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벡호, 중간 점검

베어벡 호의 핵심과제는 아시안컵 우승이 아니라 대표팀의 세대교체다.

베스트 일레븐 중 6명이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이미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이다. 그들의 기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차세대를 대비하기 위해 선수 풀의 확충은 시급하다.

선수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중앙수비 라인이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지난 6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대만과의 홈경기에서 8:0으로 압승하면서 오랜만의 골 잔치를 벌였다.

정조국(서울)이 해트트릭을 기록해 부진으로 대표팀에서 탈락한 안정환과 박주영(서울), 부상 중인 이동국(포항)과 이천수(울산)의 부재를 만회할 신예 스트라이커의 탄생도 예고했다. 베어벡 호는 과연 명실상부한 아시아 정상에 설 수 있을까?

베어벡 호의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

물론 대만은 FIFA랭킹 144위의 약체팀. 이날의 관전 포인트는 약체 대만전에서 최대한 큰 점수차로 이기고 심리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과, 정조국과 조재진(시미즈) 투톱을 앞세운 ‘4-4-2’ 포메이션으로의 전술 변화 테스트였다.

대만전에 부여된 두 가지 임무를 베어벡 호는 훌륭하게 완수한 듯하다. 현재 아시안컵 예선을 통해 대표팀이 거둔 성적은 3승 1무 14득점 2실점.

이중 지난 2월 있었던 시리아전은 베어벡 사령탑이 출범(6월)하기 이전이므로 이를 제한다면, 베어벡 호의 성적표는 2승 1무 12득점 1실점이 된다. 그중 2승 11득점이 약체 대만을 상대로 한 기록이므로 객관적인 지표로 삼을 수는 없겠지만, 4년 전 아시안컵에서 코엘류 체제의 베트남-오만전 2연패를 떠올리면 적어도 한숨을 돌릴 만한 성적이다.

베어벡 전술의 인상적인 변화는 전체적인 포메이션. 베어벡 호는 지난 2일 이란전까지 아드보카트의 ‘4-3-3’ 포메이션을 고수하다, 대만전에서 처음으로 ‘4-4-2’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코엘류 체제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투톱이고, ‘4-4-2’는 4년 만에 처음이다. 히딩크 이후 한국 축구의 주류로 자리 잡아온 쓰리톱을 바꾸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컸다.

그러나 대만전에서 투톱 정조국과 조재진이 합작 5골을 뽑아내면서 우려는 기대로 바뀌었다. 이날 대만전의 특징은 세트플레이에서 많은 골이 터졌다는 점.

전반 43분의 설기현(레딩FC)의 헤딩슛은 김두현(성남)의 프리킥을 받아낸 것이고, 정조국의 두 번째 골도 김두현의 오른쪽 코너킥에서 시작했다. 기록상으로는 8골 중 2골뿐이지만 유효 슈팅으로 연결된 것까지 계산하면 수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공격 루트도 비교적 다양해졌다. 나머지 6골 중 3골이 한국 축구의 고정적인 골 루트인 측면 돌파와 측면 크로스에서 나왔지만, 김두현은 외곽 중거리슛을 성공시켰고, 정조국은 중앙 돌파에 이은 골키퍼와의 1대1 상황을 연출했다.

조재진이 성공시킨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도 최성국(울산)의 중앙 돌파였다. 약체를 상대로 8골을 몰아넣은 효과를 보긴 했지만, 일단 공격진은 합격점을 얻었다.

어쨌건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하다’는 징크스를 깬 것은 괜찮은 수확이다. ‘프리미어리거 3인방’ 중 돋보인 것은 설기현이다.

2일 이란전에서 1득점, 6일 대만전에서는 2득점 1도움을 기록하는 활약을 했다. 두 경기에서 모두 공격의 물꼬를 득점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베어벡 감독은 대만전을 두고 “전술적으로 설기현의 첫 골이 가장 좋았다”고 평가했다. 아드보카트 체제에서는 교체선수로 뛰었고, 공을 수비진영을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역주행’이란 별명이 붙었던 것을 생각하면 큰 발전이다.

한편 이란전에서 집중 마크에 시달리다 경기가 끝나고 병원 신세까지 졌던 박지성(맨체스터)은 다소 평범한 경기를 보이다 체력 안배를 위해 이영표(토트넘)와 함께 후반 9분에 교체아웃 되었다.

‘아시안컵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더 익숙한 김두현은 대표팀 미드필더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6일 대만전의 1득점 2도움을 비롯해 아시안컵 예선 전 경기에서 매번 공격포인트(총 3득점 3도움)를 올리고 있다.

특히 이을용의 대표팀 은퇴와 이천수의 부상으로 세트피스 역할을 김두현이 도맡았는데, 여기서 2골이 나왔다. 주장을 맡은 김남일(수원)도 안정된 볼 배급으로 중앙을 장악하며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반면 포백 수비라인은 대만전에서 골을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대만이 아시안컵 예선 4경기에서 아직 단 1골도 내지 못한 약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결국 이란전에서 대만전으로 오는 흐름을 분석해야 한다는 이야기.

포백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양날개 이영표-송종국(수원)에는 호의적이지만, 소속팀에서는 포지션이 다른 김상식(성남)과 김동진(제니트)에 대해서는 지적의 목소리가 뒤따르고 있다. 베어벡 감독은 이란전 동점골 허용 등 결정적인 국면에서 자주 실책을 범했던 김상식을 믿음으로 기용하고 있다.

감독의 믿음에 김상식이 보상할 수 있을지는 두고볼 문제. 그간 베어벡 호에 대한 불만 중의 하나는 많은 신인을 뽑고도 기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일 베어벡 감독은 약체 대만을 상대로도 예정된 베스트 일레븐을 그대로 선발 기용했다. 대만전에서 교체 투입된 백업 요원들은 최성국, 장학영, 백지훈.

후반 9분 박지성과 교체된 최성국은 뚜렷한 공격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왼쪽 미드필더를 맡아 특유의 드리블을 선보이며 페널티킥을 유도했다. 마찬가지로 후반 9분 이영표와 자리를 바꾼 장학영도 몇 차례의 찬스를 만들며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후반 32분에나 설기현과 교체된 백지훈은 공 잡을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튼 대만전 대승으로 아시안컵 B조 예선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조 2위까지 주는 본선 진출 티켓은 무난히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는 한국 축구지만, 그동안 아시안컵과는 거리가 멀었다.

1960년 한국 대회 우승 이후 1988년 결승에서 사우디에 승부차기로 패한 것이 최고 성적일 정도. 베어벡 호는 과연 명실상부한 아시아 정상에 설 수 있을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대표팀 세대교체

사실 베어벡 호의 주된 과제는 아시안컵 우승이 아니라 대표팀의 세대교체다. 베어벡 감독이 “세대교체는 아시안컵 본선 확정 뒤에 하겠다”고 밝힌 것도 일단 최소한의 성과를 확보한 뒤, 우승을 염두에 두지 않고 나머지 일정을 세대교체에 투자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베스트 일레븐 중 6명이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이미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이다. 그들의 기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차세대를 대비하기 위해 선수 풀의 확충은 시급하다.

독일 월드컵을 전후해 선수의 세대교체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중앙수비 라인이 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허리에 김두현, 공격에 정조국을 발탁한 것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김영철(성남), 김진규(이와타) 이종민(울산), 조성환(포항)등 엔트리의 새 얼굴들도 시급히 점검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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