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계, ‘요지부동’ 이정현에 결국 ‘청와대’ 겨눠

▲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탈당할 것을 요구해 파장이 일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난 4·13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8·9전당대회에서 건재를 과시했던 새누리당 친박계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도 여전히 자리를 고수한 채 비박계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날로 악화되는 여론과 추락하는 당 지지율로 인해 당내 비박계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인 이정현 대표도 이번 사태에 동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연일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지만 이 대표는 오히려 위기 상황에 당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이유로 비박계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어 상황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거듭된 퇴진 압박에도 박 대통령의 복심인 이 대표가 여전히 버티기로 일관하자 결국 비박계 수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가 그간 신중론을 견지해 오던 자세를 버리고, 아예 박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해 사태 책임론을 놓고 이어지던 당내 갈등이 청와대로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최순실게이트가 현재도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인 만큼 직접적인 박 대통령과의 연루 여부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지만 비박계에서 더 이상 당 대표 사퇴 정도가 아니라 박 대통령에게 직접 탈당을 요구했다는 것은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집권여당이란 타이틀을 뗄망정 이제는 박 대통령과 선을 긋겠다는 뜻이어서 향후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비박계, 朴 대통령 탈당 요구 본격화
 
지난 4일 남경필 경기지사가 대통령에게 2선 후퇴할 것을 요구했던 것 외에는 집권여당 성격상 야권보다 강경하게 나가기를 주저했었던 새누리당에서도 끝내 박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내 다른 대권잠룡들보다 대체로 한층 완화된 입장을 보여 왔던 김무성 전 대표는 7일 현 지도부 내 유일한 비박계 최고위원인 강석호 의원이 이 대표의 사퇴 거부에 맞서 최고위원직을 버리고 나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헌법의 최종 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며 국정을 운영했다”며 “대통령께서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당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갖고 당적을 버려야 한다”고 박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그는 이어 “헌법가치를 위반한 대통령은 탄핵의 길로 가는 게 헌법정신”이라면서도 “국가적으로 큰 충격이고 국민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국민과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해 거국중립내각으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현 상황에서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표는 “야당에서 이미 전면 거부하는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대다수의 국민과 정치권 모두가 요구하는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즉각 수용하고 총리 추천권을 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압박했다.
 
또 그는 강석호 최고위원의 이날 사퇴로 완전히 친박 일색이 된 ‘이정현 지도부’를 향해서도 “전 더 이상 현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을 위한 충정을 갖고 얘기하는 것을 당권싸움으로 몰고 가는 이런 사람들과는 더 이상 대화할 의욕이 없어진다”고 각을 세웠다.
 
이처럼 비박계 수장격인 김 전 대표가 이제는 친박 지도부 뿐 아니라 박 대통령까지 본격 표적으로 삼자 또 다른 비박계 대권주자인 오세훈 전 시장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야당과의 합의를 통한 거국중립내각 구성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중립내각이 성립되기 위해선 대통령의 탈당이 필요하다”고 박 대통령 탈당론에 힘을 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오 전 시장은 박 대통령에 의해 선임된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해서도 “지명을 철회하고 여야 영수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며 “야당의 수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김병준 총리)에 집착하며 시간을 끄는 건 시급한 사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김 전 대표와 동일한 입장을 내놨다.
 
이렇듯 김 전 대표를 필두로 점점 박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당내로부터 터져 나오자 이전부터 줄곧 박 대통령 탈당을 촉구해온 국민의당에서도 긍정적 반응을 내놨는데,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한광옥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 예방 직전 김 전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을 접한 뒤 “무대(김무성 전 대표 별칭)가 오늘 세게 나갔네”라며 “최근 정치하면서 제일 옳은 말을 했다”고 공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친박 지도부, ‘대통령 탈당 요구’ 반대…비박에 맞불 공세도
 
안 그래도 지도부에 사퇴를 요구해오던 비박계가 이번엔 아예 박 대통령까지 탈당하라며 초강수를 두자 이정현 체제는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는데,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 직후 기자들로부터 김 전 대표가 선언한 ‘박 대통령 탈당’ 요구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지자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저는 반대한다”고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은 최순실 사태를 내세워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김무성 전 대표를 향해 맞불 기자회견을 열고 맹공을 퍼부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한 발 더 나아가 같은 당 이장우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에 탈당을 요구한 김 전 대표를 겨냥해 “2014년, 15년 최순실과 차은택이 활개치고 다니던 시절 당 대표가 누구였느냐. 김무성 대표가 아니었느냐”면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우리 당 국회의원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최고위원은 이어 “김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본 적은 없지만, 대통령 옆에는 늘 최순실이 있다는 걸 다 알았다. 그걸 몰랐다는 건 거짓말’이라 했는데 그럼 집권 여당 대표 시절 알고도 모른 척 했다는 뜻이냐”며 “‘강 건너 불구경 하듯’한 언사야 말로 무능과 무책임 정치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 전 대표의 언행이나 처신을 보면 집권 여당 대표를 역임한 당의 원로이자 대권 후보군 중 한 분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며 “제18대 대선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이었으며 직전 새누리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시고 자숙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자제를 촉구했다.

이 뿐 아니라 친박 지도부는 최고위 직후 김성원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조원진·이장우·김광림·최연혜·유창수·방귀희 최고위원은 김무성 전 대표의 대통령 탈당 요구에 대해서 분명히 반대 입장을 밝힌다고 결의했다”며 적극 저지할 의사를 드러내 친박과 비박 양측 간 충돌은 보다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김 전 대표의 표적이 된 청와대에서도 이날 박 대통령의 거취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내놓는 강경한 요구를 단번에 일축하고 나섰는데, “두 차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담화 후에도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우리도 잘 알고 있다”면서도 “박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책임자로 국가안보 등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청와대 측은 일각에서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등을 요구하는 데 대해선 도리어 “개헌도 안 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모든 것에서 물러나서 일할 수 있는 그런 것(법적 근거)은 없는 것 아니겠나”라며 “현행법상에 2선 후퇴란 용어가 있는 건 아니잖나”라고 지적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데에는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골이 깊어진 비박계가 이번 사태를 구실로 당 주도권을 잡게 될 경우 박 대통령과 친박계 모두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재와 같은 들끓는 비난 여론이 오래 가지 않을 거란 판단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10월 31일부터 지난 4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28명을 대상으로 유·무선전화 임의걸기 전화면접, 스마트폰앱, 자동응답 혼용 방식을 통해 조사돼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3일 10.9%로 최저점을 찍은 뒤 4일 두 번째 대국민담화 이후 12.7%로 소폭 반등함에 따라 장차 고정 지지층이 재결집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청와대 측은 당초 의도한 대로 여야 지도부와 영수회담이 계획대로 성사된다면 이를 전기로 정권에 부정적인 여론을 다소 진정시키고 국정운영 정상화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다만 야권이 박 대통령의 탈당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어 예정대로 회동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김 전 대표가 이날 과감하게 박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한 것도 앞서 지난 주말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과 정국 수습책을 논의한 뒤 결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야권이 이처럼 이미 비박계와 손을 잡고 있는 이상 정국이 청와대의 의도대로 흘러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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