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마무리 후 개헌 논의 급물살 탈 듯…아직 ‘백가쟁명’ 양상

▲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 개헌과 관련한 목소리가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 (좌로부터)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정종섭 전 장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임기 말로 향해가는 박근혜 정권의 레임덕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우려에 가급적 개헌 발언을 자제해왔던 당 지도부와 친박계 내에서조차 개헌에 대한 전망을 조금씩 내놓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기에 대권잠룡들도 저마다 개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하나 둘씩 표명하면서 그간 잠시 가라앉았던 개헌 논의에 다시금 불이 지펴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정기국회 이후 개헌’ 내비친 與, ‘내각제’ 불 지피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정기국회 일정을 잘 마무리한 뒤 얼마든지 개헌 논의를 할 수 있다”며 “개헌 논의 시점이 적절한 것이냐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고 개헌 공론화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정 원내대표는 이어 얼마 전 정세균 국회의장과 함께 했던 방미 일정 당시 개헌에 대해 거론했던 사실도 밝혔는데 “뉴욕특파원 공개 간담회 석상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헌 얘기를 하며 ‘정 원내대표가 키를 쥐고 있다,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이랬는데, 난 의원들 스스로 개헌 논의를 하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개헌특위 구성 문제도 정기국회 마무리 후 진지하게 얘기해보자고 뉴욕에서 얘기했다”고도 덧붙였는데, 정기국회 회기가 통상 매년 9월 1일을 시점으로 100일이기 때문에 이르면 연내인 12월 중순경부터 본격적인 개헌 절차에 착수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최근 들어 개헌에 대해 말을 아끼던 정 원내대표는 이날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개헌 방향에 대한 자신의 속내까지 드러냈는데, ‘가장 좋은 제도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상적인 국가는 전부 내각제”라며 “(그 중) 독일식 내각제가 지구상에서 마련된 최고의 의회제도 권력구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2차 대전 승전국이 독일에게 현존하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를 만들어 준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대통령에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다. 그런데 야당에서 틀어버리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구조”라고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비판했다.
 
다만 정 원내대표는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에서도 여전히 대통령중심제를 시행 중인 점을 의식한 듯 “미국은 다르다. 미국의 대통령 중심제는 다른 나라의 대통령 중심제와 다르다”면서 “우리나라처럼 지난한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나라가 어딨나. 국가의사 결정구조가 패스트트랙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독일식 내각제를 향후 개헌방향으로 제시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날 정 원내대표가 극찬한 독일식 내각제란 의원내각제의 전형인 영국식과는 조금 다른 구조인데, 의회에서 정부 수반인 총리를 선출한다는 점만 여타 내각제와 유사할 뿐 내각제의 병폐로도 꼽히는 의회의 내각불신임안과 내각의 의회해산권을 엄격히 제한하는 건설적 불신임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불신임안의 경우 의회에서 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차기 총리와 내각을 구성한 뒤에야 명목상 존재하는 대통령에게 내각불신임안을 제기할 수 있게 해놨는데 이런 점으로 인해 총리가 한 번 집권하면 최소한 의원 임기 이상은 안정적으로 국정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상대적으로 의회에 비해 총리가 우위에 있는 제도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유사한 제도를 여당 내에서 제시하는 또 다른 인물로는 현재 새누리당의 대권잠룡 중 한 명인 김무성 전 대표가 있는데, 김 전 대표는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비판하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뒤섞여 있기에 사실상 분권형 대통령제라고도 볼 수 있어 독일식 내각제보다는 총리의 권한이 약하다고 비쳐질 수 있지만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는 국무총리가 내각구성권 외에 국군통수권까지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보다는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 쪽에 무게 중심이 좀 더 쏠려 있다고 할 수 있는 제도다.
 
