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국론 분열 우려한 결정”…與 “결정 재고해야” - 野 “보훈처장 해임 건의”

▲ 국가보훈처가 16일 기존 방침대로 정부 주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 방식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힘에 따라 제창 방식을 청와대에 요청했던 야권에서 크게 반발하며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사진)의 해임을 건의하겠다고 경고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국가보훈처는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기념곡 지정은 5대 국경일, 46개 정부기념일, 30개 개별 법률에 규정된 기념일에 정부에서 기념곡으로 지정한 전례가 없다”며 이틀 뒤 치러질 이번 5·18 민주화 운동에서도 제창이 아니라 합창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가보훈처가 내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결정으로 야권의 반발이 분명해지면서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3당 원내 지도부 간 회동에서 보였던 ‘협치’ 가능성조차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난 2003년부터 정부 주관으로 진행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되어 왔으나 2009년부터 합창 방식으로 방침이 변경되면서 일부 행사 관계자와 5·18 유족들이 정부 주관 행사를 보이콧하는 등 그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야권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종전과 같은 제창 방식으로 변경할 것을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에서 박 대통령에게 요청했는데, 이날 보훈처에서 끝내 기존 ‘합창 방식’을 유지하기로 재차 뜻을 굳히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모처럼 이뤄졌던 정치권의 ‘협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野 강력 반발…‘보훈처장 해임 건의’ 공조 움직임까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16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16일 아침 07시 48분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으로부터 어젯밤 늦게까지 보훈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에 대한 논의 결과 국론 분열의 문제가 있어 현행대로 합창으로 결정, 청와대에 보고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해를 바란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원내대표는 “이는 대통령께서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과 소통 협치의 합의를 잉크도 마르기 전에 찢어버리는 일이라고 강한 항의를 했다”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선 현 수석이 이번 결정은 ‘(박 대통령 뜻이 아닌) 전적으로 보훈처의 결정’이라고 했다며 “어떻게 대통령이 보훈처장에게 그런 말씀 하나 할 수 없느냐. 그건 국민이 믿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에서의 박 대통령 발언을 꼬집어 “‘좋은 방안으로 검토하도록 지시하겠다’, 대통령이 하신 그 좋은 방안은 무엇이냐. (청와대 회동은) 완전히 무효가 되는 것”이라며 “(보훈처장)해임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다만 야당에서 국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불신임 조치를 할 수는 없어 보훈처장 해임을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 등의 우회적 형태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밖에 국민의당 천정배 대표도 같은 날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합창 유지’ 결정에 대해 “(참석자 모두가 불러야 하는 제창과 달리 합창은) 참석자 의사에 따라 부르려면 부르고 말려면 말자는 입장”이라며 “(이런 결정은) 총선 민의도 저버렸고, 광주학살의 원흉인 신군부의 입장에서 광주 정신을 왜곡해 온 극단적 수구세력의 손을 들어준 것과 다름없어 안타깝다”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천 대표는 박 대통령을 향해 “2013년 대통령으로 5·18정신을 국민통합과 행복으로 승화시키겠다 약속했다”며 “진짜 총선 민의가 무엇인지, 광주정신이 무엇인지, 광주정신을 폄하하고 왜곡해 온 극소수 수구세력의 영향권에서 대통령이 언제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새로운 결단을 해주길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 대표 외에도 안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당 지도부가 모두 나서 보훈처를 성토하며 이번 결정을 번복할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호남에서의 지지율 회복에 접어든 더민주 역시 우상호 원내대표가 나서서 “이 문제는 5·18 기념식 당일 이 정권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큰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며 “보훈처장은 이 문제에 대해 재검토하고 청와대 역시 다시 지시해주길 바란다”고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우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를 통해 2가지를 지적했는데, 먼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에게만 보훈처 결정을 전해준 것을 꼬집어 “청와대가 국민의당하고만 파트너십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왜 이 문제를 국민의당에만 통보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에 대한 방법을 강구해보라는 대통령 지시를 보훈처장이 거부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보훈처장 독단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국민의당과 유사한 의문을 내비쳤다.
 
