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뚝심이냐, KIA의 부활이냐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막바지다.

지난 6일부터 비로 밀린 경기의 처리에 들어갔다. 소위 ‘우천리그.’ 그런데도 아직까지 포스트시즌 4강 티켓을 두고 혼전 양상이 끝나지 않고 있다.

15일 현재 두산, KIA, SK 세 팀이 3.5게임차로 물려 있고, 논리적으로는 현대나 한화의 포스트시즌 탈락이나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실해 보였던 삼성도 선두 다툼에 골머리를 썩힌다.

13일 두산이 4위를 탈환했지만, 전문가들은 거의 일방적으로 안정적인 전력의 KIA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 마디로 KIA는 남은 시즌을 뒤흔들 마이너스 요인이 적다는 것이 이유.

김진우가 가세하면서 세스 그레이싱어와의 원투 펀치가 막강해졌고 이들은 9월 들어 3승을 합작했다. 특히 전반기 불안하던 ‘10억 신인’ 한기주는 중간계투로 보직 변경하면서 2년차 마무리 ‘광주댐’ 윤석민과 함께 황금 계투조를 형성했다.

선수 변동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지만, 반대로 부상 등의 사태가 발생하면 이를 융통할 경우의 수도 다양해진 셈이다. 원투 펀치에 이상이 생기면 7월까지 제2선발을 맡았던 전병두가 대신할 것이고, 계투조에 문제가 발생하면 5일 복귀한 연속 15세이브 기록의 장문석이 활약할 것이다.

1번 이용규, 3번 장성호, 4번 이재주를 축으로 형성된 타선도 마찬가지다. 이용규와 이재주는 애초에 KIA의 주력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애초의 주력들은 뭘 하고 있나. 지난달 30일 2군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이종범은 9월 들어 타율 .295타 4타점 5득점을 기록하며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심재학은 드디어 13일 경기에서 대타홈런을 넘겼고, 홍세완은 아직 희소식은 없지만 11일에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1할대에 머물러 수비용이라는 푸념을 듣고 있는 스캇 시볼도 아직 국내의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 원체는 트리플A의 3할대 타자다.

액땜은 끝났고 좋아질 일만 남은 셈이다. KIA를 가장 강력하게 압박하는 상대는 두산이다. 전반적인 전력은 KIA에 다소 미치지 못하지만 두산 팬은 돌발변수에 기대를 건다.

늘 시즌 막판에 분위기를 타며 놀라운 뚝심과 팀워크를 보여줬던 구단이고, 남은 14경기 중 8경기를 하위팀 롯데·LG와 치른다. 무엇보다 두산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은 투수 로테이션이다.

다니엘 리오스(12승)-매트 랜들(13승)-이혜천(방어율 3위)로 이어지는 제3선발까지는 여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불펜은 좋지 않다. 건재한 것은 마무리 정재훈(32세이브)뿐이고, 믿었던 김명제, 금민철, 김승회의 중간계투진이 8월 이후 줄곧 대량실점과 조기강판을 허용했다.

믿을 만한 구석은 강력한 선발진이 로테이션에 구애되지 않고 전천후로 불펜에 투입되면 해볼 만하다는 점. 변수는 누구나 알고 있는 박명환.

부상 회복 이후 계투요원으로 시험가동 중인 박명환은 8월말 이후 15일까지 11이닝 동안 방어율 3.94(6자책), 1패 1세이브 3홀드 13탈삼진이라는 썩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심각하다는 평을 들었던 두산의 타선은 그나마 살아나고 있는 편이다.

9월 들어 12경기에서 평균 5.5점을 올리며 ‘두점 베어스’, ‘FC두산’ 등의 오명은 간신히 졸업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거부를 선언한 김동주는 지난 8일 시즌 2호 홈런을 기점으로 살아나는 중이고, 안경현-장원진-홍성흔 등 한동안 부진했던 중견타자들도 꾸준하지는 않지만 몰아치기로 팀의 대량득점에 보탬이 되고 있다.

