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서 ‘임기 내 개헌’ 천명…與野 표정 엇갈려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 도중 개헌 논의 의사를 밝히며 임기 내에 완수할 것임을 강조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 도중 돌연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개헌’ 카드를 뽑아들어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그간 여당 내에서조차 불거지던 개헌 주장에 대해서도 침묵한 채 사실상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해오던 박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전격 입장을 선회한 배경을 놓고 야권에선 당장 ‘최순실 게이트’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이 아니냐는 비판을 쏟아냈지만 예상치 못한 제안에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반면 그동안 친박계와 날을 세우며 박 대통령과도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던 여당 내 비박계 의원들은 생각지 못한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부분 환영 의사를 나타내면서 지금껏 보여 온 당 분열 조짐까지 다시 봉합되는 분위기다.

다만 청와대에선 현 5년 단임의 대통령중심제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드러내면서도 개헌 논의를 주도할 주체는 어디까지나 박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속내를 내비쳐 개헌을 고리로 야권에 빼앗긴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 레임덕을 막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朴 대통령 “87년 체제 극복하고 2017년 체제 구상할 때”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가진 취임 후 4번째 시정연설에서 “이제는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라며 “저는 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 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을 위한 실무적 준비를 해나가겠다”고 정치권의 개헌 주장을 전격 수용했다.
 
그는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를 “과거 민주화 시대에는 적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몸에 맞지 않는 옷”으로 규정한 뒤 “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고 대외적으로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개헌 추진 의사를 밝히게 된 배경과 관련해 “엄중한 안보·경제 상황과 시급한 민생현안 과제들에 집중하기 위해 헌법 개정 논의를 미뤄왔다. 또 국민 공감대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국론이 분열되고 더 혼란을 겪을 수 있기에 개헌 논의 자체를 자제해주실 것을 부탁드려왔다”면서도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우리가 처한 한계를 어떻게든 큰 틀에서 풀어야 하고 저의 공약사항이기도 한 개헌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박 대통령은 지금이 개헌 논의의 적기인 이유로 “개헌안을 의결해야 할 국회의원 대부분이 개헌에 공감하고 있다.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없는 20대 국회의 여야 구도도 개헌을 논의하기에 좋은 토양이고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적기”라며 “국회 밖에서도 각계각층에서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국민들의 약 70%가 개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그는 개헌 시한을 자신의 임기 내에 완수하겠다고 공언했는데,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서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며 “국회도 헌법 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개헌의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4번째로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이날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후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은 오전 브리핑을 통해 지난 6월 초부터 이미 개헌에 대한 방향설정 등에 대한 수석들 간 논의가 있어왔음을 밝히면서 “최종적인 개헌 보고서는 추석연휴 기간 중 검토해볼 수 있도록 연휴 전에 대통령에게 상세히 보고했고 추석 연휴 마지막 무렵에 대통령이 개헌 준비를 지시했다”고 이번 개헌 공식화까지의 과정에 대해 입을 열었다.
 
특히 그는 개헌이 자칫 정치권을 뒤흔들고 레임덕을 불러올 수도 있는 특급 사항인 만큼 사전 누설 방지에 각별히 신경 썼던 점을 강조했는데, 지난 10일 자신이 ‘지금은 개헌 얘기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게 청와대의 분명한 방침’이라고 말해 앞서 개헌론을 꺼냈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무안하게 만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음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김 수석은 개헌의 형태에 대해선 “당장에 4년 중임제냐 내각책임제냐 분권형이냐 이런 건 상정하고 있지 않다”며 “어떤 국가구조를 채택할지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의원들 간 많은 토론과 논의 끝에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떤 정치체제를 대통령이 생각한다고 해도 무조건 관철될 수도 없는 구조”라고 말해 일단 어떤 정치체제든 채택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김 수석은 개헌 논의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주도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는데, 임기 내에 개헌을 완수하겠다는 방침 때문인지 “개헌안이 논의될 때 지지부진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진척이 안 되면 대통령이 보다 많은 의사를 표현하고, 추진 의지를 밝힘으로써 개헌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며 “국회 논의 과정을 봐가면서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헌법개정안 제안권자로서 정부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갑작스러운 박 대통령의 개헌 공론화에 대해 야권에서 ‘최순실 의혹 덮기용’이란 비판이 나올 것을 의식했는지 “개헌은 하루아침에 제안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개헌을 제안한다고 검찰 수사가 달라질 수도 없는 것 아니냐”라며 “대통령의 말씀은 개헌 논의의 물꼬를 트자는 것이고, 논의를 통해 국가미래를 함께 설계하자는 것인데, 현재의 (최순실 의혹 등) 현안과 결부시켜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 朴 대통령 제안에 3당 3색 이견 차
 
