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식 주제 ‘통합’ 무색…더민주·국민의당 기 싸움만

▲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한 가운데 마을 입구에서부터 쏟아진 친노 지지층의 욕설과 비난으로 경호원에 둘러싸인 채 추도식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야권이 들썩이고 있다.

더민주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전대 준비만 남겨둔 시한부 체제로 전락하면서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을 계기로 PK지역에서의 세력 확대 및 당내 친노 주류 세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려는 모양새고, 이를 막으려고 나선 국민의당은 추도 분위기를 가급적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부산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여는 등 더민주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PK를 둘러싼 양측의 기 싸움 속에 당 내홍으로도 벅찬 새누리당은 이 지역에서 여권 지지층을 빼앗기는 것 아닌지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지만 전대 준비부터 국회법 개정안 문제 등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권에 대응할 문제가 산적돼 있어 정신없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열린 이날 추도식에선 ‘야권 통합’을 주제로 내세웠음에도 한 자리에 모인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얼굴조차 맞대지 않는 등 불편한 상황이 계속돼 대선을 앞두고 점점 양측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만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 野 ‘盧 서거 7주기’ 맞아 ‘노무현 정신 계승’ 한 목소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인 23일 야권은 한 목소리로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물론 정의당까지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성찰하며 나아갔던 노무현 정신을 잊지 않는다”고 논평을 내놓으면서 자당이 노 전 대통령을 계승했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먼저 더민주는 이날 박광온 수석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노 전 대통령) 당신께서 그렇게도 그리던 ‘사람 사는 세상’은 여전히 현실이 되지 못하고 이상에 머물러 있다”며 “더 겸손하고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받들고 힘을 모아 (노 전 대통령의 뜻인)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박 대변인은 “더민주가 부산·경남, 대수에서 괄목할 만한 사랑을 받은 건 지역주의 타파와 지역균형 발전에 온 힘을 쏟아 오신 (노무현 전) 대통령께 더없이 깊은 소식이 됐으리라 믿는다”며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경제민주화를 앞당기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당 역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같은 날 부산 상공회의소에서 가진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은) 소수 엘리트 정치가 아니라 시민이 참여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을 시작한 분”이라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내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안 대표는 “이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새 시대를 만개시켜야 한다”며 “그래서 노 대통령을 새 시대의 선구자로 역사에 자리매김 시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고연호 당 대변인 역시 논평을 통해 “지역주의 타파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위해 특권과 권위의식을 버린 노무현정신이 오늘날 되살아나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 살맛나는 정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계기로 노 전 대통령을 계승했다는 더민주의 판세가 PK지역에서 한층 확장될 것을 우려한 국민의당이 노 전 대통령을 일견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 하면서도 그 한계가 있었음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노 전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그 뜻을 계승하겠다고 식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그동안 친노 패권을 줄곧 비판해왔던 만큼 한계는 있었다고 해도 노 전 대통령을 계승하겠다는 듯한 입장을 내놓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 ‘盧 서거 7주기’ 野 통합·공조 단초 될 수 있나
 
이날 친노패권 비판에 앞장섰던 국민의당 내 호남 출신 의원들조차 ‘노무현 정신’을 언급하며 뜻을 받들겠다고 나섰는데, 천정배 공동대표는 “국민의당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노 대통령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국민과 함께 달려나가겠다”고 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반드시 정권교체를 통해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원내대표의 경우 “만약 우리 김대중·노무현 세력이 지금까지 함께 했다고 하면 이번 총선에서 민의는 어떻게 나타났을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며 야권 통합 필요성을 암시하기도 해 이목을 끌었다.
 
이 같은 발언에 화답하듯 더민주에서도 전직 국회의장 출신인 김원기 상임고문이 이날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 추도사에서 “김대중·노무현을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통으로 같이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이어 “노무현이 피운 꽃은 김대중이 뿌린 씨앗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노무현이 말한 사람 사는 세상은 김대중이 이루고자 했던 꿈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야권 간 갈등과 반목을 지칭한 듯 “지더라도 당당하게 임하는 것으로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길을 택하겠다던 위대한 정치인 김대중의 목표가 특정 지역과 인맥에 있지 않았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꿈도 특정 세력, 정당의 영달을 뛰어넘는 것”이라며 “우리는 두 분의 뜻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라고 거듭 역설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고문은 “핵심은 단합과 통합이다. 두 대통령을 잇겠다면서 서로 갈등하고 있는 지금 우리들이 그 뜻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라며 “국민들이 우리에게 바라고 명령하는 것은 바로 하나 된 힘으로 불의한 시대를 끝내고 민주 평화 복지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이번 총선 결과를 승리라고 자족하고 있지 않은가. 노무현의 뜻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한다”며 “(모두가) 지금까지 나의 아집이, 나의 말들이, 나의 행동이 단합을 해치고 갈등을 가져오지는 않았나 자성해야 한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 친노 핵심이라 꼽히는 김경수 당선인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에 동의하고 좋아한다는 의미에서의 친노라면 존재하지만 정치권의 계파로서 친노는 별 의미 없다”며 “친노패권이나 친노 계파 논란 부분은 20대 총선을 계기로 정리돼가고 있다. 총선 이후 당선자 워크숍이나 당내 여러 분위기를 보더라도 계파갈등이 문제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해 사실상 친노만을 내세워 반대편과 대립각을 세우던 과거는 끝났음을 분명히 했다.
 
