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힘(Seoul Power). 100만 시위대가 대통령을 압박했다.” 홍콩의 유력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11. 12.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송곳 하나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서울 시내를 꽉 채운 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 리더십은 국정수행 역량과 윤리적 정당성을 두 축으로 한다. 국정수행 능력은 논외로 하고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아니한 일개 ‘강남 아줌마’에게 위탁했다는 의혹만으로도 박대통령은 도덕적 정당성에 치명상을 당했다. 그 참혹한 결과가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5%다.
 
청와대가 “대통령으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지만, 성난 시민들은 대통령의 즉각적 하야를 요청하고 있다. 야당 지도자들도 지난 주말 촛불집회를 계기로 시민들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하야는 대한민국의 헌정 중단을 의미한다. 국정지지율 5%와 촛불 100만 개가 모이면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는 불편한 선례를 만들 수 있기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하물며 60일 이내에 후임 대통령을 뽑도록 규정한 현행 헌법 하에서 향후 벌어질 정치적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헌법이 정하는 틀 안에서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정국 수습은 국회의 몫이다. 김종필 전 총리는 5000만 명이 요청해도 박대통령이 퇴진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대통령의 ‘결단’만 압박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 주어진 헌법적 절차에 따라 지금의 국정 혼란을 조속히 수습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바로 탄핵절차다.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 결정을 함으로써 파면된다(헌법 제65조 ①, 제113조 ①).
 
그런데 거대 야당은 탄핵 절차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이른바 3대 불가론. 즉, 탄핵에 들어가더라도 야권 국회의원이 171명인 관계로 소추의결 정족수 200명을 채우기 어렵고, 탄핵 소추가 되면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는데 황교안 총리가 직무대행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보수적인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법조인으로서 납득하기 어렵다. 여당 내 비박계에서 조차 이미 탄핵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 야권이 추천하는 국무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한 뒤 탄핵 소추절차에 들어가면 된다는 점, 그리고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검찰이나 특검이 수사한 결과를 비롯해서 증거를 바탕으로 탄핵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야당의 주장은 대안 없는 당리당략적 접근으로 읽힌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다. 탄핵심판은 궁극적으로 헌법의 수호에 기여하는 절차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 탄핵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뇌물수수, 부정부패, 국가의 이익을 명백히 해하는 행위가 전형적인 예라고 밝혔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하며 원칙과 법치를 강조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비극이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최순실 사건과 관련하여 박대통령의 행위에 문제가 있다면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통해 밝히고, 죄가 있다면 향후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치적 책임은 헌법이 정한 탄핵절차를 거치는 것이 합당하다.
 
이번 촛불집회는 현행 헌법을 잉태한 1987년 6월 항쟁 때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그런 맥락에서 시민들은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탄핵함과 동시에 87년 체제의 종말을 선언했다. 궁극적으로 20세기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21세기 대한민국의 몸에 맞는 제7공화국 헌법을 제정하라는 명령을 한 것이다. 국회는 탄핵절차를 통해 현행 헌법을 살아 숨 쉬게 하라. 동시에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7공화국 헌법 만들기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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