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 대립 정치논쟁으로

주한미군 이전으로 돌려받게 된 용산기지 부지를 두고 정부와 서울시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반환되는 81만평의 미군 용산기지터를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요구에 정부가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도 표면적으로는 반환되는 용산기지에 대해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입법예고한 ‘용산 민족 역사공원 특별법’으로 인해 서울시로부터 숨은 의도를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게 민족적, 역사적 가치를 기릴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울시와 일말의 여지를 남겨놓고 공원 조성을 하려는 정부의 갈등은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간의 마찰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엉겁결에 시장이 된 오 시장이 벌써부터 대통령에게 대드는 것이 아니냐”, “노 대통령의 확실한 레임덕 증거다”는 등의 주장도 제기될 만큼 사안은 정치권 파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분위기다. 용산공원을 둘러싼 정치권의 파장과 그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 서울시의 주장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은 바로 ‘용산 민족 역사공원 특별법’ 중 제14조(건교부 장관이 부지 용도변경을 가능하게 한 조항)와 제28조(정부의 국토관리계획에 따라 부지 및 주변부 도시관리계획을 재설정하게 한 조항)이다. 우선 서울시가 주장하는 것은 이 두 조항을 삭제한 특별법을 시행하거나 아예 특별법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용산공원 부지를 정부 주도하에 개발 용도로 변경할 가능성이 조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에 대해 “용산공원 선포식은 개발선포식”이라며 정부에서 추진하는 용산공원 선포식에 반기를 들고 있다. 정부가 공원 조성을 위해 입법예고한 ‘용산 민족 역사공원 특별법’ 일부가 건설교통부 장관에게 권한을 부여해 용산공원 부지 일부를 개발할 수 있게 한 ‘독소조항’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이에 서울시는 24일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3부 요인 등이 참석해 열린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에 맞춰 최항도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의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은 용산기지 개발 선포식”이라고 비난했다. 성명서를 통해 최 대변인은 “정부는 기지 이전비용 마련을 위해 공원부지 일부를 주상복합아파트 등 주거시설과 상업시설 등으로 용도변경과 매각, 개발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조항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부는 그동안 이전부지 전체를 공원화하겠다는 의사를 말로는 주장하면서도, 공원의 본체를 훼손할 여지가 담긴 제14조 삭제와 공원화 대상 부지 전체의 면적과 경계를 특별법에 명문화하자는 서울시의 요구는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최 대변인은 “정부의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로 이루어지는 행동이 겉돌고 있다”고 비난하고 “서울시는 용산기지터 전체가 온전히 공원으로 조성되어 모든 사람들이 자손대대로 누릴 수 있는 열린공간으로 남도록 하기 위해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용산공원 특별법에 대해 철회를 주장하는 것은 서울시만이 아니다. 30여개의 환경, 시민단체들도 “용산 민족 역사공원 조성 및 주변지역 정비에 관한 특별법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맞대응 하고 있다.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 열린 같은 날 이들은 “용산기지 공원화는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서울의 남북 생태축을 복원하는 사업”이라며 “기지이전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지 일부를 매각하고 상업, 주거시설을 짓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시민단체들은 “용산 특별법안은 권력분립의 원칙과 지방자치원리에도 어긋나니 즉시 철회하고 기지이전 비용은 세금투입, 국공채 발행, 국민신탁 제도 도입 등 다른 방안을 모색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이들은 “기름유출 등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주한미군의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정부의 주장 서울시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정부는 24일 예정대로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 및 한명숙 총리 등 3부 요인과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 등이 참석해 124년 만에 서울시의 품으로 돌아온 용산 부지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이곳 용산은 아픈 역사를 가진 땅이지만, 이제 이 땅에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다”고 밝히고, 누구보다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124년 전 임오군란을 빌미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해 국정을 좌지우지 간섭했고, 청일전쟁을 계기로 일본군이 강점하면서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의 전진기지가 되었던 땅이고, 해방 후에는 미군이 주둔하여 우리의 국방을 기대어 온 땅”이라며 용산과 관계된 역사를 되짚고, 최근 작통권 환수 등과 같은 맥락에서 용산 기지의 반환을 민족적 자주의 상징성으로 부각시켰다. 또, 노 대통령은 “우리 후손들은 이곳에서 지난날 고난과 수치의 역사와 함께 도전과 극복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대한민국의 긍지와 자신감을 확인하고 새로운 미래를 다짐할 것”이라며 “서울 한복판에 새로 열릴 80만 평의 녹지공원은 생각만 해도 가슴을 부풀게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서 “용산이 매력 있는 삶의 공간이 되면, 고속철도(용산)역 역세권 개발과 결합하여 강남북의 균형발전을 이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 용산공원을 개발과 병행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서울시민 중에는 이 사업을 서울시가 시민의 뜻에 맞게 추진하기를 원하는 분도 많을 것이지만 이 사업은 그 뜻에 있어서 국가적 의미가 매우 크고, 그 결과도 국가적인 것”이라고 말해 서울시와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쟁점의 진짜 속사정은? 서울시의 특별법 제14조 삭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건교부가 그 뜻을 수용하지 않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대통령 및 3부 요인이 참석한 국가적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용산이 서울시장의 지역구 중 한 곳임을 감안한다면 사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정부가 특별법 제14조를 삭제 또는 개정하지 않는 이유는 개발을 통해 용산기지 이전 비용 등을 충당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물론, 이 역시 겉으로 보이는 의도이기에 그 속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용산기지 이전 시기에 맞춰 작통권을 환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며 “특별법 제14조를 통해 개발 이익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작통권을 환수하는 것과 깊은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다시 말해 참여정부가 주도해서 작통권 환수와 용산기지 반환 등 ‘자주’로 상징되는 사업들을 벌이고, 용산기지 개발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통권 환수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는 이론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당적을 두고 있는 오 시장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정부가 속내를 보이며 사업을 한다는 사실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율이 하락했고,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할지라도 이제 갓 취임한 서울시장이 대통령 참석 행사에 불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오 시장의 주장과 행동은 한나라당을 대변한 행동이지 서울시를 대변한 행동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서울시민의 바람’을 위시하여 정부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것은 속이 보이는 대응법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용산공원 또한 정치권의 다툼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민, 나아가 국민들까지 우롱하는 정부와 서울시. 진정한 민족의 혼을 되새기고, 124년 만에 되찾은 땅을 후손들에게 아름답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정부와 서울시간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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