◆ 野 일부 충돌 여전…추도식서 국민의당만 성토 당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 내 뿌리 깊은 갈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도 이날 곳곳에서 연출돼 일각에서 주장한 야권 통합 필요성을 무색케 해버렸는데, 이날 추도식 거행 전부터 당 홍보위원장인 손혜원 더민주 당선인이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했던 박주선 국민의당 최괴위원을 겨냥해 “세월이 가도 줄어들기는커녕 더 강해져 가는 친노 세력이 부럽긴 한데 그 중심에 문재인이 버티고 있는 게 영 마땅치 않다는 얘기를 돌려서 한다”며 “어차피 (추도식 열리는) 봉하에 갈 거면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이 낫지 않냐”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비판했다.
 
이런 갈등 양상은 이날 열린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서 또 다시 불거졌는데, 지난해 추도식에선 더민주를 탈당해 호남 정당 창당에 나섰던 천정배 당시 무소속 의원과 여당 대표로 참석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를 향해 물세례가 쏟아졌다면 올해 추도식에선 오직 국민의당 참석자들을 향해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다.
 
봉하마을 입구부터 쏟아진 욕설에 안철수 상임대표 등 국민의당 지도부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이동해야 했는데, 일부는 박지원 원내대표까지 비난하는 등 더민주를 탈당했던 이들에 대한 분노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오히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해선 별 다른 비난이 나오지 않았고, ‘힘을 잃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게도 예전과 같은 친노측의 비난은 전혀 나오지도 않았으며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나 정의당 지도부,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서 참석한 무소속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정청래 더민주 의원, 김경수·김부겸·손혜원·표창원 더민주 당선인에게는 거꾸로 환호만 집중돼 이번 추도식이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23일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께서 만들어주신 소중한 희망을 키워 나가기 위해선 김대중 대통령님과 그 뜻을 따르는 분들, 노무현 대통령 뜻을 따르는 분들이 함께 손을 잡고 힘을 모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런 편파적인 분위기 속에 문 전 대표는 이날 추도식 참석 뒤 기자들에게 “오늘 추도식의 주제는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라는 것이다. 두 대통령께서 평생 몸 바쳐 노력하신 우리 정치의 망국적 지역구도 타파와 우리 당의 전국 정당화를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만들어주셨다”며 “국민들께서 만들어주신 소중한 희망을 키워 나가기 위해선 김대중 대통령님과 그 뜻을 따르는 분들, 노무현 대통령 뜻을 따르는 분들이 함께 손을 잡고 힘을 모아야 된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 같은 그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국민의당이 이날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이 PK(부산·경남) 지역에서의 더민주 세 확산으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듯 이번 추도식 자체를 국민의당에 맞불 놓는 자리로 이용했다는 해석을 내놨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을 살펴보면 수도권은 물론 PK에서 약진하며 이뤄진 자당의 전국 정당화는 강조하면서도 상당수 호남계의 국민의당행으로 호남 참패가 빚어진 사실은 외면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통합을 꺼내들었다는 건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손을 들어줬던 호남 민심마저 역으로 흡수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이 하락세를 거듭하는 데 반해 호남에서도 더민주는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자신감을 얻게 된 부분 역시 이런 발언을 내놓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이 뿐 아니라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결국 차기 대선을 놓고 현재대로라면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로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여기서 문 전 대표가 ‘함께 손을 잡고 힘을 모으자’는 건 이번 총선 결과를 내세워 자신에게 차기 대선에서의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달라고 다시금 요구한 것이라 풀이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이날 문 전 대표의 발언 중 “오늘 추도식을 하면서 한 가지 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소망이 남아 있다면 이제는 친노라는 말로 그 분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이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것”이란 부분인데, 그간 ‘친노 주류’임을 앞세워 그 지지를 등에 업고 달려온 그가 더는 ‘친노’에 의존할 필요 없이 ‘친문’을 세력화할 기반을 충분히 마련했다는 것을 천명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문 전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 대표직을 넘기기 전 만들었던 김상곤 혁신위를 통해 범친노인 정세균계를 대거 공천 탈락시키고, 마찬가지로 중도적 성향의 친노인 문희상 의원을 낙천시키는 등 세력이 없거나 자신에게 우호적인 강성 친노 외에 껄끄러운 중도 인사들을 향해 우회적으로 날을 세운 바 있어 이날 추도식에서의 발언은 ‘친노’ 내부의 껄끄러운 인사들을 제거하고 대선 전까지 ‘친문’으로 체제 정비에 나설 것을 선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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