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이정현-민주당 추미애 ‘독단’에 黨 ‘휘청’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각자 자승자박 행보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란 전대미문의 풍파로 정치권이 요동치는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당 대표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에서 리더십 위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정국 수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선 이정현 대표가 연일 계속되는 당내 비박계의 사퇴 압박에도 조기 전대 등을 꺼내들고 즉각적인 사퇴 가능성을 일축한 데 이어 오히려 자신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인사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맹공을 퍼붓기 시작해 당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추미애 대표가 지난 14일 돌연 박근혜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당내 반발 끝에 만 하루도 안 돼서 스스로 철회의사를 밝히는 등 ‘갈팡질팡’ 행보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이처럼 여야 거대 양당에서 당 대표들이 당을 안정시키기는커녕 당의 불안요소로 꼽히면서 현 지도부에 반감을 가진 계파의 목소리도 이를 계기로 점점 높아지고 있어 각 당이 제대로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우려하는 시선도 늘어나고 있다.
 
◆ 與 비박, ‘별도 지도부’ 구성…이정현, ‘식물 대표’ 현실화
 
당내외의 사퇴 압박에도 일절 불응하고 있는 현 이정현 체제를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듯 15일 비박계 의원들이 사실상 별개 지도부를 구성하고 나서면서 새누리당 내 파열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에서는 이날 ‘비상시국위원회 준비위’를 통해 현 친박 지도부의 ‘최고위원회’에 비견될 만한 ‘비상시국위원회’ 구성을 본격화해 김무성 전 대표를 포함 유승민, 심재철, 정병국, 나경원, 주호영, 강석호, 김재경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12명을 위원회를 이끌 대표자로 확정했다.
 
비박계 황영철 의원의 주도 하에 준비되고 있는 이 위원회는 일종의 비박계 지도부로 오는 18일 총회를 열어 정식 출범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박계 수장격인 김 전 대표는 이날 친박 지도부와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아예 못 박았는데, 그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격차해소와 국민통합의 경제교실’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로서는 이정현 대표 체제의 사퇴가 순리”라며 “친박 중심으로 돼 있는 현 지도체제가 책임지고 사퇴하기 전에는 대화는 아무 의미 없다”고 친박 지도부에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김 전 대표는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계파 투쟁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것을 우려했는지 “제가 당 대표로 있을 때 계파를 만들려면 제일 큰 계파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계파를 만들지 않았다”며 “새누리당 계파는 친박만 있다”고 강조해 ‘진영 논리’에 갇힌 친박계와 차별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그간 가급적 충돌을 자제하던 이 대표도 더 이상 밀릴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자신의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이준석 전 비대위원 등 일부 원외 당협위원장과 여의도 당사에서 간담회를 갖고 “지금 최소한의 시간을 달라고 하는 것 아니냐. 제가 결심했고, (사퇴) 날짜까지 박았잖나”라며 “자꾸 꼼수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또 그는 당내 대권주자들까지 나서서 자신에게 사퇴 압박을 가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는데 “우리 당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을 보니 다 합쳐도 9%도 안 된다. 주요 대선주자 10명 명단에도 못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면서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이렇게 해서야 되겠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대표는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비박계 대권잠룡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도정에 매달려도 부족한 시간인데 ‘이정현 사퇴하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있다”며 “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이른바 비박계 지도부라 할 수 있는 비상시국위원회가 이날 주요 구성원 명단을 확정한 데 대해서도 “어떤 공인 단체라기보다 초선이나 재선, 중진, 당원 모임 등 여러 모임 중 하나”라며 “당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단체 말고도 많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며 자신에게 사퇴할 것을 종용하면서도 아직 비박계에서 추진하는 ‘비상시국위원회’ 등과 같은 별개의 움직임에 동참하지는 않고 있는 정진석 원내대표를 향해선 “내가 로드맵을 발표하면 최고위에 들어오겠다고 했다”며 “국민 앞에서 그 말을 했으니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내심 지도부 복귀 기대를 드러냈다.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원내 대책 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하지만 정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제가 최고위에 복귀해서 문제 해결이 된다면 백 번, 천 번인들 왜 안 하겠나.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며 지난 4일 이후 이어온 최고위 보이콧 입장을 여전히 고수해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미 정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도 박명재 사무총장이 ‘(친·비박 간) 중간 역할을 해달라’며 최고위로 복귀할 것을 설득하려 하자 “나 좀 그만두게 해달라. 붙잡지 말라”고 하다가 결국 고성이 오가는 언쟁까지 벌인 바 있어 이 대표가 어떤 발언을 하든 입장을 번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이날 이 대표가 마련한 당내 3선 의원 간담회에는 24명의 참석 대상자 중 오로지 안상수 의원만 참석하고 심지어 친박계에 속하는 윤상현, 유재중, 조원진 의원 등도 불참해 전날 정 원내대표가 주재한 3선 의원 오찬 회동에 12명의 의원이 참석했었던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는데, 이미 ‘식물 대표’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새삼 굴욕이었는지 당초 공개될 예정이던 회의도 비공개로 전환해버렸다.

