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할수록 깊어지는 서민 한숨, 다음 정권에 ‘재앙’ 떠넘기나

▲ 최근 수년간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빚내서 집사라’로 요약될 수 있다. LTV·DTI 완화를 비롯, 기준금리도 역대 최저치를 잇달아 경신함에 따라 가계부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고승은 기자] 지난 2014년 7월, 친박계 실세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한 뒤 줄곧 정부는 ‘빚내서 집사라’ 식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을 펴왔다. 최 의원은 취임하자마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대폭 완화했다.
 
또 최경환 의원이 부총리로 재임하는 기간 한국은행도 장단 맞추듯 기준금리를 계속 떨어뜨렸다. 2014년 8월·10월, 2015년 3월·6월 등 총 4차례 0.25%p씩 떨어뜨렸다. 한국은행은 올해 6월 또 0.25%p를 내려 기준금리는 1.25%까지 떨어지는 등, 사상 최저금리를 잇달아 경신하고 있다.
 
◆ ‘브레이크’ 없는 가계부채, 정부는 “관리 가능” 답변만 반복하더니
 
지난 2년여간 기준금리를 제로금리에 가깝게 떨어뜨리는 동안 가계부채는 무섭게 늘기 시작했다. 최경환 경제팀이 들어서기 이전과 이후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경환 경제팀이 들어서기 전인 2012년 말부터 2014년 7월까지(19개월 간) 시중은행 가계대출의 경우 고소득층(연소득 6천만원 초과)은 12조원, 중소득층(3천~6천만원)은 9.8조원, 저소득층(3천만원 이하)은 4.1조원 증가했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팀이 들어선 2014년 8월, LTV·DTI를 완화한 뒤 올해 7월까지(24개월 간) 은행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은 고소득층 26.1조원, 중소득층 23조원, 저소득층 17.1조원으로 모두 최소 2배 이상 폭증했다. 게다가 이런 부동산 부양책은 아파트 전세값 상승을 부채질해, 치솟은 전세값이 부담돼 서울 밖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 친박계 실세인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로 취임하기 전후를 비교해보면, 모든 계층에서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사진/원명국 기자
비은행금융기관(제 2금융권) 가계대출 역시 최경환 경제팀 출범 전에는 대폭 감소하는 추세였으나, 출범 후에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렇게 폭증한 가계부채는 연말이 되면 1천300조를 무난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부채가 폭증하자 금융권 관계자나 정치권에선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면서 대책을 줄곧 요구해왔다. 특히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저금리 기조에서 급증한 가계부채의 부실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기관들은 일제히 “가계부채 관리 가능하다” “아직 우려할 수준 아니다”라며 상황을 회피하기에만 바빴다.
 
또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4년 2월, 오는 2017년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5%p 낮추겠다(160%→155%)고 공언했으나, 오히려 올해 2분기 가계부채 비율은 174%까지 뛰었다. 오히려 말과 행동이 반대로 가고 있는 셈.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스페인, 영국 등은 가계부채 비율을 줄이고 있으나 한국만 ‘디폴트’를 선언한 그리스처럼 가계부채 비율을 늘리고 있다.
 
박근혜 정권 3년반동안 늘린 가계부채가 324조4천315억원에 달해, MB정권 5년 동안 늘어난 가계부채(360조1천90억원) 규모의 90%에 육박한다. 이런 추세라면 MB정권이 늘린 가계부채는 가볍게 뛰어넘을 전망이다.
 
◆ 뒤늦게 발표된 ‘졸속’ 대책들, 결국 서민만 옥죄고
 
새누리당이 과반 확보는 무난하다는 총선 전 여론조사와는 딴판으로, 20대 국회는 여소야대로 출범했다. 그러면서 국회로부터 가계부채를 관리하라는 야당 측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 8월25일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집단대출 규제, 분양권 전매제한 등 핵심은 빠졌다. 또 가계부채 증가의 핵심원인으로 불리는 LTV, DTI에 대해선 “이전 수준으로 환원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규제정책이 아닌, 부동산 떠받치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다음 정권에 폭탄을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냐는 질타도 일었다.
▲ 정부는 ‘8.25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집값 떠받치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면서 부랴부랴 보완책을 또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자 금융위원회는 2주 뒤인 9월5일 '조기 시행'을 골자로 한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당초 11월부터 금융회사가 집단 대출을 받는 고객의 소득을 확인하도록 한 절차를 10월부터 시작하기로 시점을 당긴 것이다. 하지만 역시 대책이 미흡하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서민 대상 정책금융상품인 ‘보금자리론’ 신청 자격을 대폭 강화하며 서민들이 돈을 빌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보금자리론은 주택가격이 9억 원 이하면 소득 제한 없이 최대 5억 원까지 빌릴 수 있고 안정적인 장기간 분할상환이 가능해 서민들이 자주 애용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갑작스레 발표를 통해 대출 가능한 주택가격이 종전 9억원에서 3억원으로, 대출한도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줄였다. 소득 기준도 생겨 부부합산 6천만원 이하 가구만 신청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도권에선 살만한 집이 거의 없어진다. ‘빚내서 집사라’ 정책으로 집값은 물론 전세값도 폭등했기 때문에 소형 아파트 외에는 쳐다볼 수도 없다.
 
피해는 서민들만 받고 있다는 원성이 이어지자, 금융위원회는 19일 부랴부랴 후속대책을 내놓았다.
 
금융위는 발표를 통해 보금자리론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대신 공급량을 ‘16조원+α’로 확대했다. 9월말 기준으로 보금자리론과 디딤돌 대출 등의 공급량이 11조4천억원인 것에 비하면 확대된 것이다. 또 주택가격이 3~6억원이 넘거나 소득이 6천만원이 넘는 가계에 대해서는 디딤돌 대출이나 적격대출을 이용하도록 독려키로 했다.
 
이러한 '땜질식' 대책 발표는 그동안 정부가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해 “가계부채 관리 가능하다” “아직 우려할 수준 아니다”라고 공언했던 것과 달리, 지난 수년간 관리할 생각이 있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STX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사태 때 정부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막대한 혈세를 쏟아 부은 것이나 한진해운 사태가 터진 뒤에도 수습에 적극 나서기보다 ‘강 건너 불구경’ 식으로 뻔한 말만 되풀이한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 경제부총리도 ‘오락가락’
 
경제수장인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서울 강남권 부동산 시장의 과열 현상에 대해 사흘만에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 강남권 부동산 시장의 과열 현상과 관련, ‘투기과열 지구로 지정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사흘만에 ‘대책을 마련해볼 수 있겠다’라며 입장을 바꿨다.사진/시사포커스DB
 
 유 부총리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남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당분간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은 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서울 강남발 부동산 가격 폭등이 전국적으로 번졌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17일 충남 논산에서 신산업 분야 중소기업을 방문한 뒤 기자들을 만나서는 같은 질문에 “그 부분을 타깃으로 하는 대책을 마련해 볼 수는 있겠다"며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한다"며 사흘만에 입장을 바꿨다. 정부의 정책이 정말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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