우 예상되는 조기대선 시점(5~8월)과는 비록 한 두 달 안팎의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탄핵 심판 결정이 나오기까지 3달 가까이 정치 일정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나 국정 공백 정도 등을 따져볼 때는 자진사퇴가 더 낫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 친박계인 조원진 최고위원은 의원총회 도중 기자들에게 “대통령 선거란 것이 전대도 치러야 하고 여러 과정이 있어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내년 4월30일이 대통령이 하야하는 날짜로 가장 맞지 않느냐”고 발언한 바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 같은 ‘4월 사퇴 주장’엔 친박계 역시 공감한다는 의사를 피력하고 있어 의외로 비박계와의 접점이 생길 가능성도 없진 않은데, 친박계인 조원진 최고위원은 30일 의원총회 도중 기자들에게 “대통령 선거란 것이 전대도 치러야 하고 여러 과정이 있어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내년 4월30일이 대통령이 하야하는 날짜로 가장 맞지 않느냐”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협상에 돌입한다고 해도 비박계에서 그 시한을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내달 9일까지라고 잡아놓은 만큼 현재 탄핵만을 고수하고 있는 야권을 설득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불과 일주일 동안 대통령 퇴진 이후의 정국 수습안을 친박계와 도출하기엔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해 외형상 탄핵 처리에 동조한다는 모양새를 피하려는 비박계의 꼼수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친박-野, 정국 ‘열쇠 쥔’ 비박 잡기 경쟁 치열
 
이런 상황이다 보니 끝까지 탄핵을 강행하겠다는 야권과 이를 저지하려는 친박계는 캐스팅 보트 위치에 선 비박계를 향해 사실상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인데, 먼저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일단 비상시국회의는 오늘부로 해체해 달라”면서 “만약 박 대통령 탄핵에 들어가면 당 지도부도 사퇴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면서도 “(오늘 의총에서) 콘클라베(교황 선출 추기경단 회의) 방식을 해서라도 비대위원장을 선출해 달라. 당내, 당외와 상관 없이 비대위원장을 뽑고, 비대위를 추인하면 지도부는 자동으로 물러나겠다”고 유화책도 함께 제시해 비박계를 흔들었다.
 
반면 탄핵안을 가결시키려면 반드시 비박계의 표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 ‘탄핵표를 구걸하지 않겠다’라든가 ‘부역자’라고 비난하며 비박계와 탄핵 정국의 주도권 경쟁을 벌여온 더불어민주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인데, 이 때문인지 추 대표는 30일 야3당 대표 회동에서 비박계를 향해 “헌법기관으로서의 마지막 책무에 흔들림 없이 (탄핵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다”고 태도를 바꿨다.
 
이 자리에 함께 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국민과 촛불의 민심, 그리고 지금까지 야3당과 함께 추진키로 한 탄핵열차에 동승해 12월 2일이 불가능하면 마지막 기회인 12월 9일까지 함께 하자”며 “탄핵열차에 동승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고 자세를 한껏 낮췄다.
 
사실 박 위원장은 민주당의 문재인계와 달리 개헌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자당 대권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가 개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는데다 자칫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그 후폭풍은 어떤 야권 정당도 피해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일단 탄핵안 처리에 모든 것을 걸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러브콜을 받은 비박계는 ‘12월 2일’이 아닌 ‘9일이 가능하다’며 탄핵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목소리를 한층 높이면서도 일각에서 언급한 ‘내부 분열’ 조짐을 진화하려는 듯 탄핵 의결 정족수는 분명히 확보할 수가 있다고 천명해 친박계엔 계속 긴장을 주는 자세를 취했다.
 
이 때문에 불안했는지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30일 YTN라디오에서 야권을 겨냥 “(박 대통령의 담화로) 탄핵이라는 것이 상당히 난감해지고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았을까”라며 “야당으로서는 약이 좀 오를 수 있다”고 발언해 야권과 비박계 간 탄핵 연대를 벌려놓으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 같은 친박계와 야권 간 기싸움의 중심에 있는 비박계는 이날 이미 임기단축을 위한 개헌에 부정적 의사를 표한 만큼 향후 정국은 ‘4월 하야’나 ‘탄핵’ 중 한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 관측되고 있는데, 비박계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현재 여당 내홍 역시 양상이 달라질 수 있어 어느 때보다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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