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지도부’로 당청관계 순풍 불 듯…비박, ‘강석호’만 당선돼 체면치레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 대표로 선출된 이정현 의원(왼쪽에서 3번째)이 이날 자신과 함께 당선된 새 최고위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열린 9일 대의원 현장투표까지 합산한 결과 친박계 이정현 의원이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초 비박 단일화가 전대를 뒤흔들 새로운 변수로 여겨졌으나 이번 결과를 통해 당내 최대를 이루고 있는 친박의 벽을 넘기엔 아직 역부족이란 점이 드러났다.
 
또 비박이 단일화된 데 반해 친박 후보군은 난립한 상황에서 친박계의 표심이 분산됨으로써 큰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조직력이 강한 친박계가 대체로 이 의원을 낙점해 몰표를 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까지의 선거인단 투표 및 여론조사 결과를 통틀어 비박 단일후보인 주호영 후보는 31,946표를 얻은 데 반해 이 의원은 44,421표를 얻어 1만표 이상의 격차를 보였으며 범친박계 후보군인 이주영 의원은 21,614표, 한선교 의원은 10,757표로 이 의원의 절반에도 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현 체제의 출범이 향후 당청관계의 변화를 비롯해 당내 권력 구도 재편은 물론 차기 대선판도에도 어떤 여파를 몰고 올 것인지 벌써부터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8·9 전당대회 핵심 키워드, ‘친박’…朴 대통령 건재 과시
 
이번 새누리당 8·9 전당대회는 흡사 박근혜 정부의 출범 초기를 보는 듯한 인상을 풍길 정도로 ‘친박 강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무래도 후보 4명 중 3명이 비박보다는 적어도 친박 측에 가깝다보니 그렇게 비치는 부분도 있지만 19대 국회 때와 달리 20대 총선 이후 당내 최대 계파로 자리 잡은 위상을 보여주듯 친박계가 다수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부분은 이날 취임 후 두 번째로 전대에 참석한 박 대통령의 등장 장면인데,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붉은 색 옷을 입고 등장한 박 대통령을 향해 참석자 대다수가 ‘박근혜’를 연호하며 14분간 이어진 박 대통령 축사 내내 박수와 환호로 호응해 임기를 불과 1년 반 남기고 흘러나오는 ‘레임덕’설을 무색케 했다.
 
앞서 지난달 8일 전대 참석 요청을 받고도 즉답을 하지 않았던 박 대통령이 이날 등장했다는 것부터 이번 전대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는데, 이번 전대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말기 국정동력부터 차기 대선구도까지 모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어느 쪽으로든 ‘단일화’가 끝내 이뤄지지 못했더라도 가장 친박 색채가 강한 후보에 당내 주류의 표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 때문에 박근혜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홍보수석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았던 이정현, 이주영 의원 중 최근 탈박 움직임을 보이며 무계파 중립을 표방하던 이주영 의원이 친박계의 눈 밖에 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계파 타파를 내세우는 이주영 의원이 당 대표가 될 경우 표면상 당 화합 모양새는 갖추겠지만 전대에서 당권 장악에 실패했음에도 비박계 대선주자들이 숨통을 트일 여지는 생기게 돼 대선 구도가 또 다시 친·비박 혼전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비박계 수장을 자처하는 김무성 전 대표의 경우 전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부터 공공연히 비박계 단일화와 비박 후보 지원 의사를 내비친 것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을 향해서도 서슴없이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 스스로 당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면 퇴임 후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중립적 색채보다는 친박 색채에 더 힘을 실어줬을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다보니 당내 비주류라 할 수 있는 호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출마 후보 중 가장 친박 색채가 짙다는 점에서 이정현 의원이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의원이 당선되면 보수정당 사상 첫 호남 출신 대표라는 ‘쇄신’ 이미지를 얻게 되는 것은 물론 호남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야권 정당들에도 적잖은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데다 주요 지지층이 영남에 치우친 정당이란 그간의 인식을 떨쳐내고 전국정당이라고 내세울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전국정당으로 선전하게 될 경우 특정 지역을 바탕으로 한 정당이란 비판에서 벗어남으로써 좀 더 대표성을 갖게 되고 지역 간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정권 재창출이란 당의 최종 목표에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향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후보로 삼는 ‘충청대망론’과 이정현 의원의 ‘호남 당 대표’론, 당내 최다를 이루는 영남 지지층을 바탕으로 전국 정당 색채를 한층 굳히면서 원외인사로서 계파 색채가 없는 반 총장을 박 대통령의 후임으로 내세우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이번 당 대표는 시기상 차기 대선 준비에도 힘을 기울여야 하는 만큼 당의 대표 대선주자를 내세우려면 당 대표도 대선주자와 어느 정도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라도 친박계 당 대표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비단 당 대표 뿐 아니라 최고위원직 역시 그런 연유로 거의 친박 일색으로 이뤄지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날 투표 결과 그간 강성 친박으로 분류돼 온 조원진, 이장우 의원이 모두 당선됐으며 비례대표 출신의 초선의원에 불과한 최연혜 후보도 지역구 재선 출신인 이은재 의원을 꺾고 한 자리 뿐인 여성 최고위원 자리를 차지했다.
 
