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노위 ‘강행처리’ 놓고 與野 ‘强 대 强’ 대치…‘협치’ 파기 우려

▲ 홍영표 환노위원장(사진)이 15일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합의 없이 야권 의원들만으로 전날 고용노동부의 예비비 감사청구 요구안을 일방적 표결 처리한 데 대해 사과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란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3당 구도를 이루면서 어느 때보다 ‘협치’가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 벌써부터 ‘협치’는 파기된 채 야권의 실력행사로 ‘독과점’이 시작되는 양상을 띠고 있어 향후 정국 운영에 있어서도 자주 파행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아져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야권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한 징계 및 감사청구 요구를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 의사와 관계없이 강행 처리함에 따라 정국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양상이다.
 
여소야대를 악용한 야권의 밀어붙이기식 태도에 새누리당 역시 상임위 보이콧으로 맞대응하며 충돌했는데, 비록 오후부터 상임위 일정을 재개해 일시적으로 대치하는 데 그쳤다 해도 상대에 대한 불신이 커진 만큼 향후 여야 간 원내 충돌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아직 채 손대지도 않은 쟁점사안들도 산적한 상황에서 향후 여야가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이번과 같은 사태가 빈번하게 재발할 여지도 있어 여야가 이를 방지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20대 국회는 실로 벼랑 끝에 놓여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 野 ‘강행처리’에 與 ‘상임위 보이콧’ 경고
 
새누리당은 14일 ‘환노위 사태’에 직면한 뒤 하루 뒤인 이날 작심한 듯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어제 환노위 사태는 매우 유감이다. 홍영표 환노위원장이 여야 합의의 관례를 깨고 고용노동부 예비비 지출 승인의 건을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며 “홍 위원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국회 운영과 관련해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어 “표결 처리에 대해 사전에 여야 간사 간 어떤 협의도 없었다”며 “이는 총선 민의인 협치를 조롱하고 국회 질서를 깬 폭거이며 국회선진화법 정신에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에서 수적 우세를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단 한번도 이런 식으로 일방처리한 적이 없다”며 “앞으로 발생할 모든 문제는 두 야당과 홍 위원장에게 있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 자리에서 박명재 사무총장도 “참여정부와 국민의정부도 예비비를 정책홍보비로 사용했다”며 “과거 정부가 예비비를 홍보비로 썼을 때 감사청구를 했느냐, 그런 일은 없었다”고 야당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와 환노위 여당 측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야당 소속으로서 전날 강행처리를 주도했던 홍영표 환노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강공으로 나왔다.
 
원내대책회의에서의 경고가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내 의원들에게 “환노위 사태 관련, 야당의 사과가 있을 때까지 모든 상임위 일정을 중단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회의에서 홍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던 하 의원도 이날 여당 환노위원들과 함께 별도의 기자회견까지 열어 “어제 홍영표 위원장의 날치기 폭거는 매우 비이성적인 행태”라며 “홍 위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새누리당 환노위원 전원이 사퇴하겠다”고 ‘벼랑 끝 전술’을 펼쳤다.
 
또 전날 환노위 상황과 관련, 하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여야 간 의견 차가 좁혀지고 있었지만 돌연 홍 위원장이 표결 처리를 강행한 만큼 장차 이 같은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면 이번에 단순 사과로 끝날 게 아니라 홍 위원장의 사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 野 “의회주의 원칙 따른 것”…‘강행처리’ 정당화

 
이 같은 새누리당의 총공세에 야권도 가만있지 않았는데, 전날 더민주와 함께 강행 처리에 동참했던 국민의당 측은 그 때 굳이 강행 처리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건 오히려 여당이라며 책임 소재 공방을 벌였다.
 
▲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예비비 문제에 대해 장관이 시인했고 관계자 처벌과 감사원 감사 요구문제를 거의 합의해가다가 새누리당에서 자구를 갖고 보이콧하고 해서 (야당 단독처리가)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가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며 강행처리를 정당화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예비비 문제에 대해 장관이 시인했고 관계자 처벌과 감사원 감사 요구문제를 거의 합의해가다가 새누리당에서 자구를 갖고 보이콧하고 해서 (야당 단독처리가)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가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며 강행처리를 정당화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예비비를 마음대로 쓴다면 왜 국가예산과 국민 혈세를 함부로 쓰느냐는 문제가 있다. 또 정당한 곳에 쓴 것도 아니잖나”라며 “국회의원을 오래 하다 보니까 여당이 국회를 보이콧하는 세상이 왔네”라고 새누리당의 강경 대응을 비꼬았다.
 
