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계파 초월해 ‘TK’-‘PK’ 출신 지역 대결 양상

▲ 여야 모두 영남권 신공항 유치 경쟁에 뛰어들어 각 의원마다 출신 지역별로 합종연횡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일 새누리당과 부산시 간 신공항 관련 당정협의회 모습(좌)과 9일 가덕 신공항 후보지를 방문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우).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새누리당 내 TK(대구·경북)-PK(부산·경남) 출신 의원들이 영남권 신공항 건립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 국책사업의 지역 유치 경쟁이 자칫 당 내홍을 재발시키는 단초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초 여권 내 PK의원들의 주장대로 신공항을 부산 가덕도에 유치하자는 데에 일찌감치 지지 의사를 표하며 새누리당의 TK-PK 간 혈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던 더불어민주당 역시 대구에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을 중심으로 경남 밀양 유치 주장이 불거져 나오면서 새누리당에서 일어나는 혈투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해당 지역의 민심 역시 동남권 신공항 유치에 사활을 걸면서 정치권 뿐 아니라 영남지역 전체가 완전히 양분되고 있는데 이 중 어느 한 쪽으로 정해진다면 다른 한 쪽이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은 불가피해 보여 신공항 유치 경쟁은 단순히 하나의 국책사업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계개편까지 일으킬 수 있는 도화선이라 할 수 있다.
 
◆ 가덕도 vs 밀양 ‘신공항’ 유치 경쟁, 언제 시작됐나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지난 2003년 입지 조사가 시작된 이래 13년째 이어져오고 있지만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그간 영남의 관문 역할을 해온 김해공항의 대안으로서 동남권 신공항 필요성은 이미 1992년 부산시 도시기본계획에서부터 제기됐었는데, 지난 2006년 부산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공항 건설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지만 실제 논의가 본격화된 건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신공항 건설을 내걸면서부터였다.
 
이에 따라 공항 유치를 둘러싸고 입지 선정 논란이 일어난 끝에 지금처럼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으로 압축돼 2파전이 벌어졌지만 점차 지역 간 갈등이 심해지고 경쟁 과열 양상이 보이자 이 전 대통령은 결국 2011년 3월 현재 사용 중인 김해공항은 2020년이나 돼야 최대 566만 명에 이르기에 신공항 건설이 급하지 않고 후보지인 가덕도는 0.7, 밀양은 0.73으로 비용편익비율이 1에 미달해 경제성이 없다며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대통령의 사과와 함께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던 신공항 건설 문제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 당시 후보 모두 공약으로 다시 꺼내든 데다 이명박 정권 때 사업 백지화 근거로 내놨던 2009년 국토연구원 자료의 조사 내용과 달리 지난 2015년 이미 김해공항 이용객 수가 595만 명을 돌파하는 등 당시 수요 예측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재론되기 시작했는데 오는 2023년이면 김해공항이 포화 상태에 이를 전망이어서 정부로서도 이제 더는 미룰 도리 없이 결단만이 남은 실정이다.
 
하지만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이명박 정권 당시와 똑같이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정치권까지 개입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데 부산 등 PK지역에선 김해공항의 수용량 한계에 따라 지어지는 만큼 신공항은 김해공항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며 김해공항과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가까운 가덕도에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반면 밀양에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선 부산에 편중된 게 아닌 영남권 도시들이 모두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공항이어야 한다며 영남권 5개 시·도 모두에서 1시간 내로 접근가능하단 점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TK지역에서 적극 지지하고 있는 밀양은 기존 김해공항보다 가깝다는 접근성 외에도 구미 등 주변 산업단지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드는데다 규모도 가덕도에 비해 크게 지을 수 있다는 부분이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밀양은 내륙 지역이다보니 김해공항처럼 소음문제로 운영 시간에 제약을 받을 소지가 높다는 문제점이 있는데다 지형상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항공기 이착륙이 위험한 만큼 건설 과정에서 산봉우리를 4~5개나 깎아야 된다는 점이 환경 및 과다한 비용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받고 있다.
 
이에 반해 가덕도는 비록 부산을 제외한 타 영남권 주민들의 접근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내륙이 아니라 인천공항처럼 섬이어서 소음에 개의치 않고 24시간 내내 운영 가능한데다 바다 매립지인 관계로 밀양보다 항공기 이착륙이 안전하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앞세웠다.
 