◆ ‘친박 일색’ 지도부에 비박 이대로 몰락하나

 
이처럼 친박계가 당 장악력을 다시금 과시한 상황에서 비박계는 장차 당내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견되는데, 비박 단일후보로서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과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의 ‘희생양’ 이미지를 갖고 있는 주호영 의원을 내세웠음에도 호남 출신인 이정현 의원에게 패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이미지를 경쟁력 삼아 차기 대권을 준비 중인 비주류 유승민 의원에게도 이번 전대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또 당내 비박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김무성 전 대표가 새누리당의 최종 대선주자로 선출되기는 더욱 어려워졌으며 이번 전대에서 비박계라고는 강석호 의원이 최고위원 한 석을 얻는 데 그치면서 지도부 내 비박의 존재감도 희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비박계 내에서 주장해온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를 기반으로 한 개헌 추진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친박 일색 지도부’가 출범하게 되는 만큼 당청관계에 있어선 이전보다 한층 개선되면서 박 대통령의 임기 말까지 국정동력을 마련하는 데 적극 협조하는 원만한 관계가 이어질 것으로 점쳐지는데, 대신 야권과의 관계는 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사료된다.
 
일단 김 전 대표는 이날 전대 투표 직후 기자들로부터 ‘지지했던 비박계 단일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당선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이번 결과에 다소 충격은 받았더라도 더 이상의 친박 압박은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이번 전대를 통해 ‘총선 책임론’을 증명하고 길고 긴 계파 대결에 종지부를 찍으려던 비박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당분간 수세에 몰린 비박계는 분을 삭이기 힘들더라도 한층 강대해진 친박계가 스스로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기회만 노리며 와신상담하는 것 외엔 별 다른 방도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비박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간 침묵하던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은 당장 전대가 끝나자마자 기자들에게 총선 책임론과 관련해 “모든 책임을 다 같이 져야 하는 것 아니냐. 비주류가 어떻고 친박이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할 입장이 안 된다”며 다시는 이를 거론하지 못하도록 ‘양비론’으로 결론 내려 버렸다.
 
그러면서 서 의원은 김 전 대표를 겨냥한 듯 “솔직한 이야기로 지금까지 비주류가 당 대표에 안 됐느냐. 자기들이 화합하자면서 아주 잘못된 것”이라며 “끝나면 하나가 되고 노력하는 것이 당 대표가 된 사람의 역할이고 의무”라고 전대 결과에 완전히 승복할 것을 종용했다.
 
▲ 9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4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정현 대표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이 신임 대표는 "지금 이순간 부터 새누리당에 친박, 비박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며 "당연히 패배주의도 지역주의도 없음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새로이 당 대표에 오른 이정현 의원 역시 당선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대 결과가 ‘오더 투표’로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데 대해 “전대 끝나고 지금 그런 식의 접근하는 것 자체가 또 앞으로 1년 넘게 계속해서 계파와 파벌 문제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그게 새누리당과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그 (계파)문제를 자꾸 부각시키고, 그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 국민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일을 못하게 된다”고 계파 문제에 선을 그었다.
 
심지어 그는 이날 대표직 수락연설에선 “이제부터 친박과 비박 계파는 없다”고 선언하기까지 했으나 세간에선 벌써부터 ‘도로 친박당’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어 이 같은 예상이 과연 맞아떨어질지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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