이 같은 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개헌 논의 제안을 받은 정치권은 그동안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해왔으면서도 막상 이런 상황에 이르자 분명한 온도차를 보였는데, 새누리당은 계파를 막론하고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여태 가장 강력히 개헌 주장을 피력해온 더불어민주당은 정작 반대 입장을 드러냈으며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인지 박 대통령의 저의를 의심하면서도 일단 논의에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놓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새누리당은 김성원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박 대통령의 이날 개헌 논의 제안과 관련 “국회가 이번 정기국회에서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시기적으로도 매우 적절하다”며 “야당도 정파적 시각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개헌논의에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긍정적 반응을 내놨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이날 의총 직후 기자들에게 “대통령 시정연설을 통해 정부에서도 (개헌) 필요성을 인정하고 정부와 국회가 함께 논의를 이어가자는 공감대를 확립했다”며 “300명 국회의원 중 200명 이상이 개헌에 동의하고 있다”고 개헌안이 의결되기 위한 요건인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도 충족할 수 있음을 자신했다.
 
다만 그는 박 대통령의 전격적 개헌 제안으로 정국 주도권을 정부여당 측에 빼앗길 것을 우려한 야권이 반대할 가능성을 의식했는지 “20대 국회 들어서 개헌 논의는 국회의장과 야당 측에서 먼저 선창하고 요구했던 주요 의제”라며 “야당이 거둬들이면 개헌 논의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가는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에 반해 야권은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놓고 분열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 이날 윤관석 대변인 브리핑에서 “최순실, 우병우 등 측근 비리를 덮으려는 정략적인 개헌, 국면전환용 개헌 제안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며 “개헌논의를 제안해 모든 것을 덮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추미애 당 대표 역시 이날 국회에서 긴급최고위 직후 기자들을 만나 “마치 정권연장을 위한 개헌 음모처럼 비친다”라며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청와대 입장을 꼬집어 “대통령은 국정과 민생에 전념하고 개헌 논의는 국회에 맡겨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제3당인 국민의당에서도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이날 박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기자들에게 “다분히 우병우, 최순실 등 논란을 블랙홀로 만들려는 정략적인 면도 숨어있는 게 아니냐”면서 “개헌을 임기 초에 했다면 가능했지만 대선 1년을 앞두고 제안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의도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박 위원장은 “우리 당 내에서도 개헌특위를 구성하자고 다수가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논의해보겠다”고 우선 제안 수용 의사는 내비쳐 민주당과는 상반된 행보를 보였는데, ‘개헌’이란 정국을 뒤흔들 사안에 대해 민주당과 똑같은 입장을 취하다가는 국민의당의 존재감이 자칫 없어질 수도 있다는 고심 끝에 내놓은 입장인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박 대통령의 개헌 논의 제안에 대해 김영수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께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 개헌 논의의 물꼬를 터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국민과 함께 하는 ‘상향식 개헌’이 될 수 있도록 개헌 특위 구성 등에 대해 여야가 협력해서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밝혀 ‘대통령 주도’를 내세운 청와대의 입장을 사실상 일축했는데, 이처럼 벌써부터 개헌 주도권을 놓고도 충돌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개헌이 또 다른 정쟁 대상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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