서로 간의 장단점이 완전히 엇갈리다보니 양측 지자체나 지역민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여야까지 나서서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여론전을 통해 상호 압박하는 분위기인데 이들 모두 이 사안에 대해선 소속 정당이나 기존 계파를 초월해 출신 지역구의 입장부터 고려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
 
◆ 與 TK-PK, 원내대표에 서로 지지 요구…PK, 野와 공조 의사까지
 
그 중에서도 새누리당은 PK든 TK든 모두 자당의 주요 ‘텃밭’인 관계로 신공항을 두고 두 지역이 갈라지고 있는 것을 마냥 좌시할 수는 없는 입장이어서 더 곤혹스러운 상황인데 이미 지난 1일 김도읍, 김세연, 조경태 등 새누리당 부산지역 의원들이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나 지역민들의 입장을 전했고, TK지역이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만큼 입지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를 드러냈다.
 
이들의 선제적 움직임을 의식한 윤재옥, 조원진, 김상훈 등 대구지역 의원들도 즉각 하루 뒤인 2일 친박이든 비박이든 계파를 개의치 않고 함께 모여 정 원내대표를 찾아 맞불을 놨는데, 신공항 건설이 어디로 확정되느냐에 따라 차기 총선 당락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어떻게든 자기 지역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데 혈안이 됐다.
 
이에 새누리당 부산시당은 부산시와 8일 20대 첫 당정협의회를 갖고 신공항 대응책을 논의하면서 “신공항 용역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훼손된다면 앞선 5개 시도단체장의 합의를 존중하기 어렵다”고 TK지역에 경고하고 나섰다.
 
◆ 野 ‘가덕 지지’ 문재인, ‘TK’ 김부겸 반발 직면
 
이렇듯 ‘뜨거운 감자’를 야권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는데,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 임기 첫 날인 지난달 30일 이미 전재수, 최인호, 김영춘, 박재호, 김해영 등 부산 의원 5명이 시당위원장인 김영춘 의원실에 모여 신공항 대책을 논의한 데 이어 7일에는 부산역 광장에 천막 본부를 세우고 주요 당직자들이 상주하며 가덕 신공항 유치에 힘을 쏟았다.
 
여기에 8일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당원 등이 참석해 ‘가덕 신공항 유치 비상대책본부’ 발족식을 가졌고 9일엔 문재인 전 대표까지 직접 신공항 후보지인 부산 가덕도를 방문해 힘을 실었다.
 
이번 방문은 문 전 대표가 지난 20대 총선 과정에서 부산 유세 도중 “국회의원 5명만 뽑아준다면 대통령 임기 중 신공항 착공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여러 차례 가덕 신공항 건설을 약속한 바 있어 총선 후 이에 대한 시행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은 물론 차기 대권을 의식해 PK에서의 지지 세를 확대하기 위한 행보로도 풀이된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오전 부산시 관계자로부터 신공항 추진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신공항은 지역균형발전과 동남권 주민의 편의, 그리고 이 지역의 미래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됐다”며 “더는 표류해선 안 되고 이제는 입지가 선정돼 현 정부 임기 중에 반드시 착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이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평가 절차가 진행된다면 부산시민은 그 결과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심지어 친박의 핵심이라고 알려진 서병수 부산시장마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입지선정 절차 공개를 촉구했다.
 
이는 서 시장이 8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밀양은 고정 장애물 요소가 평가항목에서 빠진 점을 예로 든 뒤 “정권의 어떤 실세들이, 말하자면 대구 쪽에 많이 있는 것 아니냐”면서 “우리가 우려할 만한 사항,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것이 정치적, 정무적으로 결정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한 발언을 인용한 것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이날 인용한 서 시장의 발언에 대해 과거 더민주 출신이었던 무소속 홍의락 의원(대구 북을)은 같은 방송에 출연해 “국토부 장관이 경남 함양, 제2차관이 전북 익산 출신이신데 이렇게 유치하고 한심한 발상으로 실세들이 그렇다 얘기하면 어떻게 국가에서 국책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며 반박하고 나서는 등 소속 정당이나 계파보다도 모두 자기 지역구를 위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형국이다.
 
▲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9일 한 대구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시와 부산 정치권, 시민단체들이 영남권 5개 자치단체의 합의를 무시하고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는 것은 신공항 입지로 가덕도가 열세라는 점을 자인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여기에 문 전 대표와 같은 당인 김부겸 의원까지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를 의식했는지 신공항 유치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신공항 공약을 꽃놀이패로 여겼던 더민주에서도 서서히 새누리당과 같은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김 의원은 9일 한 대구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시와 부산 정치권, 시민단체들이 영남권 5개 자치단체의 합의를 무시하고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는 것은 신공항 입지로 가덕도가 열세라는 점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가덕 신공항’ 주장을 비판한 뒤 “부산의 속내는 신공항을 가덕도로 유치하면 좋고 아닐 경우 입지 선정을 무산시킨 뒤 이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려는 의도가 아닌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더민주에서도 이전과 달리 신공항 유치 문제로 불협화음이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이 표면화될 조짐을 보이는 새누리당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르면 이달 24일 발표될 국토교통부의 입지 선정 발표 결과에 따라 적잖은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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