한 발 더 나아가 같은 당 이상돈 의원은 “도저히 합의가 안 되면 표결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의회주의”라며 “의회주의 원칙에 따라 위원장이 표결처리를 한 것이고 이는 정당하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환노위에 소속 의원이 있는 정의당 역시 새누리당에 역공을 폈는데 환노위원이자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정미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가) 국무회의와 대통령 승인 없이 50억 원을 지출했던 것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게 올해도 반복됐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묻자고 한 일”이라며 “그런데 어제 부대의견 의결과정에서 새누리당 위원들은 항의하며 퇴장했다”고 강행처리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 의원은 이어 “어제 환노위의 징계와 감사를 요구하는 부대의견 의결은 국가재정의 결산권한을 갖는 헌법기관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새누리당이 날치기 운운하며 환노위 파행을 이어가고 국회의원을 겁박하는 발언까지 하는 것은 3권 분립 취지를 스스로 허물고 국회의 행정부 감시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야권의 갖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결국 이날 오전 모든 상임위 참여를 보이콧했다.
 
그럼에도 야권은 상임위 보이콧이 장기화될 경우 거꾸로 여당의 정치적 부담이 커진다고 판단한 듯 이날 열리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의 경우 오후 회의부터 강행키로 결정했다.
 
특히 야권은 추경 예산 편성 때문에라도 여당이 상임위 정상화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는데, 국민의당 측 예결특위 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오늘 전체회의를 마감해야 다음 주 결산소위를 열 수 있다. 더 이상 미룬다면 결국 다음 주로 예정된 추경예산 편성도 미뤄진다”며 여당을 압박헀다.
 
이에 여당 측 간사인 주광덕 의원은 “예결위 개의 시간을 오후로 미룬 근원적 원인과 책임은 어제 있었던 환노위 기습 표결 처리에 있다. 상황이 변화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개의 시간을 일시 연장한 것”이라며 몽니를 부리는 게 아니라 일시적 보이콧이란 점을 강조했다.
 
◆ 홍영표 환노위원장 “유감”…與 “사과가 아닌 변명”
 
이런 가운데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홍영표 환노위원장은 우상호 원내대표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날 국회 내 더민주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고용노동부의 예비비 승인 관련 건을 강행 처리한 데 대해 “우리 상임위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걸 여당에선 부족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상임위를 원활하게 이끌고 마무리 지어야 되는데 원만하게 끝나지 못한 데 대해 유감”이라고 사과했다.
 
다만 그는 “국가재정법이 중대하게 훼손된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국회 입법부의 예산 심의 의결권을 무력화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의원이 지적했다”며 처리된 건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아울러 홍 위원장은 “앞으로 위원장으로서 환노위가 고통 받는 비정규직이나 노동현장의 여러 문제들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는데 더 노력하겠다”고 덧붙여 새누리당 환노위원들의 위원장직 사퇴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런 사과를 받은 새누리당은 김정재 원내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도대체 사과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다”며 “국회 질서를 문란하게 한 홍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분명히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즉각 불만을 표출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국회 운영 질서를 정면 파괴한 환노위원장에 대해 근본적 조치를 해야 국회를 정상화할 수 있다”며 명문화된 재발방지 약속이나 홍 위원장의 사퇴 등과 같은 분명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당초 어떤 형태로든 홍 위원장의 ‘사과’가 상임위 재개의 전제였던 만큼 ‘의정 보이콧’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을 고려한 정 원내대표는 다시 소속의원들에게 “홍 위원장의 유감표명에 따라 모든 상임위 및 특위 일정을 정상 진행해주기 바란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오후 회의는 속개토록 조치했다.
 
일단 표면상 환노위 사태는 이렇게 봉합된 듯하지만 새누리당은 홍 위원장에 대한 공개 사과를 다시 촉구할 방침이어서 출범한지 50여 일만에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얼룩진 20대 국회가 앞으로 제 기능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앞날이 불투명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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