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공방으로 시작돼 ‘법인세’ 설전으로 끝난 기재위 국감

▲ [시사포커스 원명국 기자]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국감 종료를 일주일 앞둔 여야가 연일 미르 의혹을 놓고 상호 공방전을 벌이는 가운데 야권이 ‘미르 의혹’을 법인세 인상 명분으로 삼으려 하면서 또 다른 쟁점인 법인세 인상 문제로까지 불길이 번지고 있다.
 
여기에 당초 법인세 인상, 고용난 해소 등과 관련해 이날 기재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에게 ‘기회를 맞은’ 야권이 전경련의 미르재단 출연에 대한 질문공세만 퍼부으면서 ‘미르 의혹’ 규명과 ‘법인세 인상’까지 한 번에 밀어붙이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를 간파한 새누리당 역시 ‘미르재단’을 구실로 모든 현안에 있어 우위를 점하려는 야권의 시도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면서 국감 내내 혼돈의 난타전이 계속됐다.
 
◆ ‘철벽방어’ 이승철 “미르, 검찰 수사로 답변 어려워”
 
그동안 야권이 미르재단 의혹과 관련해 국감 증인으로 출석시키려다 여당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던 최순실, 차은택 씨와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 중 12일 이 부회장이 법인세 정상화 관련 증인으로 먼저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예상된 대로 이날 기재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미르재단 의혹에 대해서만 집중 추궁하며 이 부회장을 집요하게 몰아붙였는데, 이에 못지않게 이 부회장도 검찰 수사 중인 사안임을 이유로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하면서 지루한 신경전을 이어졌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이날 이 부회장을 향해 “미르·K스포츠 재단은 지금껏 모금한 것 외에 내년, 내후년까지 기부금 모집계획을 세웠다”며 “재단을 설립해야겠다고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느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이재만 총무비서관, 우병우 민정수석과 통화를 얼마나 하느냐”고 청와대까지 겨냥한 날선 질문을 던졌다.
 
특히 박 의원은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 자산승계 문제, SK 최태원 회장의 특별사면, 롯데그룹 수사,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한진해운데 대한 회생비용 과소 출연 등 각 대기업들이 현재 직면해 있는 난제를 일일이 거론하며 이런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 비선실세와 연관된 재단 설립에 나선 게 아니냐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 같은 질의에 이 부회장은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할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는데, 이어진 송영길 민주당 의원의 “재단 설립과정에서 누가 실무를 총괄했느냐”는 질문에도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미르재단 설립은 청와대가 아닌 이 부회장 자신이 주도했다고 적극 나섰던 모습과 달리 “수사 중인 사안”이라고 재차 말을 아꼈다.
 
이렇듯 이 부회장이 굳게 입을 다물자 야당 의원들은 한층 격하게 그를 질타했는데,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국회증인감정법을 근거로 “검찰조사가 진행 중이란 이유로 증언을 거부할 수 없다”고 몰아붙였으며 같은 당 박영선 의원도 “이 부회장의 답변 태도는 뒤에 어마어마한 권력기관이 버티고 있거나 본인이 권력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우회적으로 청와대까지 거론하는 등 압박수위를 높였다.
 
한 발 더 나아가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수사 중이라고 해서 본인이 (발언) 했던 이야기조차 확인할 수 없다고 하면 정상적인 국감이 이뤄질 수 없다”며 기재위원장에게 정회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경태 기재위원장은 “계속적인 재판 도는 조사중 사건에 관여할 목적으로 감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 조항이 있다”며 이 부회장을 비호한 데 이어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도 야당 의원들에게 증인 출석 이유와 관련된 법인세 등에 대한 질문만 이 부회장에게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용수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이 부회장을 증인 채택한 이유는 법인세 정상화 관련 질문을 한다는 게 주 요지였는데 괜히 폭로전이나 하는 국감이 돼선 안 된다”고 야권에 일침을 가했으며 같은 당 김광림 의원도 “조세정책에 대한 국감장에서 계속 미르, 미르하면 정쟁으로 비칠 수 있다”며 야당 의원들에 가급적 관련 없는 질문은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 野 ‘미르재단’-‘법인세’ 결부시켜 공세 강화
 
이에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이승철 부회장의 심문이 조세정책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조세정책과 경제정책이 (전경련과) 권력이 결탁돼 쥐락펴락 되고 있다는 의혹이 있는데 어째서 관계가 없느냐”고 반박하고 나섰다.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 역시 “재벌기업들이 거액을 내놓을 때는 거기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바라는 게 당연하다”며 “재벌에 유리한 정책인 법인세 인상을 철회해 주기를 바라는 것 아니냐”고 야권이 추진하고 있는 ‘법인세 인상 문제’와 ‘미르 의혹’을 자연스레 연계시켰다.
 
