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의혹’ 등 주요 증인 채택 무산되며 ‘용두사미’ 그쳐

▲ 국회 국정감사장의 모습.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여당의 전례 없는 국감 보이콧과 당 대표 단식 등 우여곡절 끝에 정상화된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최순실 게이트’ 등 여러 굵직한 의혹만 제기된 채 별 다른 의혹 해소조차 없이 벌써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증인 채택 요구는 빗발쳤지만 이 역시 여야 간 정쟁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흐지부지 되어버렸고, 여당이 주요 현안보다는 청와대 비선실세 관련 의혹을 최우선으로 진화시키는 데에 집중하고 야권은 확실한 ‘패’ 없이 무차별 의혹 제기와 폭로만 이어가다가 마찬가지로 해당 상임위의 관련 현안은 놓쳐버려 최악의 국감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국정 관련 질의임에도 대권잠룡으로 꼽히는 지자체장들에겐 어김없이 대선 출마 여부 등 시·도내 행정과는 무관한 질문들이 쏟아지고, 일부 상임위에선 고성과 고발까지 난무해 일각에선 소득은 없으면서 매번 갈등만 일으키고 있다며 심지어 국감 무용론까지 거론하고 있는 실정이다.
 
◆ ‘실체’는 없고 ‘의혹’만 남은 국정감사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야 간 가장 첨예한 갈등을 빚은 주제는 청와대 개입 가능성까지 제기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다.
 
이 미르재단 의혹과 관련해선 거의 모든 상임위에서 야권이 공세를 펼쳐 이번 국정감사는 ‘미르재단 감사’가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데, 일례로 조세정책 관련 증인으로 출석한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에게는 법인세 관련 질의보다는 어떻게든 미르재단 의혹과 연계시킨 질문만이 쏟아졌다.
 
물론 당초 의혹의 핵심인 최순실 씨와 차은택 CF감독 등 미르재단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인사들을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데 새누리당이 그토록 반대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모든 상임위에서 ‘미르 국감’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목소리도 일부 있다.
 
또 국감에 출석한 일부 증인들도 관련 의혹에 대한 질의에는 대체로 함구해버린 점 때문에도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거 ‘용두사미’로 끝났던 정윤회게이트의 전례만 봐도 야권이 이런 전개를 어느 정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텐데 그저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이슈몰이 수단으로서 ‘미르재단 의혹’에만 매달려 국감 기간을 흘려보냈다고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 뿐 아니라 여당을 향해서도 야권의 의혹 공세에 맞서 국정과는 거리가 있는 점까지 끄집어내 국감의 본질을 흐렸다는 평가가 일부 있는데, 단적인 예로 김제동 씨의 과거 발언이 군의 명예를 훼손하고 대군 신뢰도를 저하시켰다는 이유로 ‘국정’이 아닌 일개 연예인의 발언의 진위 여부를 캐는 데에 연일 힘을 쏟았던 점에 대해서도 이걸 꼭 국감을 통해 규명했어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였던 점도 이번 국감이 별무소득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데, 새누리당은 백 씨의 부검 결과를 먼저 기다리자고 주장한 반면 야권은 백 씨의 사망진단서를 놓고 사인이 ‘외인사’에서 ‘병사’로 기재된 점을 문제 삼아 한사코 부검을 거부한 채 특검으로 가야 된다고 해 아무 소득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당초 여야 관계가 ‘협치’가 아닌 ‘불신’에 기초하다보니 백남기 사건 뿐 아니라 여타 증인 채택 건 등에 있어서도 똑같은 모양새를 보여 양보 없는 ‘상호 불신’이 소득 없는 국감으로 만들어버린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 일부 부적절한 자세도 눈살 찌푸리게 해
 
또 몇몇 증인이나 국회의원들의 부적절한 태도도 논란이 됐는데, 지난 12일 기재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미르재단 의혹과 관련된 질문만 나오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으로 이 자리에서 답변드리기 어렵다”는 답변으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심지어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이 부회장이 무려 20여 차례나 같은 답변을 반복하자 “오늘 그 답변을 몇 번 하는지 봅시다”라고 날을 세웠고, 보다 못한 유승민, 정병국 의원 등 일부 여당의원들조차 “국회가 전경련 부회장을 여기 출석시켜 가지고 저렇게 오만한 답변을 듣고 있어야 하느냐”고 증인을 질타했는데도 이 부회장은 꿈쩍하지 않아 의원들의 공분을 샀다.
 
