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의장 개회사에 與 ‘의사일정 보이콧’…추경 통과 막막

▲ 정세균 국회의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46회 국회정기회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야당이 교문위에서 추경안을 단독 표결 처리한 문제로 마비됐던 원내 의사일정이 지난달 31일 여야의 추경 협상 최종 타결로 한 고비를 넘나 싶더니 추경안 처리를 목전에 둔 1일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사드 배치나 우병우 청와대 수석 논란 등 최근 현안에 대한 야권 편향적 입장을 개회사를 통해 드러내면서 여야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모양새다.
 
새누리당은 교문위 사태 당시 유성엽 교문위원장에게 대응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정 의장을 향해 공식 사과를 요구하다가 한 발 더 나아가 사퇴까지 촉구하는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고, 야권은 정 의장을 위한 지원사격에 나서 여당의 의사일정 보이콧 행위를 지탄하는 등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앞서 논란이 됐던 교문위에서의 추경안 단독 처리 사태는 물론 이번 정 의장의 ‘중립 위반성’ 발언에 이르기까지 여소야대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듯 과거와 달리 여야의 공수가 뒤바뀐 분위기인데, 야권이 다수인 점을 내세워 여당을 먼저 자극하면 여기에 여당이 격하게 반발하며 보이콧으로 맞대응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어 ‘의사일정 거부’가 더 이상 야당의 전매특허만은 아닌 듯한 모습까지 연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양측의 신경전이 이러다 선을 넘어 자칫 장기화되거나 전면적인 의사일정 마비 사태로까지 확대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 鄭 의장, ‘우병우·사드’ 野에 힘 실어…與 “중립 위반” 성토
 
지난달 31일 여야가 밤늦게까지 논의를 이어간 끝에 간신히 합의안을 내놨던 추경안은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1일 열린 정기국회 첫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돌발 발언으로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정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9월 첫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최근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며 “당사자가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라고 대뜸 우 수석 사퇴를 주장하는 야권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섰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우리 사회 권력자들의 특권, 공직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부정과 부패를 보면서 더 이상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기관 신설을 미뤄선 안 된다”며 야권이 추진의지를 보이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대해서도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 의장은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까지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란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비판함에 따라 당초 추경안 처리를 기대하며 본회의장에 자리 잡았던 새누리당 의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같은 정 의장의 야당 편향적 발언이 계속되자 당장 조원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양당 간에 중재를 해야 할 의장이 자기 의견을 어디 원내대표 연설하듯 하냐”고 격하게 반발했고, 정 의장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여당 의원들이 모두 줄줄이 본회의장을 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 의장은 개회식 직후 기자들에게 “국민들께서 아마 그렇게 생각하실 것으로 알고 국민을 대신해서 내가 말씀드린 것”이라며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부응한 야당 의원들은 “속이 시원하다”며 정 의장을 두둔하고 나섰는데, 심지어 더민주 내 비주류인 김종인 전 대표조차 “의장이 뭐 그 정도 얘기 못하겠나”라며 오히려 새누리당 의원들의 보이콧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 與, 鄭 의장 겨냥 ‘사과 요구·사퇴 결의안 채택’ 등 강공
 
이에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듯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기국회 개회식 중도 퇴장 직후 정 의장 개회사에 대한 대책 강구를 위해 열린 긴급 의총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중립적 위치에서 의사진행 책무를 지고 있는 국회의장이 야당 당론을 대변하듯 하느냐”고 정 의장을 질타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어 “과거 어떤 국회의장의 개헌사가 이렇게 편향됐냐. 단상에 오르더니 기껏 한다는 개회사가 사드 반대, 공수처 설치 등 여당이 반대하는 내용”이라며 “의장의 납득할 만한 사과 조치가 후속되지 않고선 새누리당은 지금부터 20대 의사일정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실제로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날 개회식 뒤 예정됐던 개회 기념 전체 의원 사진 촬영에도 불응한 것은 물론 오후 재개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도 불참하는 등 본격 보이콧에 나서면서 전날 조윤선 문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역시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채 진행됐다.
 
