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거론된 서청원 끝내 불출마…강성 친박계 ‘격앙’

▲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대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지난 18일 TV조선을 통해 공개되면서 벌써 당내 후폭풍이 거세게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대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지난 18일 TV조선을 통해 공개되면서 벌써 당내 후폭풍이 거세게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 녹취록 내용을 접한 비박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검찰 수사까지 촉구하고 나섰고, 정진석 원내대표도 친박계 핵심 인사들로부터 빚어진 이번 녹취록 파문이 청와대까지 미칠 것을 우려해 최경환, 윤상현 두 의원을 질타하는 등 비난이 줄을 잇자 일단 논란이 된 두 의원은 19일 본회의에 불참한 채 칩거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번 녹취록 공개가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의 당 대표 경선 출마 여부가 발표되기 직전에 이뤄졌다는 점인데, 해당 녹취록 내용 중 서 의원의 지역구 공천과 관련된 부분이 언급된 만큼 주류 친박계에선 이번 파문을 서 의원이 전당대회에 불출마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노림수로 보고 최경환·윤상현 의원과 마찬가지로 이날 의총에 불참해 반감을 드러냈다.
 
이런 와중에 친박계에 속하면서도 서 의원과 경쟁할 예정이던 다른 당권후보들은 녹취록과 관련된 친박계 핵심인사들을 비판하며 이번 파문을 기회로 자신을 돋보이고자 하면서 친박계 역시 점차 분열되는 양상을 내비쳤다.
 
4·13 총선이 끝난 지 3달이 지난 시점에 또 다시 탈 많았던 지난 총선 공천의 이면이 드러나 당내 최대계파인 친박계의 발목을 잡으면서 얼마 남기지 않은 전당대회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친박 핵심, ‘맏형’ 서청원 위해 ‘지역구 조정’ 압박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앞서 친박계 좌장인 최 의원은 경제부총리에서 사퇴하고 원내복귀한 뒤 자신의 선거를 준비 중이던 지난 1월 말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에 출마한 친이계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를 해 “사람이 세상을 무리하게 살면 되는 것도 없다”며 지역구를 변경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김 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확실하냐’고 묻자, 최 의원은 “그럼, 그럼, 그럼. 옆(화성을)에 보내려고 하는 건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라며 대통령까지 내세워 지역구를 조정하고자 했다.
 
이는 지난 6일 최 의원이 당 대표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 중 “지난 총선 기간 저는 최고위원은커녕 공관위 구성과 공천 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다”며 일각에서 제기해온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해 결백을 호소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총선 직전 ‘욕설 녹취록’ 파문으로 낙천됐던 윤 의원 역시 이번 녹취록 논란에 또 다시 휘말렸는데 그 역시 김 전 의원과의 통화에서 “(화성갑에서) 빠져야 된다. 내가 대통령 뜻이 어딘지 안다”며 “경선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만든다”고 마치 공천을 좌우할 수 있다는 듯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윤 의원이 “(지역구 변경) 안 하면 사달이 난다. 형(김 전 의원) 내가 별의 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라며 일견 협박에 가까운 발언까지 하자 김 전 의원은 결국 지역구를 지난 2월 3일 화성갑에서 화성을로, 나중에 화성병이 신설되자 화성병으로 옮기는 등 지역구를 두 차례나 옮겼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에 따라 김 전 의원은 서 의원이 출마하는 지역구에서 물러났음에도 끝내 경선 과정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서 의원의 전대 출마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는 민감한 시점에 이번 녹취록이 공개된 점으로 미루어 총선 공천 과정에서 누적된 불만이 친박계에 예상치 못한 역풍으로 작용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친박 “녹취록, 서청원 죽이려는 것”…비박 “진박놀음, 수사 의뢰해야”
 
▲ 공천 개입 논란을 일으킨 녹취록에 거론됐던 서청원 의원이 19일 결국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런 가운데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선거 이후에도 친박계와 계속 충돌해왔던 비박계 의원들은 이번 파문을 접하자마자 즉각 한 목소리로 관련자들을 성토했는데, 지난 총선에서 낙천돼 무소속 출마했었던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은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박 실세가 진박 놀음도 모자라 공천 과정을 형해화했다”며 “당에서 철저히 진상조사하고 부족하다면 진짜 수사 의뢰라도 해서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새누리당 대전시당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선언 회견을 열었던 비박계 김용태 의원도 기자회견 뒤 기자들에게 녹취록과 관련, “막장 공천이 특정패권 세력에 의해 자행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당장 김희옥 위원장이 최경환·윤상현 의원을 고소하길 바란다”고 검찰 고발까지 촉구했다.
 