▲ 고대영 KBS 사장(사진)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와 한국교육방송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김인영 KBS보도본부장에게 세월호 보도 개입 의혹 관련 질의를 하려고 하자 김 본부장에게 즉각 답변하지 말 것을 지시해 파문을 일으켰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한 술 더 떠서 이보다 하루 전인 지난 11일 미방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고대영 KBS사장은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즉답을 피하는 자신을 젖히고 김인영 KBS보도본부장에게 직접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의 KBS보도 외압 의혹에 대해 질의하자 의원들이 있든 말든 아랑곳 않은 채 즉각 김 본부장을 향해 “답변하지마”라고 지시해 국감장을 한바탕 뒤흔들었다.
 
이 같은 태도 논란은 비단 증인들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었는데 13일 교문위 국감에선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이 자신의 의사진행 발언 도중 웃음을 보였다는 이유로 여성 의원인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말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이 뿐 아니라 국감장이라면 빠지지 않는 고성, 막말 역시 이번에도 등장했는데, 14일 열린 법사위 국감에선 조희연 교육감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된 지 1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판결이 나오고 있지 않은 점을 문제 삼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포함한 많은 여당 의원들이 특정 재판에 대해 지나친 표현을 써가며 양형 관련 수사에 간섭할 목적으로 발언한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새누리당 소속인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박 의원에게 “법원 대리인 같다. 박범계가”라고 꼬집었는데 이에 박 의원도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언성을 높이자 권 위원장이 “누가 말을 함부로 하는데? 처음부터 왜 질의내용 갖고 난리야”라며 박 의원에게 다가서는 등 양측이 충돌 직전까지 가 국감장 분위기가 흉흉해지기도 했다.
 
◆ 與野 상호 ‘고발’ 신경전도 여전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의 수차례 사과에도 불구하고 일부 발언을 문제 삼아 성희롱으로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한 데 이어 한 의원이 소속된 상임위인 교문위에서 사임시켜야 한다고 계속 몰아붙였다.
 
이에 새누리당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1일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감 당시 세월호 집회에서 경찰이 서울시와 사전 협의 없이 소화전을 사용했다고 답한 점을 들어 허위증언을 했으니 위증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이미 박 시장은 문체부 국감에서 청와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자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탄핵 대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는데, 이 같은 발언까지 여당을 상당히 자극해 결국 맞대응에 나서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야권이 백남기 특검을 추진하려 하자 여당은 이날 참여정부 시절 유엔에서의 북한 인권결의안 처리와 관련해 북한 측에 미리 의견을 물은 뒤 ‘기권’으로 표결했다고 폭로한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폭로를 바탕으로 14일 ‘송민순 회고록 폭로’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하는 등 끝없는 대치 상태를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같은 날 미방위 국감에서 치러진 구글의 ‘세금회피’, ‘공간정보 반출’, ‘게임사 상대 갑질 논란’ 등 외국계 회사들의 횡포에 대해선 의원들이 구글 측 증인으로부터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파트너사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등의 실효성 없는 답변만 얻는 데 그치며 정작 국민들을 위해 치열하게 송곳 질문을 해야 할 사안에 대해선 정치적 쟁점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소홀히 대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디젤게이트’ 파문을 일으켰던 독일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에 대한 이날 국토교통위 국감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는데, 증인으로 출석한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사장은 그저 “한국 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배출 가스 조작 여부나 배상 계획 등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선 모두 즉답을 피해 국감을 연 취지가 무색해졌다.
 
앞서 지난달 27일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채 열렸던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 국내기업인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한 최은영 회장에게 회사 정상화를 위해 추가로 사재를 출연할 수 있느냐는 질의를 했음에도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던 것처럼 이번 폭스바겐이나 구글 등을 상대로도 국감에서 끌어내야 할 실효성 있는 답변은 전혀 받아내지 못하고 있어 국정감사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여야는 정쟁에만 매몰된 채 주요 현안들보다 정권 관련 의혹을 놓고 공방을 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 더 이상 현행대로 유지해선 안 되고 국정감사 진행방식이나 제도 자체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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