이종욱-최준석-손시헌-고영민 등 영건들의 타격도 들쑥날쑥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들이 엇박자를 내지 않고 타선이 분위기를 탈 때는 같이 터져준다는 점. 결국 KIA와 두산의 승부는 이 기사의 마감 이후인 16, 17일 주말 3연전이 첫 번째 고비다.

여기서 우세를 점하는 팀은 내친 김에 한화의 3위 자리를 넘볼 것이고, 2승1패씩 주고받는 선에서 그치면 21, 22일의 2연전으로 승부가 넘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4위권에서 SK가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전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남은 경기수와 들고 있는 패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17일이 지나면 SK의 남은 경기는 8개구단 중 가장 적은 8경기만이 남는다. 그중 절반이 3강인 삼성-현대-한화와의 경기다.

3강의 한화 몰아주기를 기대를 걸어볼 만한데 하필이면 3강 역시 막판 자리싸움이 치열한 국면으로 들어가 다들 제 코가 석자다. 게다가 9월 들어 당한 5연패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원하는 모구단의 눈치는 더 매서워질 태세다.

SK가 이런 곤궁을 겪게 된 원인은 투수진에 있다. 고정된 선발 로테이션 없이 올 시즌을 버텨왔고 남은 경기도 그럴 예정이다.

2004년의 에이스 이승호와 ‘광속구’ 엄정욱은 끝내 가세하지 못했고 후반기 투입한 외국인투수 제임스 세라노마저 어깨 염증으로 이탈한 뒤 돌아오지 못했다. SK는 LG와 함께 올 시즌 10승 투수가 없는 팀이다(LG는 9승 투수 심수창이라도 있다).

그렇다고 절망적인 상황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잔여경기 일정이 여유 있는 덕분에 사이사이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매 경기마다 총력을 다할 수 있다는 것.

제1선발 채병룡(7승)과 황금 계투 정대현(8승 10홀드)-호세 카브레라(14세이브)를 중심으로 신승현(7승), 조웅천(6승), 정우람(19홀드) 등을 총동원한다면 막판 대역전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천리그’에 접어들고도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이 확정되지 않은 것은 자못 이례적인 일이다.

13일 현재 13경기를 남긴 1위 삼성의 매직 넘버는 무려 ‘10경기.’ 사실상 카운트다운이 의미가 없다. 2위 현대와의 승차는 2경기에, 두 팀은 세 차례 맞대결이 남았다.

삼성의 막판 부진은 박진만-양준혁-진갑용 클린업트리오의 노쇠화와 제이미 브라운을 제외한 나머지 선발진이 무너진 것이 주요 원인. 때문에 팀 하리칼라와 심정수를 각각 5일과 12일, 1군 엔트리에 부랴부랴 포함시켰다.

그러나 하리칼라는 10일 두산전에서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며 강판됐고, 심정수는 13일 현재 8타수 2안타 1득점으로 제 역할을 다 못하고 있다. 심정수는 올시즌 단 1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현대가 한국시리즈 직행을 노려볼 수 있게 된 것은 삼성의 몰락 덕분이지만, 현대의 전력도 만만치는 않다. 현대에는 전준호(12승)-캘러웨이(11승)-장원삼(11승)의 선발진, 박준수(35세이브)-이현승(15홀드)-신철인(14홀드)의 불펜, 이택근(타율 2위)-정성훈(타율 12위)-송지만(12홈런) 등 올해 이변의 주역들이 모두 건재하다.

삼성은 페넌트레이스 우승보다 포스트시즌이 더 큰 걱정이란 말은 그래서 나온다. 최근 들어서는 다소 잠잠하지만, 롯데와 LG도 9월초까지만 해도 포스트시즌행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곤 했다.

특히 롯데는 4강 진출의 타깃이 될 두산과 많은 경기를 남겨두고 있어서 대역전이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두산-KIA-SK의 4강 경쟁, 삼성-현대-한화의 자리싸움, 롯데-LG의 분투.

어느 팀이 독주하지도 않고 어느 팀이 시즌을 미리 포기하지 않는 막판 구도는 올시즌 프로야구를 한층 재미있게 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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