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후보 최경환 ‘불출마’ 이어 ‘전대 룰’ 뒤집기도 실패

▲ 친박계 좌장 최경환 의원이 6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논란 속에 강행된 20대 총선 공천의 결과로 당내 최대 계파에 자리한 친박계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급속히 결속력이 약화되면서 점점 무너지는 모양새다.
 
그간 친박계 내에서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로 지목됐던 최경환 의원이 6일 ‘총선 책임’의 멍에를 떨쳐내지 못하고 돌연 불출마를 선언한 데 이어 범친박 당권주자들 역시 계파 청산을 내세운 가운데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한 강경 친박계는 서청원 의원의 당 대표 출마까지 종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당초 전당대회 룰을 둘러싸고 계파 갈등이 재점화될 것으로 예상됐던 이날 의원총회에서조차 친박계가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주장하던 ‘단일지도체제’ 개편안을 뒤집는 데 실패함에 따라 그동안 다수 계파인 친박 우세로 비쳐지던 당내 권력지형이 향후 크게 변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된 분위기를 감지한 듯 비박계 역시 친박계의 자중지란 속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복당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유승민 의원은 더는 조심스런 자세만 취하기보다 점차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당내 비박계의 입지를 넓혀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 최경환 불출마에 당혹한 친박, ‘맏형’ 서청원 출마 호소
 
정진석 체제 출범 초기인 지난 5월 정 원내대표가 계파 해소를 내세우며 비대위원장에 비박계 김용태 의원을 내정한 데 반발해 전국위 보이콧으로 김 의원을 끝내 자진사퇴하게 만들고 정 원내대표의 사퇴까지 압박할 만큼 자신들의 뜻대로 당을 좌지우지했던 친박계의 모습에서 총선 패배라는 결과는 그 앞길을 막는 데 전혀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실력행사도 할 수 있을 만큼 적어도 8월 전당대회까지는 친박계의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라 점쳐졌으나 막상 전대가 1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정현, 이주영 등 친박 내 비주류나 범친박 후보들이 후보 단일화를 거부한 채 완주할 의사를 내비치는 등 조금씩 자중지란 조짐이 보이며 최경환 의원을 당 대표로 세우려는 당초 계획이 틀어질 기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친박계 후보는 난립하는 양상을 띠는 반면 비박계 후보들은 단일화할 움직임까지 보이자 마음이 급해진 강경 친박계는 최 의원의 출마를 재촉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총선 책임론에, 경제적으로는 서별관회의 논란으로 경선 과정에서 타 후보에 난타당할 우려가 깊었던 최 의원이 고심 끝에 6일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친박계는 구심점을 잃은 듯 혼란에 빠졌다.
 
일단 최 의원은 ‘당의 화합과 정권 재창출’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번 불출마 선언이 청와대와 상의한 게 아니라 총선 직후부터 밝혀왔듯 본인의 의사대로 결정한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향후 일체 다른 당권후보들과 만나거나 지지를 표하지 않는 것은 물론 대권 도전에도 뜻이 없음을 못 박았다.
 
▲ 친박계 좌장 최경환 의원이 6일 당 대표 불출마 의사를 공식화하자 친박계 내에서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사진 우측) 추대론이 한층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렇게 최 의원이 당권후보군에서 이탈하면서 친박계는 자연히 맏형인 서청원 의원을 향해 한층 당권 출마토록 강하게 호소했는데, 이미 4일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5일 조원진, 이우현, 윤영석, 홍철호, 함진규, 이장우, 이채익, 정갑윤, 박대출, 박맹우, 박덕흠, 김명연, 이완영, 김태흠 의원 등 친박계 14명은 국회 의원회관 내 서 의원의 방까지 찾아가 ‘서청원 당 대표론’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그를 간곡히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국회부의장도 지낸 바 있는 5선의 친박 중진 정갑윤 의원까지 나서서 “당이 어렵고 힘드니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 당내 그래도 경륜있는 분, 우리 서 선배님이 좀 나서달라. 야당도 보면 김종인 선배나 박지원 선배, 이런 원로들이 나서서 당 위기 수습을 해 나갔는데 우리당도 이렇게 해야 할 상황 아니냐”라며 적극 종용했으나 서 의원은 여전히 “내가 이 나이에 그걸 뭐하려고 하겠나”라며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서 의원의 출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이날 불출마를 표명한 최 의원조차 이른바 ‘서청원 추대론’에 대해 “당이 굉장히 반목하고 대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른 같은 분이 나서서 아우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원들의 충정이 전달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우회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 기세 오른 비박계, ‘판 뒤집기’ 나서나
 
하지만 ‘최경환 불출마’로 일대 전기가 마련됐다고 판단한 비박계는 오히려 승세를 탔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에 찬 분위기다.
 