특히 우 원내대표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이날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차관급 공직자가 청와대와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할 수 있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문제를 넘어 정권 차원의 해괴한 일이 생겼다. 진실이 무엇인지 규명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만약 (합창이) 이뤄지지 않으면 20대 국회에서 (보훈처장의) 해임촉구결의안을 채택하기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초강수를 뒀음을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우 원내대표와 달리 이번 ‘제창 불허’ 결정에 대해 같은 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일언반구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는데, 지난 12~13일 열린 당선인 워크숍 첫 행사였던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에도 참석하지 않은 바 있어 최근 호남 방문 중 자신을 겨냥해 일어났던 ‘총선 참패 책임론’을 비롯해 국보위 전력 등이 재론될 것을 우려해 침묵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보훈처 결정 두고 黨靑 반응 엇갈려
 
야권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이날 청와대는 보훈처가 국론 분열을 우려해 내린 결정이라며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반면 20대 국회 개원 전부터 ‘협치’ 가능성이 깨질 것을 우려한 새누리당은 야당과 한 목소리를 내 분명한 이견 차를 보였다.
 
당초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첫 상견례 직전 티타임 자리에선 ‘합창 방침’을 유지키로 한 국가보훈처의 결정에 대해 “나는 우상호, 박지원 원내대표들의 입장을 감안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러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불러야 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그러니까 지금처럼 따라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고, 싫은 사람은 안 불러도 되는 절충 형태라는 게 보훈처의 설명”이라고 존중한다는 뜻을 내비쳐 청와대와 한 목소리를 내는 듯했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도 비대위 회의가 끝난 뒤엔 기자들에게 “(보훈처의 합창 방침을) 재고해달라는 의견을 모았다. 정부 쪽에도 분명히 (저와 당의) 입장을 전달했다”며 완전히 반대된 반응을 내놔 일치된 당청 관계보다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 분위기가 깨지는 것을 막는 걸 우선한 것으로 풀이된다.
 
▲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보훈처가 이 노래의 제창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야권과 같은 입장을 내놨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또 정 원내대표는 “보훈처가 이 노래의 제창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지난 14일 자신이 박승춘 보훈처장을 만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한 바 있다고 밝혀 이번 결정은 새누리당과 연관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5·18 기념식까지) 이틀 남았으니까 재고해주길 요청한다는 것이 저희 당의 입장”이라며 거듭 보훈처에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훈처는 “발표한 대로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겠다”며 이날 정치권의 재고 요구를 즉각 일축해 파장이 한층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정식 보훈처 홍보팀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5·18기념식까지 이틀 남았고 정치권에서도 재고 요청하고 있는데 결정이 바뀔 가능성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정부 공식 기념행사에서 특정 노래를 부르는 방식은 합창이 관례”라며 “부르고 싶은 분들은 따라 부르고, 부르고 싶지 않은 분들은 부르지 않는 방식이 논란을 최소화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했다”고 당초 방침을 못 박았다.
 
또 최 팀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 여부에 대해서도 “관련 법령이 없다. 기념곡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관련 법률을 만들어 내고 지정하게 되면, 애국가조차도 지정이 안 된 상태에서 대한민국 기념곡 제1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긴다”며 사실상 불가 방침임을 전했다.
 
다만 그는 이번 보훈처의 결정에 청와대의 직접 지시가 있었느냐는 데에는 “별다른 지침이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정치권에서 제기된 보훈처장 해임 주장에 대해서도 “과거 박 처장이 국회 법사위원장 면담 자리에서 ‘내 선을 넘었다’고 말한 건 이 문제가 찬반 여론이 워낙 팽팽하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란 뜻인데 와전된 것”이라며 보훈처장 개인 차원의 입장을 반영해 내린 결정도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이런 보훈처의 해명에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는 18일 거행될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광주지역 인사들이 불참하려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광주시의회의 경우 의장부터 시의원 전원이 이번 보훈처의 결정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행사 불참은 물론 침묵시위까지 예고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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