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매개로 反朴·反文 연대 부채질…국민의당 ‘미지근’

▲ 여야의 개헌파를 중심으로 제4지대론이 형성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장(중),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이르면 오는 2일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겠다는 발언이 나올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대선잠룡부터 중진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일부에선 벌써부터 탄핵 이후 정국 구상에 들어간 모습도 내비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원외 혹은 탈당 인사들은 물론 새누리당 비박계와 국민의당 등 친박근혜·친문재인 세력과 각을 세우고 있는 이들이 모두 모여 ‘제4지대’를 출범시킬 것인지 여부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로 나타났듯 더불어민주당이 정당지지율부터 대선 지지도까지 휩쓸고 있는 현 국면을 뒤집기 위해 탄핵 직후 이어질 대선 정국에 앞서 비박·비문 세력이 어떤 식으로든 연대하는 게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인지 그간 애써 외면해오던 문재인 전 대표 역시 이런 움직임을 의식하기 시작한 듯 점차 견제구를 던지고 있는 상황인데, 과연 제4지대가 이뤄질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허상에 그칠 것인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개헌’ 고리로 潘 포함 ‘제4지대’ 탄력 받나
 
제4지대를 형성할 가장 큰 연결고리는 우선 개헌이다.
 
이미 지난 9월 여야를 아우른 185명의 의원들이 개헌추진 모임을 결성했을 만큼 개헌에 대해선 정치권에서 폭넓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고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역설적으로 개헌파의 목소리에 한층 힘을 실어줄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어 개헌을 내세워 소속정당과 정파를 넘어선 연대를 이뤄낼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대권 경쟁에서 크게 밀려난 주요 인사들은 아예 대권 포기를 선언하고 개헌을 통해 다른 길을 모색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비박계 수장격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다.
 
김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 선언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4일 M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친박과 친문 패권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어느 세력과도 손잡을 수 있고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며 제4지대 움직임에 불을 지핀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의 연대에 대해 “가능한 일”이라고 밝힌 것은 물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대해서도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평가해 어느 쪽이든 손잡을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김 전 대표는 개헌과 관련해서도 “이 와중에 무슨 개헌이냐 비판하고 계시는데 사실 개헌이 더 중요한 문제”라며 “최순실 문제의 해결과 개헌을 같이 다뤄야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2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탄핵 절차와 관계없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여야가 합의했던 개헌특위 구성을 빨리 해야 한다”며 “개헌특위 구성은 여야가 이미 다 합의를 본 사항이다. 지금 와서 늦춘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전보다 한층 강한 어조로 개헌 추진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런 김 전 대표의 목소리에 원외 ‘개헌파’로 꼽히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같은 날 오전 MBC라디오에 출연해 ‘김 전 대표나 유승민 의원, 안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과 관련, “그분들이 희망하신다면 물론이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정 전 의장 역시 따로 질문 받지 않았음에도 김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반 총장을 스스로 언급했다는 것인데, “반기문 사무총장도 귀국하게 되면 저는 충분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발언해 현 시점에 문 전 대표와 경쟁 가능한 대선후보인 반 총장을 어떻게든 제4지대로 영입할 의지를 드러냈다.
 
반 총장의 경우 당초 친박계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내세우려고 했었던 만큼 친박계에 악재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그간 평탄했던 대선가도에 급격하게 암운이 드리워지면서 귀국 후 거취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는데, 개헌파가 반 총장에게도 문을 열어놓을 경우 반 총장도 대권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개헌파 입장에선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 전 대표를 압박할 강력한 우군을 얻게 될 수 있어 상호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 전 의장이나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등의 개헌파와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또 다른 ‘개헌파’ 인사인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도 오는 30일 반 총장 측 인사인 오장섭 전 충청향우회 총재와 일부 새누리당 의원이 주도하는 개헌 추진 모임 세미나에 ‘참석 요청을 받아’ 축사하러 갈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국민의당, 與 비박과의 연대 가능성에 ‘급제동’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김무성 전 대표이 먼저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음에도 아직 개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하지만 이렇게 속속 연대 움직임이 일고 있는 와중에도 좀처럼 연대가 성사되기 어려워 보이는 쪽은 국민의당인데, 개헌파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문 전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으면서도 정작 개헌에 대해선 분명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뿐 아니라 그동안 문 전 대표를 압박하는 차원에서라도 개헌에 긍정적 입장을 표해왔던 박지원 비대위원장 등 국민의당 내 주류 측이 아직 결성되지도 않은 제4지대의 주도권을 놓고 새누리당 비박계와 신경전을 벌인 끝에 결국 돌아서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제4지대의 앞길에 또 다른 난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28일 YTN 생방송 ‘호준석의 뉴스인’에 나와 “거듭 말하지만 분열도 해본 사람들이 하지 새누리당은 분열을 안 한다. 개헌이 친박과 비박이 분열하지 않고 다시 뭉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황교안 국무총리 체제가 되면 새누리당은 다시 친박과 비박이 개헌을 고리로 해서 뭉치지 않을까”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김 전 대표가 연대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 대해서도 “그런 움직임은 티끌만치도 없다. 이미 지난 총선의 민의가 제3지대는 국민의당이란 것”이라며 “과오가 있다면 반성하고 우리 당에서 함께 하는 건 좋지만 지금 어떤 세력과 합쳐서 또는 단일화해서 비공식적으로 흥정해 (연대) 하는 건 ‘새정치’에 어긋난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다만 국민의당이 이렇게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을 그저 비박계와의 주도권 경쟁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는데, 탄핵 정국 이후 김 전 대표가 실제 탈당을 결행해 제4지대를 형성할 것인지 여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제4지대 제안을 받아들였다가 괜히 당 전체가 김 전 대표의 장기말로만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같은 우려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김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와 동시에 개헌 카드를 꺼낸 의도에 대해 같은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하태경 의원은 28일 T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대표가 탄핵 정국 속에서도 유독 개헌을 주장하는 데 대해 “권력 없는 대통령은 하기 싫고, 권력 있는 내각 대통령을 하겠다는 식”이라고 꼬집어 김 전 대표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할 방편으로 개헌이 거론된 것임을 보여줬다.
 
또 대선경쟁에서 선두에 서 있는 문 전 대표가 개헌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일단 탄핵안이 통과된 뒤 제1야당인 민주당이 개헌에 미온적으로 나올 경우 현실적으로 개헌을 추진하기 어려워지는 김 전 대표가 결국 무작정 제4지대만 외치며 탈당하기보다는 자신처럼 문 전 대표를 저지하려는 생각을 가진 친박계와 ‘반기문 대통령-비박 총리’ 식의 타협안을 당내에 잔류한 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데 박 위원장의 입장 변화는 이런 차원에서 이뤄지게 된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대선잠룡인 안 전 대표가 어느 정도의 지지율 회복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민주당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도 밀리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개헌을 내세운 제4지대 외엔 판을 뒤집을 만한 달리 뾰족한 수도 없다는 데에 국민의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5일 “개헌론과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 개편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발언했던 문 전 대표는 28일 기자간담회에선 제4지대론과 관련해 “염치없는 일”이라며 갈수록 경계수위까지 높이고 있어 ‘개헌파’가 동상이몽 속에 제4지대를 이뤄낼 수 있을지 근심 어린 시선이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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