이런 가운데 여당 지도부는 긴급 의총 직후 당 대표실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까지 소집했는데, 이번 정 의장의 발언을 자신의 대권을 의식한 데다 박근혜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까지 담은 폭거이자 도발로 규정하고, 정 의장이 의장직에 있는 한 추경안 처리조차도 응할 수 없다는 데에 뜻을 함께 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김정재 원내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이런 내용을 전했는데 “국회의장 당적 이탈의 의미조차 모르고 정파적 입장만 대변하는 분을 우리는 국회수장으로 모실 수 없다”면서 “더민주 당론을 여과 없이 주장하며 집권당 의원을 모멸하는 태도에 대해 국회의장의 납득할 만한 사과와 재발방지 조치가 당장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뿐 아니라 김 대변인은 추경안 처리에 대해서도 “지금 이런 입장에선 할 수 없다. 의장에게 의사봉을 잡게 할 순 없고 부의장 등 다른 대안도 찾고 있다”며 거듭 정 의장을 겨냥해 “만약 더민주 입장에 미련을 가질 것이라면 당장 국회의장에서 사퇴하고 더민주로 돌아가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 개회사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새누리당은 이런 입장 표명이 그저 허언에 그치는 게 아니란 점을 증명하려는 듯 이날 의총에서 정 의장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내용을 담은 사퇴 촉구 결의안까지 통과시켜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공세를 펴는 모습을 보였다.
 
정작 정부와 함께 그간 조속한 추경 처리를 야권에 요청해왔던 여당이 추경 처리 지연까지 불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여기서 한 발 물러나게 되면 여소야대 구도상 향후 모든 현안에 있어 내내 야당에 끌려 다닐 수 있다는 절박감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그 위기감만큼 대응수위도 강경해져 정 의장에 사죄와 의장직 사퇴를 요구한 데 그치지 않고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내겠다고 천명했다.
 
◆ 野 “추경안, 野 단독 처리 가능성도” 초강수 맞불
 
이렇듯 새누리당이 대대적인 ‘보이콧’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야권은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을 막론하고 모두 정 의장을 지지하면서도 여당의 보이콧을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먼저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정 의장 개회사에 반발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개회식 도중 집단 퇴장한 데 대해 “끝나고 나서 항의할 수 있는데 깽판을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우리가 강성야당일 때도 이렇게 안 했는데 뭐하는 짓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우 원내대표는 “과거 국회의장이 야당에게 충고를 한 적도 있다”면서 “국회 수장이 청와대에 충고를 드린 건데 그걸 정파적 발언으로 해석해 대항하면 국회 권위가 어떻게 되겠느냐”고도 지적했다.
 
아울러 국민의당은 정 의장의 발언에 아예 극찬까지 하고 나섰는데,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정기국회 개회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엑설런트, 최고의 개회사를 했다”며 “자기들의 의사에 반한다고 해서 집권여당이 퇴장하고 대통령이 강조한 추경안 통과를 보이콧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정 의장에 반발해 의사일정 보이콧까지 단행한 새누리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심지어 박 위원장은 ‘야당끼리 추경안을 통과시킬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그런 얘기도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에게 제가 제안했다”며 야당 독단으로 처리할 의사까지 내비치는 등 더민주보다 한층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정의당도 이날 김종대 원내대변인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의장이 따라야 할 규칙은 바로 국민의 견해다. 정 의장의 개회사를 적극 지지한다”면서 새누리당을 겨냥 “발언이 편향적인지 따지기 전에 국회는 이 (우 수석 의혹 등 고위공직자 비리 및 사드 배치 관련)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답을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렇게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새누리당이 정기국회 첫 개회식에서부터 감행한 의사일정 보이콧 조치는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의 주장과 달리 7년 전 있었던 민주당의 정기국회 개회식 퇴장을 오버랩 시키고 있다.
 
지난 2009년 당시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여당인 한나라당과 충돌했던 민주당은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개회사를 시작하자마자 ‘날치기 주범 사퇴하라’면서 단체로 퇴장한 바 있는데, 국회의장 발언 내용이 퇴장 원인이 된 이번 사안과는 사례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불과 7년 만에 여야가 완전히 뒤바뀐 입장이 됐다는 점에서 여소야대 국회란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비록 여당이 의사일정 보이콧은 물론 의장 사퇴 결의안 제출 등 초강수를 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과반이 야당 의석인데다 의장직까지 야당이 점하고 있어 야권 단독 법안 처리도 정치적 부담이 문제일 뿐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점과 보이콧을 장기화해 추경 처리를 늦춰봐야 스스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역설 때문에 여당 입장에선 무작정 대치를 장기화하기는 일단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짧은 기간이라도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지 않으면 이 같은 사례가 재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 강경하게 나온 만큼 철회하는 데에도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정 의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어떻게든 받아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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