◆ 추미애 ‘靑 영수회담 번복’, 갈팡질팡 행보 빈축
 
이처럼 여당 대표가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떨어져 지도부가 유명무실해진 가운데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리더십 위기 조짐이 보이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상대적으로 야권에 유리한 정국임에도 차기 대선을 의식하다보니 지극히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현 국면을 장기화시키는 데에만 주력하던 민주당 지도부는 그동안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 제안 수용 의사를 밝히고 특검을 비롯한 검찰 수사에도 응할 뜻을 피력했음에도 총리 권한 범위 등을 문제 삼으면서 영수회담 제안에도 불응한 채 청와대와 신경전을 지속해왔다.
 
그러던 와중에 돌연 지난 14일 오전 추미애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서 정국 수습에 나서겠다며 다른 야당과는 물론 당내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독단적으로 청와대에 박 대통령과의 양자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야권 외에도 여당 내 비박계 등 곳곳에서 가해온 퇴진 압박으로 수세에 몰려있던 청와대는 추 대표가 내민 뜻밖의 제안에 숨통이 트이면서 즉각 수용 의사를 밝혔으나 이 같은 중차대한 사안을 공론화 과정조차 거치지 않은 채 결정한 추 대표에 대해 당일 의총에서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자 추 대표는 만 하루도 안 돼 자신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철회했다.
 
추 대표는 지난 9월에도 당내 의견 수렴도 하지 않은 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추석 전 인사차 예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가 소속의원들과 당 지지층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고 다시 예방 계획을 취소하는 오락가락 행보로 취임 보름 만에 리더십에 손상을 입은 바 있어 이번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서도 상당히 경솔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에서도 하루도 안 돼 발언을 뒤집는 추 대표의 행보에 당장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으며 당혹감을 드러낸 것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비주류 이종걸 의원이 15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스스로 사퇴했다면 민주당에 대한 실책을 완화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며 “이 엄중한 시기에 한 번 더 실책을 범한다면 국민들에게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로 대표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한편 추 대표의 갑작스런 청와대 영수회담 제안 소식에 경악하며 취소를 요구했던 국민의당, 정의당 등에서도 추 대표를 향한 신뢰가 예전만 못한 듯하지만 중대한 시국에 야권 공조를 깰 수는 없었기 때문인지 일단 추 대표의 영수회담 철회 결정에 한숨 돌리며 환영 입장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동안 강경 대응에 미온적이던 민주당이 추 대표의 돌출행동을 계기로 오히려 전날 의총에서 하야와 탄핵과 같은 강경론을 당론으로 분명히 정하게 돼 이미 하야와 탄핵을 내걸고 있는 국민의당, 정의당과 발을 맞춰 나가기 수월해졌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추 대표의 행동이 개인적 리더십 차원에선 타격이지만 당에 있어선 일종의 ‘전화위복’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대표가 겪고 있는 리더십 위기의 형태와 당내 처지가 일직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어려운 정도인 만큼 현재 한층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여당 지도부가 어떻게 난국을 돌파할 것인지에 보다 많은 이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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