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3당 원내대표 회동 제안…野 민주당-국민의당 ‘미묘한’ 온도차

▲ [시사포커스 원명국 기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확고하게 규정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 등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국정감사 5일차인 30일, 줄곧 평행선만 달리며 대척점에 서 있던 여야가 조금씩 사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댈 기미를 보이고 있다.
 
표면상 대치는 계속되고 있지만 여야 모두 물밑에선 출구를 모색하는 등 이전과는 달라진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데, 이 때문인지 이제 확실히 ‘대결’보다는 ‘대화’에 방점을 두려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여야 대치 상황이 어느덧 교착 상태로 접어들면서 더는 뽑아들 카드가 없어진 여당과 사태 장기화로 자칫 역풍을 우려한 야당도 더 이상의 강대강 대치에 부담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이 정세균 국회의장과 새누리당을 중재하는 역할을 적극 자임하고 나서면서 사태 해결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여당의 보이콧이 내달까지 지속되느냐 여부가 정국의 분수령이 되는 만큼 이들의 중재 움직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새누리당과의 협상에 나서는 데 있어 아직 야권 내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입장차가 미묘하게 존재해 협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될 것으로 보인다.
 
◆ 與 ‘의장 사퇴’ 아닌 ‘사과’로 수위 조절
 
새누리당이 농성 닷새째로 접어들면서 그간 달궈왔던 강경 분위기가 한풀 꺾이고 반대로 협상 의지를 보이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원진, 이장우 최고위원과 함께 강성 친박 3인방으로 꼽히는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30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나와 “우리 당론은 (정 의장의) 사퇴”라면서도 “원인제공자인 정 의장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에 대한 그런 약속이 이뤄진다고 하면 이 문제는 저는 풀리리라 본다”고 입장을 내놨다.
 
무엇보다 김 의원은 “이제 정 의장이 국회법에 명시돼 있는 국회의장의 그런 중립성 부분에 대해 손상이나 훼손을 안 했으면 한다”며 “이런 부분들이 자꾸 재발이 된다고 하면 법적으로 더 강화된 그런 부분들이 필요하다”고 밝혀 그간 제기해 온 이른바 ‘정세균 방지법(국회법 개정안)’의 제정 필요성을 국회 복귀의 선결조건으로 분명히 내세우기도 했다.
 
이전보다 한층 완화된 이 같은 견해에 대해 당 지도부도 공감을 표하는 모양새인데, 정진석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앞으로 만난다면 국회의장이 헌법과 국회법을 준수하고 중립적 의무를 다하는 게 무엇인지 책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며 김 의원과 마찬가지로 ‘정세균 방지법’ 제정 논의에 불을 지폈다.
 
그러면서 정 원내대표는 ‘정세균 방지법’을 가리켜 “의회민주주의를 복원하고 국회파행을 근본적으로 막는 길”이라며 “새누리당의 이 힘겨운 투쟁은 단순히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과나 유감표명 등 입장만을 듣겠다고 기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새누리당이 돌연 협상 테이블에 앉자는 입장을 내놓게 된 데에는 현실적으로 정 의장 사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무작정 이것만 내걸고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무기한 강경 투쟁을 이어가기엔 비박계의 이탈 조짐 등 당내 상황이 이미 심상찮다는 부분이 우선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도 비박계 의원들은 국감 정상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며 당 지도부를 압박했는데, 당내 대권잠룡으로 일컬어지는 유승민 의원의 경우 이날 서울대 강연에서 “이번 주말이 사흘이나 있으니 당 지도부는 주말에 야당과 협조해서 국회를 수습하고 국정감사를 시행하고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국감 복귀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또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야권의 김재수 장관 해임안 강행 처리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정 의장 개인에 대한 폭로전을 당의 장기적인 투쟁 방향으로 삼기에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점도 결국 ‘의장 중립’을 법제화한다는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에 눈을 돌리게 된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 뿐 아니라 현재 정 의장 사퇴를 내걸고 단식투쟁 중인 이정현 당 대표의 건강상태도 장기전으로 흐를 경우 심각히 우려된다는 점도 새누리당이 출구전략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정 원내대표는 정 의장을 향해 “과정이 어쨌든 집권여당 대표가 단식하고 여당 의원들이 국정감사를 거부하는 비정상적 사태에 국회의장으로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며 “대인적 풍모를 국민과 의원들에게 보여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해 장기전까지 각오한다는 그간의 당 입장과 달리 이 상황을 정 의장이 빨리 종결짓기 바라는 듯한 속내를 내비쳤다.
 
이번 투쟁에서 당 지도부와는 온도차를 보여온 유승민 의원도 5일째 단식 중인 이 대표의 건강엔 깊은 우려를 드러냈는데 “이 대표 단식은 국회 정상화가 이뤄지면 의원들이 가서 말려야 한다. 단식을 중단할 수 있도록 말려야 한다”며 “그런 변화가 이번 주말에 있어야 한다. 그게 지도부 역할”이라고 단식 중단을 촉구했다.
 
이렇게 이 대표의 단식 지속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비단 새누리당 내에서만 불거진 게 아니었는데, 이 대표의 단식을 ‘코미디 개그’라고 폄하했던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이 대표의 단식에 비난한 것을 사과한다”고 밝혔고 단식 중인 이 대표를 직접 위로방문하려다가 건강상 이유로 거절당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재차 ‘단식 폄하’를 사과하며 “건강도 생각하고 국감 정상화를 위해 이번엔 이 대표께서 퇴로를 열라”고 단식 중단을 호소했다.
 
