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누드모델”

지칠대로 지친 피로한 문체 속에서 육중한 무게감으로 자칫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를 재채색, 보다 안정적인 형태릐 도발성을 강조했던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 "권태"는 그 독특한 서술형 전개 탓에 소설이라는 장르를 떠나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듯 보였는데, 현재 공연중인 "권태"의 연극화인 "누드모델"은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설정'을 보다 연극적인 형태로 극복하여 전혀 새로운 종류의 모라비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복잡한 알레고리와 어두침침한 무드를 최근 연극에서 유행이 되고 있는 '코믹' 요소의 가미로 긴장의 흐름을 원활하게 돕고 있고, 섬세한 음향효과와 대담하게 쓰이고 있는 조명의 톤으로 인해 하나의 완성된 무드 피스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 그리고 다층적인 양상으로 전개되는 모라비아의 플롯을 2인극 형식으로 압축시켜, 두 사람 - 번안버젼으로는 '태호'와 '진아' - 의 의사소통 과정과 감정의 소통 과정을 찬찬하게 살펴보이고 있다. 또한 "누드모델"은 얼핏 선정주의적이고 도발적인 사상을 터뜨리고는 이를 책임지지 못하는, 1990년대 초중반에 유행하던 '노출 연극'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지만, 선정적 요소를 다루는 시선 자체에서 '억제시킨 자세'보다는 '자연스러운 입장'을 고수하므로써 작품 자체의 정직한 방향성에 대해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분명히 지적 고통이 그 주제인 상황에서도 정작 극 자체는 인간의 '감정곡선'에 치중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킴으로써, 전체적으로 원작이 지닌 난해함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보다 대중적인 형태로서의 관객에 대한 접근을 꾀하고 있는 작품이다. 절대적인 '무기력'에 빠져버린 한 화가와 그에게 자신의 몸을 그려달라 요청하고는 그와 육체적 관계까지 맺어버리는, 독특한 사고방식을 지닌 한 여성. 이들 둘이 펼치는 소유와 욕망, 그리고 '권태'에의 테마는 '권태'를 넘어서 '절망'에 빠져있는 많은 한국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장소: 까망소극장, 일시: 2004.03.1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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