당내 소장파로 비박계 당권후보 중 한명인 정병국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4·13 총선 당시 계파 패권주의에 몰입된 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핵심 친박 인사들이 예비후보자를 회유, 협박을 한 사실이 녹음파일을 통해 온 국민들에게 공개됐다. 참담하다”며 “당에서 진상조사를 실시해 조속히 이번 파문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비대위에서 사무총장직 사퇴를 놓고 친박계와 신경전을 벌였던 비박계 권성동 법사위원장도 이날 오전 국회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파문과 관련, “공천 발표 전 김성회 전 의원과의 통화에서 협박을 받고 있는 걸 알았고 어쩔 수 없이 지역구를 옮겼단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 문제는 정당민주주의 차원에서 봤을 때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라고 비판대열에 합류했다.
 
반면 친박계 측에선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녹취록을 만든 비박계에 분노를 드러냈는데, 서청원 의원의 최측근인 이우현 의원은 이날 의총 직후 기자들을 만난 가운데 김성회 전 의원을 겨냥한 듯 “경선에서 졌으면 깨끗하게 승복하는 거지 녹취를 해서 왜 이렇게 당을 어렵게 만드냐”며 “얼마나 비겁하냐. 남자의 세계에서 인간쓰레기 같은 행동”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이 의원은 “(공개하려면) 진작하지 왜 이런 시점에 하냐, 서청원 의원을 죽이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서청원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어느 것도 개입한 것 없다”고 말했는데, 이번 녹취록 공개가 서 의원의 당권 도전을 막기 위한 의도였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번 사태로 반사효과를 볼 비박계 당권주자들을 겨냥해 “김무성 옆에 섰던 사람들도 다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며 “국민에게 지지를 받고 비전을 제시해야지 지난 과거를 갖고 자꾸 얘기하는 것은 대표 출마 자격이 없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친박계 이장우 의원 역시 이번 녹취록 파문과 관련, “나는 어느 세력에 의해 주도가 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폭로되었는지 참 궁금하다”며 “그런 (폭로식) 정치문화에 개탄스럽게 생각한다”고 비박계에 날을 세웠다.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김태흠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이번 녹취록 내용에 대해 “이게 무슨 문제가 되나. 그게 총선 개입이라고 볼 수 있느냐”며 “각별한 선후배나 동료 의원들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고 (출마) 권고할 수도 있는 그런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어 “공천을 준다는 것도 아니고 경선 절차를 밟았다가 경선에서 그 사람이 낙선한 것인데, 또 그 분이 비례대표를 요구했는데도 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김무성 전 대표가 안대희 후보한테 마포 출마를 권유하거나 아니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종로가 아닌 다른 데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한 것도 똑같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친박계 의원들은 녹취록 파문에 대체로 분개했지만, 일찌감치 경선 완주 의사를 밝히며 서 의원과 각을 세웠던 친박계 당권주자들은 각기 엇갈린 반응을 보였는데 서 의원과의 단일화를 일축했던 이주영 의원은 녹취록 파문에 대해 “계파 청산, 당 화합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분란을 계속하는 것은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내놨다.
 
이에 반해 ‘원조 친박’으로 꼽히면서도 이 의원과 마찬가지로 경선 완주 의사를 밝혔던 한선교 의원은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녹취록에 연루된 최경환·윤상현 의원을 겨냥해 “결국 그 분들은 늘 대통령을 팔아왔다. 그 권력 향유가 너무 긴 것 아닌가. 못된 짓이다”라며 비박계와 같은 입장을 보였다.
 
또 한 의원은 “대통령께서 그런 식으로 관여하는 분이 절대 아니라는 걸 저는 안다”며 청와대 개입설엔 선을 그으면서도 “서청원 의원도 책임지셔야 할 것이다. 아무 일 없이 최·윤 의원이 대통령을 팔아서 ‘지역구를 옮겨라’ 이런 얘기 할 것 같으냐”고 친박계 핵심에는 분리 대응해 이목을 끌었다.
 
이처럼 여권에 한바탕 폭풍을 몰고 온 녹취록 파문으로 이날 서 의원까지 당 대표 경선에 불출마하기로 끝내 선언하면서 내달 9일 열릴 전당대회 역시 결과를 알 수 없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데, 서 의원 불출마로 구심점이 사라진 친박계 당권주자들이 각자도생하는 분위기 속에 비박계가 이번 파문을 계기로 세를 불리고 있어 당내 최대 계파로 차기 지도부 장악을 자신했던 친박계가 좌불안석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