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靑에 한 목소리 해명 촉구…청와대發 개헌 발의도 차질 불가피

▲ 25일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포함한 청와대 문건들을 자신의 컴퓨터에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논의를 공식화하며 ‘우병우 의혹’과 ‘최순실 게이트’에 매몰되어 있던 정치권 분위기를 삽시간에 전환시키는 듯했지만 단 하루만인 25일 최순실 씨가 청와대 연설문을 사전열람한 정황이 포착돼 파문이 일면서 또 다시 정국이 ‘최순실 게이트’로 들끓고 있다.
 
이를 최초로 단독 보도했던 종합편성채널 JTBC 방송내용에 따르면 과거 ‘드레스덴 구상’ 연설을 포함한 44개의 연설문을 최 씨가 대통령이 공개 연설하기 이전부터 사실상 사전에 열람했으며 이들 취재진은 최 씨의 국내 사무실 중 한 곳에서 미처 파기되지 못한 컴퓨터 파일들을 확보함으로써 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 연설문마다 새로 첨부된 붉은 글씨로 표시된 ‘수정 부분’은 실제 공개 연설에 대부분 반영되어 있어 연설문 사전 수정 논란까지 일고 있다.
 
특히 동 방송사는 최 씨가 운영하는 독일 법인인 ‘더 블루K’의 대표이자 최 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 씨가 “최순실 씨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고 발언했던 사실을 인용 보도했던 적도 있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21일 국정감사장에서 고 씨의 발언에 대해 “봉건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로 다시금 청와대에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현재까지 확보된 파일 중에는 44개의 박 대통령 연설문 뿐 아니라 과거 박 대통령의 유세문, 허태열 비서실장 교체 문제가 담긴 국무회의 발언 등 200개가량의 파일도 함께 입수된 것으로 알려져 고위 공직자도 아닌 민간인의 사무실로 기밀에 가까운 청와대의 주요 파일들이 유출된 경위를 놓고도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관측된다.
 
◆ 野, ‘최순실 게이트-개헌 주도권’ 연계 파상공세
 
연일 ‘송민순 회고록’과 ‘최순실 게이트’ 공방으로 난타전을 이어가던 정치권은 전날 갑작스런 개헌 논의 공론화로 분위기가 급반전되나 싶더니 이번엔 최순실 씨의 청와대 연설문 사전열람 파문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를 접하자 핵심 이슈가 다시 ‘최순실 게이트’로 회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날 박 대통령이 돌연 개헌 논의 방침을 공표했던 의도는 사실 ‘최순실 게이트를 은폐하기 위한 시도’라며 의심의 눈길로 바라봤던 야권은 25일 최 씨의 연설문 관련 논란이 일어나자 이 같은 자신들의 의심을 확증할 근거로 내세우며 즉각 청와대를 겨냥한 공세에 박차를 가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파문과 관련 “최 씨의 빨간 펜에 국정운영이 좌우됐다는 사실을 듣고 ‘이게 제대로 된 나라고, 정부인가’ 국민은 참담함을 토로하고 있다”며 “청와대와 정부 국정운영에 비선실세가 판을 치고 분탕질 해대는 지금의 박근혜 정부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추 대표는 이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최순실 게이트의 의혹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통령 뿐”이라며 “최 씨를 당장 소환해 국가 기강을 바로 잡는 게 지금 대통령이 국민에게 해야 할 도리”라고 해외체류 중인 최 씨의 국내 강제소환을 촉구했다.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개헌 관련 논의는 추후에 할것을 밝히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또 그는 개헌에 대해서도 “최순실 게이트를 덮으려는 순실개헌이자 지지도가 바닥에 떨어진 정권의 교체를 피하려는 정권연장음모로 나온 개헌”이라며 “국가대계를 위한 개헌이 한 정권의 위기모면과 정권연장의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우상호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파문과 관련 “박 대통령의 연설문, 국무회의 발언, 심지어 인사 내용까지 최씨 컴퓨터에 담겨있었다고 하는데 우린 그동안 박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게 아니라 최씨의 연설을 들은 것이냐”면서 “현직 대통령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박 대통령이 직접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제는 박 대통령이 수사대상”이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 원내대표는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윤호중 정책위의장에게 물었더니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이 업무컴퓨터를 갖고 이메일을 외부로 보내면 국정원에 바로 걸린다고 한다. 대통령이 직접 보낸 게 아니고서야 국정원이 모르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직접 연설문을 보냈을 가능성까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박 대통령이 직접 진상을 규명하고 사죄해야 하며 특별감찰관, 민정수석 등이 모두 검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어서 일단 검찰이 수사주체가 될 수는 없는 만큼 ‘특검 발의’를 의논해보자고 주장했다.
 
