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집 "돈키호테"로 돌아온 '바람 바람 바람'의 김범룡

1980년대 중반, 김범룡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등장해 한국가요계를 '완전제압'한 인물이었다. 단순한 듯 보이면서도 귀에 착 달라붙어 절대 잊혀지지 않는 튠을 구사해내고, 당시의 천편일률적인 '남성미 넘치는 보이스컬러'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여리고 세련되며 날카로운 보이스컬러로서 '가요계의 변혁'을 주도했던 그는 대히트곡 '바람 바람 바람' 이후 5, 6년간 '겨울비는 내리고', '카페와 여인', '마지막 입맞춤', '현아', '님 떠나가네' 등의 히트곡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포스트 조용필 - 프리 서태지' 시기의 한국가요계 대표주자로서 맹활약했다. 그런 그가 1992년에 발표한 7집 이후 11년만에 8집 <돈키호테>를 발표하고 '완전히 뒤바뀐' 한국가요계에 다시금 출사표를 내던졌다. 이 고집스럽고 재능있는, 그리고 용기있는 뮤지션 김범룡을 기자가 만나보았다. 먼저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질문보다 '왜 그동안 돌아오지 않았나'를 묻고 싶습니다. 얼굴을 파는 아이돌이 아니라 실력을 갖춘 뮤지션이 왜 음악계를 떠났었나에 대해서 말입니다. - 좀 깁니다.(웃음) 일단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5, 6년간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회의도 많이 느껴졌습니다. 둘째로는 '가수로서의 생명력'을 내가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작곡가로, 음반제작로 '외도'도 해보았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치유됐지만, 목소리에 문제가 생겨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십여년 넘는 시간을 보내다, 어느날 인터넷에 '김범룡 팬클럽'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록 여러 가지 사업을 해보고, 이런저런 활동을 해보았지만 결국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나는 '가수'로 남을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나이 들어 다시 컴백하는 여타 가수들처럼 '트로트'를 선택하지 않은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내 팬'을 위해 '내가 하던 음악'을 계속 하는 것이 바로 그분들게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고, 또 저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최근 1980년대에 활동하던 뮤지션들이 대거 '컴백'을 선언하고 재활동에 들어갔는데, 그 중 김범룡씨 정도만이 방송과 무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케이스에 속합니다. 이들 중견뮤지션이 활동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겠습니까? - 일단 가요계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 자체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이효리씨가 가수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도 물론 이효리씨의 팬이지만, 방송인으로서 대상을 받았다면 이해가 가도 가수로서 과연 이효리씨가 그 정도의 역량이 있는 존재인가 의아스럽습니다.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시각이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뭔가 변질된 형태로 옮겨간 듯해서 중견뮤지션들이 이를 이해하고 따르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그리고 또 현재 대중음악계가 '성인층 음악'과 '청소년층 음악'으로 완전히 양분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트로트 아니면 댄스/힙합/R&B라는 식이죠. 포크나 락과 같은, 중장년층과 청소년층 사이의 중간계층을 위한 음악 시장이 거의 부재하다시피 한 상황입니다. 이런 까닭에 중견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거죠. 고질적인 문제라 생각합니다. 뮤지션으로서의 김범룡씨는 '캐치한 음악', 즉 귀에 착 달라붙는 튠과 리듬을 구사해내는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중음악계에는 이런 경향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인상이 드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 마디로, 지금은 '멜로디'로 승부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1980년대는 분명 멜로디가 어떻게 빠져나오느냐로 승부하는 시대였고, 다른 요소들은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지금은 '편곡'으로 승부하는 시대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패션 음악'이라 말하고 싶은데, 어떤 멜로디라도 상관없고, 그저 음악에 어떤 '패션'을 주느냐, 어떤 식으로 '멋'을 부리느냐로 성패가 갈라지고 있습니다. 제 경우는 이른바 '세련된 맛'을 주기 위해 얕은 계산을 하지 않고, 그저 예전의 '멜로디 중심 주의'를 그대로 관철하며, 여기에 기계적 효과음없이 연주 형식면에 신경을 써서 보다 세밀하고 짜임새있는 음악을 만들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패션'입니다. 현대 대중음악이 아무리 바뀌었더라도, 자기 색을 그대로 고수하지 못하고 그저 추세에 휩쓸려 나간다면 '컴백'의 의미가 없는 셈이죠. 마지막으로, '시사신문' 독자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요즘, 다들 아시다시피 어렵고 혼란스런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자신이 맡은 일에 열심히 매진하시다 보면 분명 안팎으로 좋은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이런 혼란 중에 나온 저도 열심히 뛰고 있으니 용기 얻으시고, 앞으로 한국음악다양화에 앞장서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호응 부탁드립니다. 취재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사진 임한희 기자 lhh@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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