▲ [시사포커스 원명국 기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인세 인상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여기에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전경련의 미르재단 출연을 아예 ‘준조세’로 규정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법인세를 낮춰 주는 대신 미르재단 모금 등 전경련이란 창구를 통해서 뒷돈을 받는 건 범죄행위다. 정권이 이런 식으로 대기업에 준조세를 걷을 바에는 법인세를 올리는 게 낫다”고 미르재단 의혹을 법인세 인상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박 의원은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향해서도 “기재부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두 단체를 지정기부금 단체로 (전경련에) 지정해줬으니 응당 책임져야 한다”며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뒤이어 같은 당 윤호중 의원도 박 의원의 ‘준조세’ 주장을 거들어 “미르재단 뿐 아니라 청년희망펀드,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수천억 원을 거둬들이지 않았느냐”며 “결국 정부가 이 (미르재단 출연 등과) 같은 준조세 형태로 기업을 강탈하다시피하고 그에 협조하는 대가로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해주는 것 아니냐”라고 유 부총리를 압박했다.
 
이밖에도 야당 의원들은 전경련 해체 주장을 편 것은 물론 기부금 강요에 대한 형사처벌과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도 취소하라고 유 부총리에게 지속적으로 촉구했는데, 결국 이들은 유 부총리로부터 “공공기관들에게 당장 (전경련에서) 탈퇴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지만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지 한 번 더 논의하겠다”며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의 제도상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를 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 與 “법인세 인상은 서민증세” - 野 “공평 과세 필요”
 
이처럼 야권의 의도대로 법인세 인상 문제까지 미르 의혹과 얽혀 들어갈 조짐이 나타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법인세 인상은 부당하다는 점에 집중해 총반격에 나섰는데,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김광림 의원 역시 “법인세 인상이 논란인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라며 “법인세 인상은 결국 서민증세”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기재부 차관 출신인 추경호 의원도 김 의원과 동일하게 “법인세 인상은 결국 그 부담이 소비자와 주주, 근로자에게 전가되는 ‘국민증세’로 경기를 위축시키고 일자리를 줄일 뿐”이라며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다수 나라가 법인세율을 인하하는데 우리만 인상하자는 건 재정·통화정책의 확장적 기조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 의원들이 순순히 포기하겠다는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대기업 법인세 실효세율이 19.2%였는데 미국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30%”라며 “국가적 과제를 생각해 어딘가는 부담해야 하는데 그나마 여유 있는 대기업부터 시작하자는 얘기”라고 법인세 인상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뿐 아니라 김 의원은 전경련을 향해서도 “전경련은 법인세를 인상하면 한국의 모든 법인이 해외로 이전할 것처럼 엄포를 놓는데 정작 그들이 기업에게 (미르재단 출연 등의 이유로) 돈을 걷고 있다”며 기업에 기부금은 강요하는 반면 법인세 인상에는 반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비판했다.
 
이밖에 다른 야당 의원들도 법인세 인상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나름의 근거를 앞다퉈 제시했는데, 김현미 민주당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 세수의 대부분이 소득세고 그 중에서도 근로소득세가 압도적”이라고 강조했고,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도 “우리나라는 법인세율을 면제해주는 비율이 높다”며 공평한 과세를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 간 세율 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렇게 야권이 법인세 인상에 한 목소리를 내는 한편 예산 부수법안을 통해 실제로 추진할 움직임까지 보이자 어떻게든 이를 저지하려는 새누리당은 장차 ‘국회 파행’을 불사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는데, 김정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예산부수법안’을 이용하려는 야권을 향해 “정부와의 조율이나 상임위 차원의 논의도 없이 야당이 독단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면서 김 대변인은 “국회의장 날치기까지 예고하며 야당 마음대로 정책을 좌우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제의 책임 정치에 위배되는 거대 야당의 폭거”라며 “정세균 의장도 몇 차례 법인세 인상 등 민주당 요구안을 예산 부수법안에 포함시킬 의사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만큼 또한번 국회 파행을 예고하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처럼 여야가 ‘미르 의혹’에 대해서도 매듭짓지 못한 와중에 이제는 법인세 문제에 대해서까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장기간 대치 정국이 이어지게 될 것인지 우려의 시선이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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