이 뿐 아니라 우 원내대표는 청와대에서 개헌안의 정부 발의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개헌 논의는 박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 때문에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는 문제인식이 생긴 것”이라며 “자기 때문에 개헌 논의가 불거졌는데 자기가 발의하는 게 제정신이냐”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이 개헌을 고민한다면, 진정성 있는 제안이라면 사전에 여야 당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3부 요인이 모인 자리에서 의논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는 게 정말 충격”이라며 “청와대가 주도하는 어떤 형태의 개헌 논의에도 협조·협력할 생각이 없다”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못박았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과 달리 개헌 논의에 동참할 의사를 내비쳤던 국민의당조차 이번 파문과 관련해선 청와대에 날을 세웠다.
 
대권잠룡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 씨의 국정농단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며 “박 대통령은 전면에 나서서 진실을 밝히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청와대를 압박했다.

안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제안한 것과 관련해서도 “최 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개헌 제안의 진실성이 더 의심받게 됐다”며 “모든 개헌 논의에서 청와대는 손 떼야 한다”고 요구했다.
 
같은 당 박지원 비대위원장 역시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를 하든, 국정조사를 하든, 특검하든 대통령에겐 공소권이 정지돼 있기 때문에 (조사에) 출석할 수 없다.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자백하라”며 “(청와대는) 공식 반응도 못 내고 있다. 대통령만 쳐다보니 유일하게 자백할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박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그러면서도 박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제안한 정략적인 개헌 논의에 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던 민주당을 겨냥해선 “문재인 전 대표가 반대하니까 추미애 대표가 반대하는 것”이라고 꼬집은 뒤 안 전 대표가 전날 개헌에 반대 의사를 드러낸 것에 대해서도 “어제 저와 만나 한 시간 정도 얘기하니 개헌 전 할 일을 얘기했을 뿐이지 개헌 반대하는 건 아니란 입장”이라고 말해 여전히 개헌 논의에 응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다만 그는 청와대가 개헌 논의를 박 대통령의 주도로 해나가겠다고 밝힌 데 대해선 “대통령은 개헌에 개입하지 말라”라며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새누리당 당적을 버려라”라고 새누리당 탈당 요구로 맞불을 놨다.
 
◆ 與 “朴 대통령, 직접 해명해야…특검 도입도 필요”

 
한편 새누리당도 예기치 못한 악재에 당혹스러워 하는 상황인데,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내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연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차마 머리를 들 수가 없다. 청와대 사람들 누구도 사실 확인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보도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며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소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야권과 동일한 입장을 내놨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 역시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파문과 관련 “어이가 없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국기문란”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선 청와대가 묵묵부답할 게 아니라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나 의원과 같은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은 아예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까지 열고 “이 사태를 대처함에 있어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회는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을 즉각 실시하라”라며 “(특검) 제의에 대해 당 지도부가 진지하게 논의해서 새누리당이 앞서가야 한다”고 국민의당처럼 특검 발의 의사를 피력했다.
 
▲ 비박계인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또 다른 비박계인 하태경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청와대 핵심부가 최순실과 연결돼 있다는 물증자료가 나온 이상 단순 검찰 수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회는 특검을 발동해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을 엄정 수사해야 한다”고 김 의원의 특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시시각각 청와대를 향한 압박을 가중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일단 신중히 따져 보고 나서야 한다는 입장도 내놓고 있는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경위라든가 내용을 잘 모른다”면서도 “연유와 경위를 먼저 정확하게 들어보고 그런 부분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이런 부분을 잘 따져봐야겠다. 지금은 청와대로부터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을 듣는 게 최우선”이라고 자제를 주문했다.
 
마찬가지로 친박계 김진태 의원도 이날 오전 백남기 부검 관련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로부터 이번 파문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새누리당이 최순실 씨를 보호하거나 그럴 이유는 전혀 없다”며 “현재 사실을 밝히기 위한 검찰 수사도 이뤄지고 있다. 사실이 밝혀지는 대로 대응하면 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이날 “다양한 경로로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만큼 지켜봐 달라”는 반응만 내놨을 뿐 여전히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어 사태는 일파만파 확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