앞서 김 전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패자는 현 정권이 망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임기 내내 국정의 발목을 잡게 된다”며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하고 정당들이 서로 협력하는 연정을 해야 한다”고 개헌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밖에 친박계에서도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꼽히는 이른바 ‘진박’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 역시 의원 내각제로의 개헌을 공론화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는 지난 3일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전직 국회의장과 개헌에 적극적인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 여야 대선주자 등을 초청해 라운드테이블을 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뿐 아니라 정 의원은 이 자리에서 “내년 초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목표로 지속적으로 개헌을 공론화하겠다”고 공언하며 일단 오는 12일경 자신의 주도로 ‘국가혁신을 위한 연구모임’을 개최해 원내외 개헌론자들과 개헌 담론을 본격화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처럼 당 지도부 인사는 물론 친박계와 비박계를 막론하고 내각제 개헌에 불을 지피고 있는데, 총선 참패로 여소야대까지 이뤄진 상황에서 일견 내각제에 회의적일 듯한 여당이 현재 내각제를 내미는 이유는 차기 대선 구도를 어느 정도 감안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현재 대체로 야권 대선후보들의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통적인 여권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건 아직 새누리당 입당조차 불확실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뿐인데다 반 총장이 비록 온후한 이미지로 비쳐지나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부장관을 역임했던 인사로 새누리당 내엔 거의 기반이 없는 원외 인물이어서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기존 여당 인사들의 뜻대로 움직여줄 것인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반 총장을 대선후보로 지원하고 있는 친박계는 명목상 대통령은 존재하되 그 힘을 대폭 축소하고 총리에 힘을 싣는 독일식 내각제나 이원적 집정부제 개헌을 추진해 친박계 총리로 실권을 쥐려는 계산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반해 김 전 대표 등 비박계 일각에서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선 대선후보로서 자신의 지지율이 저조하다는 점을 의식해 내년 말 차기 대선으로 선출된 대통령 임기는 ‘2년 반’만에 매듭짓고 개헌 필요상 차기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자는 주장을 펼치게 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일 김 전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못한다면 차기 대선후보들이 구체적으로 개헌 공약을 내걸어야 한다”며 “내게 기회가 온다면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2년 반으로 줄이겠다”고 역설한 바 있다.
 
즉, 반 총장을 내세우려는 친박계나 문재인, 안철수 등의 야권 대선후보와 달리 스스로 한 자릿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는 만큼 차기 대통령은 2년 반이란 ‘단기’로 넘긴 뒤 현재 자신이 불을 지피고 있는 ‘연정론’을 통해 정파를 막론하고 여러 세력과 활발히 연대함으로써 현재 당내 소수로 전락한 비박계의 약점을 극복하고 개헌 후 정국에서 실권을 쥐려는 전략으로 비쳐지고 있다.
 
◆ 與 일부 대권잠룡들 ‘내각제 반대’ 목소리도
 
반면 당내 주류인 듯 보이는 대통령중심제 폐지 흐름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인물들도 일부 존재하는데, 비박계 대권잠룡 중 한 명인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서 ‘경제성장과 경제정의’란 주제의 강연 뒤 질문을 받던 도중 개헌과 관련해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맞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 같은 주장을 편 이유에 대해 유 전 원내대표는 “중국이나 우리나라 박정희 시절에 잘된 것은 안정적인 정권 때문이었다”며 내각제를 주장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정권 안정성’을 내세웠지만 세부적으로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는 내각제보다 대통령제에 무게를 둔 이유에 대해 “내각제는 국회의원이 장관까지 하는 거라 국회가 행정부까지 지배하는 것인데 지금처럼 국회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는 안정적인 리더십이 나올지 의문”이라며 “우리 현실이 외국과 달라 4년 중임제가 맞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의회와 행정부가 일치되다시피 해 지금처럼 의회와 정부가 충돌을 일으키는 대통령제보다 내각제가 안정성이 있을 수 있어도 현재 정치인들의 대민 신뢰도가 낮은 만큼 내각제는 이르다는 것인데, 다만 유 전 원내대표는 “ 우리가 (국민소득이) 5~6만불에 달하고, 남북통일 이전까지는 4년 중임제가 맞고,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되면 내각제도 좋다”며 통일 이후엔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그는 여러 제도 중 굳이 미국과 동일한 4년 중임제를 개헌 방안으로 제시한 데 대해선 “첫번째 4년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잘하고, 두 번째 4년은 더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다”며 “8년을 갈 수 있으면 시야를 길게 가져갈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이렇듯 이원집정부제를 비롯한 분권형 대통령제에 반대하는 대권잠룡은 유 전 원내대표 외에 또 있는데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지난 5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반대하며 개헌 이전에 국회의원들의 특권내려놓기가 우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여권 내에서 개헌에 대해 각자 견해를 봇물 터지듯 피력함에 따라 장차 정기국회가 마무리 되면 개헌이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로 부상할 것인지 벌써부터 세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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