심지어 이날 박근혜 대통령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대치 상황 속에 단식을 지속하고 있는 이 대표의 안위를 걱정했는지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국회로 보내 이 대표의 단식을 중단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 수석은 이 대표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께서 많이 걱정하셔서 단식을 중단해 달라 요청하러 왔다”고 이를 시인했다.

하지만 김 수석에 따르면 정작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단식 중단 요구에도 “그렇게 (야당에) 얘기해도 안 되는데, 비상한 수단이 아니면 저 사람들 오만과 교만을 뜯어고치지 못한다”며 “이제 시작”이라고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 대표가 단식을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정 의장 역시 사태를 관망하며 좀처럼 물러설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는데, 전날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밤샘시위를 하며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장과의 면담을 요구하자 아예 공관에 돌아가지 않은 채 외박한 정 의장은 이날 자신의 SNS에 “많은 분들의 응원댓글 감사합니다”란 내용으로 짜장면을 먹으며 댓글을 보고 있는 인증샷까지 게재해 여당 의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당장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날 오후 최고위원 원내대표단 연석회의 자리에서 “집권여당 대표가 5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데 짜장면 먹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게 이해가 안 간다”며 날을 세우자 일단 의장실 측에선 “어떤 의도를 갖고 게재한 게 아니었다. 오늘 찍은 사진이 아니다”라고 수습에 나섰는데, 다만 정 의장이 여전히 국회 정상화를 위해 별 다른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3당 원내대표 회동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 야권, 정국 해소 관련 ‘주도권’ 놓고 2野 간 신경전
 
▲ [시사포커스 원명국 기자]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유감을 표하고 새누리당도 여당답게 폭로 등 막된 행동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야권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여당에 국감 복귀를 촉구하면서도 숨고르기에 들어가려는지 새누리당에서 제안한 3당 원내대표 회동에 긍정적 반응을 내놨는데,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만나야 한다. 항상 대화를 해야 또 뭔가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3당 원내대표는 오늘이라도 만나 주말 연휴를 최대한 활용해 모든 문제를 풀고 10월4일부터 정상적으로 국감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여당과의 협상에 나서는 자세에선 두 당은 다소 차이를 보였는데, 박 위원장은 “저와 수차례 접촉했던 정진석 원내대표는 자신이 정세균 의장에게 했던 말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한다”며 “선이후난(先易後難·쉬운 것부터 풀어가다)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를 인정하며 공통된 것을 추구하다)의 자세로 좋은 것부터 출발하자”고 발언한 반면 우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와 정 원내대표 간엔 상당히 진전된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저하고는 합의가 아직 안 이뤄졌다”며 신경전을 벌였다.
 
아울러 이번 사태에 있어 정 의장을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두 원내대표는 다른 태도를 보였는데 박 위원장은 비대위 직후 “의장이 어른이고 국회를 정상화할 의무가 있다”며 “국회의장이 물꼬를 터주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국회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정 의장이 유감 표명토록 압박한 데 비해 우 원내대표는 정 의장에겐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두둔하고 나섰다.
 
우 원내대표는 KBS라디오에 출연해 “정 의장은 방미 전에 저를 따로 불러 ‘해임건의안 꼭 내야 되나, 나라가 시끄러워질 텐데 야당이 원하는 것 중 하나 정도를 딜 하는 게 정치 아니냐’라며 해임건의안을 안 내는 쪽으로 유도했었다”고 한 데 이어 정 의장의 유감 표명을 전제로 여야 간 물밑 합의가 이뤄졌으나 정 의장이 거부해 무산됐다는 박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 3당 합의로 이뤄진 게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등 정 의장을 적극 옹호했다.

현재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 한 목소리로 정 의장의 유감 표명이 사태 해결의 선결조건이란 입장을 보이는 데 반해 민주당은 거꾸로 정 의장을 비호하고 있는 이유와 관련해 일각에선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이 정 의장과 새누리당 중 어느 쪽에 있느냐를 따지기보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국민의당이 조정자를 자처한다는 것에 같은 야권인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시도로 보고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해석을 증명하듯 우 원내대표는 지난 28일 박 위원장이 3당 원내대표 간 물밑협상 내용을 먼저 공개한 데 대해서도 당일 열린 의총에서 “옛날에 여야 협상 때 그것(협상내용 공개) 때문에 감정 상할 때가 많았다”며 “나는 한마디도 안 했다. 진행된 것도 없는데 마치 (합의)된 것처럼 얘기하면 국민들이 기대하다 또 실망하고 그래서 여야 협상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할 것”이라고 박 위원장을 비판한 바 있다.
 
이 뿐 아니라 당시 그는 의총 직전엔 기자들에게 “새누리당이 집회를 계속하고 플래카드 걸고 있는 상태에서 국감만 정상화하기 위해 (정 의장이) 유감표명하는 게 말이 안되는데 박 위원장은 그렇게 하자는 것”이라며 “3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걸) 받냐”고 분명히 반대하기도 해 사실상 민주당의 태도 변화가 정국 해소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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