먼저 지난 19대 국회 당시 비박계의 수장 격이던 김무성 전 대표부터 최 의원 불출마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6일 “당을 위해서 좋은 마음으로 충정에 의한 결정”이라면서도 “정당 민주주의를 제가 추진하다가 다 이루지 못했는데 정당민주주의를 반드시 정착시키는 대표가 되길 바란다”고 청와대와 친박계를 겨냥해 일침을 가했다.

비박계 하태경 의원 역시 최 의원의 불출마 공식 선언이 국회 정론관에서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그동안 최 의원의 불출마를 주장해온 사람으로서 이번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라며 “최 의원의 불출마 결심 이유도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재집권을 위해서라고 한다”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이는 최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가 총선 패배로 나타난 ‘돌아선 민심’에 책임을 지고 불출마해야만 내년 대선에 새누리당이 집권할 수 있다는 우회적 경고로도 해석될 수 있어 최 의원의 ‘대타’로 이제 서 의원을 내세우려는 친박계에 시사하는 바가 깊다.
 
비박계는 서청원 추대론에도 그다지 심각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오는 10일 당 대표 출마 공식선언을 할 예정인 정병국 의원은 6일 오후 의원총회 도중 기자들로부터 ‘서청원 추대론’에 대해 질문받자 “출마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중요하지 않지 않느냐. 그게 왜 크게 판을 흔드느냐”고 거꾸로 반문할 만큼 자신감을 내비쳤다.
 
친박계 측에선 8선의 서 의원이 출마할 경우 난립한 친박 후보들을 정리하고 단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지만 비박계는 지난 총선 당시 김 전 대표에 이은 최고위원으로서 총선 패배 책임에 서 의원도 적잖은 책임이 있는 만큼 쉽게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또 만일 나선다고 하더라도 범친박 이주영 의원은 이미 경선 포기 의사가 절대 없음을 확실히 밝혀 어차피 친박 단일후보로 나서기 어려운데다 서 의원이 이미 70대 중반의 원로이기에 당 혁신을 이끌고 내년 대선을 지휘하기에도 적합지 않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우세할 것이란 계산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서 의원은 이미 2년 전 친박계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전당대회에 나섰으나 김무성 의원에게 충격패를 당한 바 있어 본인 스스로도 또 다시 출마 결정을 내린다는 건 쉽지 않은데다 현재 하반기 국회의장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굳이 지금 당 대표 경선에 나설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거란 시각도 적지 않다.
 
◆ 친박, ‘전대 룰’ 뒤집기도 불발…모바일 투표제엔 ‘격론’
 
이런 분위기 속에 6일 오후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는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 친·비박이 지도체제 개편안과 모바일 투표제 등을 놓고 한바탕 전초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돼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이날 열린 의총에서 친박계 강경파 의원들은 비대위가 결정한 단일지도체제 개편이 아닌 현행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지만 결국 단일지도체제라는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뒤집기’에 실패했다.
 
이와 관련, 정진석 원내대표는 의총 뒤 기자들과 만나 “지도체제 개편 문제에 대해 의원들 절대 다수가 지금의 집단지도체제 대신에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다만 정 원내대표는 “분명한 것은 대표는 당직자들의 임면권만 갖는 것”이라며 “과거와 같은 제왕적 대표 체제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단일지도체제로의 전환은 되돌릴 수 없었으나 친박계는 모바일 투표제 도입에 있어선 격렬하게 반대해 나중에 결론을 내기로 미루는 데에 성공했다.
 
정 원내대표는 “모바일 투표는 찬반양론이 많았다”며 “완전 합의가 안 되면 채택이 어려운 게 제 상식인 만큼 이 문제는 이번 전대에선 채택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해 사실상 이번엔 도입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 원내대표의 말을 증명하듯 친박계 강경파인 김태흠 의원의 경우 의총 도중 기자들에게 모바일 투표에 대해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제도를 새롭게 도입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드러낸 반면 비박계 권성동 의원은 “문제점은 분명 있지만 장점이 문제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차원에서 투표율 제고를 위해 모바일 투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계파 간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 때문인지 정 원내대표는 “게임의 룰을정하는 문제는 완벽한 합의에 도달해야지,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비대위에서 정하면 또 다른 당내 갈등요인이 된다”며 “이 문제는 합의가 안 되면 현행 룰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당 대표 경선 출마자가 난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표성 강화를 위한 컷오프 도입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지만 이 역시 격론 끝에 결론이 나지 않아 이번 전대에 도입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전대 룰 확정’을 놓고 진행된 이날 의총에서 친박계도 모바일 투표제 도입 여부 등에 있어선 어느 정도 소득은 있었지만 당초 계획했던 지도체제 개편안 번복은 이뤄내지 못해 여전히 당내 다수임에도 친박계의 결속력이 이제는 예전만 못한 채 분산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당내 최대 계파인 친박계가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향후 여러 갈래로 쪼개질 경우 그간 친·비박 양강 구도로 충돌해온 양상이 다소 완화되면서 그토록 외치던 ‘계파 갈등 해소’라는 뜻밖의 결과가 나오진 않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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